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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의 제주문화사전
[김유정의 제주문화사전] (27)제주목도성지도 (상)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20. 09.2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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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처음 공개 영주십일경 전체
영주10경에 없는 화북진 그림 있어
예나르 제주문자도전에 전시예정


#변방, 제주도 순력의 의미

이미 17세기에 유럽의 동인도 회사가 식민지 개척을 위해 호전적으로 아시아 진출이 점점 늘어났으며, 특히 사대국(事大國)인 중국의 명왕조가 불안해지면서 후금이 청으로 국호를 바꾸고는 급기야 조선을 침략하여 병자호란 후 조선의 미래가 불안해졌다. 조선의 민심이 동요하면서 재지사족(在地士族)의 향촌 자치권을 제한하고자 17세기 말이 되면 조선 전도를 유교원리주의자들이 지방 수령으로 부임하게 되고 전국적으로 무불(巫佛) 탄압이 자행되고 제주도 또한 그 무렵 이형상에 의해 당오백 절오백이 훼철된다.

특히 제주도인 경우 숙종 20년(1694) 6월에 병조참의였던 이익태(李益泰, 1633~1704)가 제주목사로 부임하게 되면서 당시 변방이었던 제주도의 정세를 엿보게 한다. 제주도에는 표류인이 많았는데 외국의 이양선이 자주 출몰했던 것은, 새로 일어선 중국 청나라의 불안한 정세를 반영한 것이었고, 또 일본 나가사키로 가는 국제적 항로의 중요한 길목이었기에 어느 때보다도 문무를 겸비한 관리가 더욱 필요하게 되었다. 제주목사 이익태는 6월 29일 화북소로 내려 한 달여 동안 제주에 적응한 후, 맨 먼저 한 일은 한라산에 오른 일이었다. 이틀 후에 관덕정에서 유생들을 대상으로 백일장을 치렀으며, 9월 9일 날부터 정의현을 시작으로 순력하기 위해 조천관, 별방소, 서귀소, 대정현, 애월소까지 순력을 마치고 9월 19일 제주영으로 돌아왔다. 순력이란 "봄·가을로 매번 절제사가 직접 방어(防禦)의 실태와 군민(軍民)의 풍속을 살피는 것을 말한다." 순력을 통해 군사, 행정, 공납 등 각종 제도의 허실을 고치고 폐해를 바로잡아 변방의 고을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군사, 제반 행정, 경로, 상벌까지를 시행하는 것이다.

탐라순력도에 문묘, 서원, 운주당, 삼성묘, 관덕정 객관이 보인다. 제주시 소장

오늘날에도 다른 제주목사들에 비해 이익태가 자주 거론되는 것은 제주도(濟州島)를 요새지이자 방어가 잘 되는 곳이면서도 그곳이 아름다운 경치를 가려 '탐라10경도(耽羅十景圖)'를 지정하여 지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탐라10경'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영주십경'의 원조였던 것이다. 이처럼 조선 후기가 되면 흔들리는 국가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팔도에 수령권을 강화하기에 이른다.



#'탐라십경'에서 '영주십경'으로

제주목사 이익태는 '탐라십경도 서'에서 "기묘한 바위 폭포는 곳곳에 볼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두 등한시하여 무심코 넘김으로써 사실을 기록하여 저술이라고 칭할 게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육지에 있는 사람들은 들어 아는 게 별로 없는 것이 애석하였다" 라며 자신의 심중을 밝혔다. 그래서 이익태는 2년 동안 두 번의 순력을 바탕으로 풍속을 묻고는 볼만한 곳을 찾아내 지방 화공 고경욱에게 그 중 뛰어난 경치 10곳을 조그마한 병풍에다가 위에는 사적을 쓰고 아래에는 그림을 그리게 했다.

이익태의 '탐라십경도'를 보면 제주목 동쪽으로 시작하는데 조천관(朝天館), 별방소(別防所), 성산(城山), 서귀포(西歸浦), 백록담(白鹿潭), 영곡(靈谷), 천지연(天池淵), 산방(山房), 명월소(明月所), 취병담(翠屛潭) 등이다.

1702년 박성석(朴星錫, 1650~1709)의 후임으로 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 1653~1733)은 제주목사로 와서 유명한 '탐라순력도'를 남겼으며, 또 중국의 소상팔경(瀟湘八景)을 의식해 '제주팔경(濟州八景)'을 품제했는데, 그 팔경을 살펴보면 '한라채운(漢拏彩雲), 화북제경(禾北齊景), 김녕촌수(金寧村樹), 평대저연(平岱渚烟), 어등만범(魚等晩帆), 우도서애(牛島曙靄), 조천춘랑(朝天春浪), 세화상월(細花霜月)'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팔경은 아쉽게도 제주도 동촌(東村, 정의현)의 풍광만을 지정하는 바람에 서촌(西村, 대정현)의 절경이 누락돼 있지만 '영주십경'을 다른 각도로 볼 수 있는 시각을 준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매계(梅溪) 이한우(李漢雨)의 '영주십경' 등 숱한 문사(文士)들이 나름대로 아름답게 '영주십경'을 품제하기도 했다.

1841년 제주목사로 온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 1792~1872) 또한 '영주십경'을 품제했는데 "제주 선비 고경욱이라는 자가 영주십경을 잘 그렸는데, 예전의 것을 본 떠 새기면서 지도의 크기를 예전과 비교하여 3분의 1로 줄였다고 한다. 마을의 이름과 오름, 하천 중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은 생략하여 번거로운 것을 버리고 간략하게 만들고 먹(墨)을 채색(彩色)으로 바꾸어 눈을 즐겁게 해 편히 볼 수 있도록 하였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영주십경도를 잘 그리는 고경욱에게 '탐라지도'를 그리게 해 족자로 만들었다는 사실, 또 '영주십경도'는 선비화가 고경욱이 예전의 것을 본떠 새기면서 채색으로 바꿔 그렸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현재 전해오는 영주십경 관련 그림으로는 국립민속박물관 소장의 일명 '제주도도(濟州島圖)'의 '탐라도총(耽羅都摠)', '영곡(靈谷)', '백록담(白鹿潭)', '산방(山房)' 등 4폭과 제주십경도(濟州十景圖)'의 '명월소', '천지연', '서귀소', '성산', '산방', '취병담', '조천관', '영곡', '백록담', '별방소' 등 10곳을 그린 그림인데 채색이 가미된 비교적 작은 화첩으로 경쾌한 채색으로 보아 마치 위 기록의 사실처럼 고경욱이 그렸다는 그림으로 여겨질 정도다.



#제주목도성지도(濟州牧都城之圖)

이 '제주목도성지도'는 현재 12폭 전모를 볼 수 있는 귀중한 회화식 옛 지도이다. 이 지도의 등장 경위를 말해보면, 제주도 저지 예술인 마을에 있는 예나르(대표 양의숙)에서 올 10월 24일부터 약 한 달 반 동안 '조선민화-제주문자도전'이 열리는데, 전국에 흩어져 있는 여러 소장가들의 빛나는 제주문자도 작품들과 이 귀중한 '제주목도성지도'를 함께 선보일 예정으로 옛 제주인의 미의식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기회이다. 이 '제주목도성지도'는 지금까지 제대로 알려진 적이 없는데 예나르 양의숙 대표의 노력으로 이번 제주에서 처음 소개될 예정이며, 이 회화식 지도는 현재 가나문화재단이 소장하고 있다.

제주목도성지도, 가나문화재단 소장

'제주목도성지도'는 모두 12폭으로, '제주목도성지도'라는 표제 아래 제주목 도성을 그리고 있다. 이어 '화북진', '조천관', '별방진', '성산', '서귀진', '백록담', '영곡', '천제담', '산방', '명월진', '취병담' 등으로 표제 1폭에, 11폭 경치로 구성돼 영주십일경이 되며, 기존의 영주십경에 없는 화북진이 새로 포함된 것이 다른 지도와 달리 새롭다고 하겠다. 화폭의 구성 방식은 2단 구성으로 좌목을 상단에 쓰고, 그림을 하단에 배치하고 있다.

'제주목도성지도'는 '濟州牧都城之圖' 표제와 함께 제주목의 역사적 연원을 밝히고 있다.

"제주성은 본래 옛 탐라국인데 고을라, 부을라, 양을라가 나누어 살았다. 고후 등 3인이 바다를 건너가 탐진에 정박하고는 신라에 입조하여 탐라라는 국호를 얻었다. 고려는 삼별초 난이 일어나자 원나라와 합세하여 그들을 토벌했으며, 원나라가 관리와 군대를 보내 총관부를 세우면서 동·서아막을 설치하여 말, 소, 양을 길렀는데 후에 제주라고 고쳤다. 또 태종조에 대정, 정의 두 현을 처음 설치했는데 안무사, 선무사, 순문사, 지휘사, 방어사, 부사의 직위를 지금의 목사 겸 방어사, 판관과 교수를 설치했다. 제주성의 둘레는 1만 5489척, 주성(州城) 동·서·남 3문이 있으며, 남·북수구, 홍문(虹門)이 있다. 성에는 문묘, 서원, 객관, 두 아문(衙門)이 있고, 관덕정, 망경루, 세병관, 애매헌, 우련당 등 여러 별당들이 모여 있다. 성안에는 무릇 과원이 7개소가 되며, 성안에 사는 사람들의 수천 여 호가 물고기 비늘처럼 즐비하다."

제주목 성안의 건물들은 이 지도의 연대를 규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지도에는 결승정(決勝亭)이 있는데 동문(東門) 아래, 북수구(北水口) 위로 결승정이 그려져 있다. 이 결승정은 제주목사 이원조의 '탐라지초본(耽羅誌草本)'에 의하면, "곧 옛날의 해산대(海山坮)였다. 동성(東城) 안 산짓물 위에 있었으나 지금은 폐지되었다."라는 것으로 보아 결승정이 적어도 이원조가 제주목사로 재임하던 1841년 1월~1843년 4월에는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이 지도에는 우련당(友蓮堂)이 그려져 있는데, 이 우련당 또한 이원조 목사 재임기에는 없었다. "우련당은 홍화각 남쪽에 있는데 1526년 제주목사 이수동(李壽童)이 성안에 물이 없어 못을 파서 물을 저장하여 연꽃을 심고 집을 지었는데 그 후 목사 양대수(梁大樹)가 1592년 3월에 도임하자 개구리 우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하여 못을 메워서 평지로 만들어 버렸다. 제주 목사 노봉(露峯) 김정(재임기간 1735. 3. ~ 1737. 9.)이 다시 지어 이름을 향의실이라고 고쳐 공물을 봉진하는 처소로 삼았다." 이 지도의 편년은 목사 김정의 재임기간인 1735년부터 목사 이원조의 재임기간인 1841년 이전에 그려진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김유정 미술평론가(전문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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