[2021 한라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시(허영선·문태준) 시조(김영기·고정국) 소설(임철우·김동윤)

[2021 한라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시(허영선·문태준) 시조(김영기·고정국) 소설(임철우·김동윤)
  • 입력 : 2021. 01.01(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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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허영선(시인), 문태준(시인), 김영기(시인), 고정국(시인), 임철우(소설가), 김동윤(문학평론가).

[심사평/허영선·문태준] 상상력의 탄탄한 근력과 섬세한 서정


허영선(시인), 문태준(시인)

한라일보 신춘문예 본심에 오른 시 작품들을 차근차근 읽었다. 서정적인 작품들이 다수 있었고, 고유한 제주 체험에 기초해 창작한 작품들도 여러 편 있었다.

한 편의, 새로운 시의 탄생은 하나의, 초유의 관점의 탄생일 것이므로, 한 편 한 편에 과연 시적인, 유의미한, 최초의 발견이 있는지를 중요하게 평가의 기준으로 삼았다. 생각의 단순한 열거에서 벗어나 그 생각들이 유기적으로 상관하고 있는지도 꼼꼼하게 살폈다.

마지막까지 논의한 작품은 '살구나무', '감자꽃', '그리고 '도서관'이었다. '살구나무'는 무위(無爲)를 노래한 작품이었다. 살구나무의 순연한 생명 운동을 번거로운 잡사(雜事)에 시달리는 사람의 형편에 대조해서 바라본 작품이었다. 함께 보내온 작품들이 이 작품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감자꽃'은 제주 4·3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감자가 자라는 땅속 어둠의 공간을 피신한 공간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이 공간이 "검은 봉지"의 공간으로 갑자기 전환되는 대목은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고심 끝에 시 '도서관'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이 시는 해역(海域)을 책 혹은 도서관의 공간에 견준 작품이었다. 바다의 파도와 해초, 해안선 등을 한 권의 책의 표지와 책 속에 담긴 서사로 치환했다. 상승과 하강, 평면적인 것과 입체적인 것의 경계를 내내 활발하게 허무는 점이 신선했다. 첫머리에서 끝자락에 이르도록 산문시 시행을 끌고 가는 상상력의 탄탄한 근력뿐만 아니라 풍경을 드러내는 섬세하고 서정적인 화자의 목소리가 돋보였다. 그리고 함께 응모한 작품들 전편에서 유니크한 시적 화자를 만날 수 있었던 점도 새로운 신인의 출현을 한껏 기대하게 했다. 앞으로 서두르지 않고, 심지 굳게 자신만의 시세계를 열어 나가길 바란다.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심사평/김영기·고정국] 서정·서사 조화로 시대 한 단면 구체화


김영기(시인), 고정국(시인)

예심을 거쳐 본선에 올라온 작품들 대부분이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시대적 체험과 아픔에 기조를 두고 있었다. 강현수의 '아버지의 삽', 김정애의 '달의 화법', 장수남의 '25시 편의점', 오은기의 '가시리', 김규학의 '폐교' 등이 눈에 띄었다. 이들 한 편 한 편의 작품에서는 시대감각에 맞는 소재들과 시어 선택 등이 이미 시조시인의 바탕을 갖추고 있었다. 더구나 입과 코가 가려진 그들 마스크 위로 저마다 촉망되는 눈빛들이 반짝반짝 감지되기엔 충분한 내용들이어서 기뻤다.

그 맨 끝자리에 김규학의 '폐교'가 또렷한 색채를 띠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서정과 서사가 알맞게 조화를 이루면서, 시대의 한 단면을 시조라는 장르 속에 구체화시켜놓고 있었다.

이 작품은 "궂은 일 도맡아 하던 순이 아버지", "검버섯 창궐한 학교", "밤사이 떠나버릴 것 같은 프라타나스 나무의 까치둥지" 그리고 학교 건물 전체를 "친친 감아 주저앉히"는 담쟁이의 형상 등을 단순한 나열의 단계를 뛰어넘어 초, 중, 종장의 유기적 관계를 완벽하게 이어놓고 있다. 거기에다, 시조란 관찰해야 할 외적 대상과 드러내야 할 내적풍경을 시대상황에 알맞게 적용시키는 일이라 했을 때, 시인이 갖추어야 할 시력, 어휘력, 상상력은 물론 그 어떤 서사적 울림과 내용 전개가 읽는 이에게 긴장과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었다. 결국 우리 심사위원 두 사람은 체험과 시대인식에 바탕을 둔 김규학의 작품 '폐교' 앞에 당선의 꽃다발을 놓아드리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시인이 시를 쓰는 목적은 곧바로 삶의 목적과 같다. '목적'이란 말이 '목표'라는 말에 지배당하고 있는 이 시대에, 시조시인들은 좀 더 과감히 사회적 체온기 역할을 해야 할 당위 앞에 서 있을 수밖엔 없다. 코로나19 창궐의 어려움 속에서도 올해 응모자가 많았다는 신춘문예 담당자의 전언이다. 그들 응모자들과 함께 마스크 벗은 얼굴로 시조광장에서 활짝 편 얼굴로 인사 나눌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심사평/임철우·김동윤] 거칠지만 열정적 문제제기 강점으로


임철우(소설가), 김동윤(문학평론가)

본심에 올라온 11편의 소설을 읽고서 우리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에피소드의 나열, 겉도는 사연, 피상적 사건 전개 등의 문제들을 지닌 작품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당선작을 낼 수 없다는 데 우선 합의했다. 서너 편을 놓고 어떤 작품을 가작으로 내세울지를 고민했다. 그런데 개중에는 중복투고나 기발표의 문제를 안고 있어서 제외시켜야 할 작품도 있었다. 결국 두 작품이 남았다.

한승주의 '여자아이'는 잘 읽히는 소설이다. 60대 외래교수 남자와 20대 대학원생 여자의 만남을 그렸는데 상당히 감각적이고 세련된 문장을 구사하며 안정된 호흡으로 스토리를 끌고 간다는 장점이 있다. 신인답지 않은 이야기꾼의 자질이 감지된다. 반면에 두 인물이 평면적인 데다가 그들의 관계가 안이하게 다뤄졌다. 특히 남자가 17년 후에 그 여자를 떠올리면서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었다고 추억하는 결말의 상황은 퍽 실망스러운 설정이었다. 가벼운 콩트 같은 작품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차영일의 '떠도는 도시'는 '여자아이'와는 상반된 경향의 작품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문장이 더러 보였으며, 스토리가 산만하게 전개된다는 느낌도 있다. 사채업자에게 신체포기각서를 써야 할 지경에 이른 가장의 위기 상황이라는 익숙한 내용을 다루면서도 그것에 대해 그다지 예리하게 파고들지 못했다. 아버지와의 갈등 원인이 피상적으로 제시된 점도 결함으로 지적된다. 하지만 주인공의 욕망 추구와 좌절의 과정, 극도의 초라함에 처한 한계상황의 진득한 묘사, 내면적 갈등과 번민의 집요한 포착 등은 주목할 만했다. 거칠고 투박한 면은 있지만 진지한 현실탐구와 열정적 문제제기가 강점이다. 더욱 갈고 닦는다면 좋은 작가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되어 가작으로 뽑는다.

이번 심사 과정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신인다운 패기가 돋보이는 작품을 만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기시감이 있는 상투적인 접근으로서 이 세상과 대화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과감하고 패기 넘치는, 그러면서도 진지한 성찰을 견지한 작품이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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