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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의 제주문화사전
[김유정의 제주문화사전] (25)올레(중)
올레에 생산력 높이는 기능성과 이웃 간 협력 정신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20. 09.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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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모양 마소 키우던 집의 기능성
올레 특정한 장소로 이동하는 통로

인간성 생각케 하는 상징 건축구조

올레에서 이웃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장소의 삶

인간은 장소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인간의 삶이란 곧, 장소(location)의 삶이라고도 할 수 있다. 화산섬이라서 돌이 많고, 바다 한가운데의 섬이어서 바람이 많으며, 그리고 초지가 발달해 있는 환경적인 특성으로 인해 과거 목장이 발달했다. 이런 장소의 풍토적 특성은 주거, 산업, 경관, 문화와 그리고 개인의 자아와 내면을 형성하는 데 매우 많은 영향을 끼쳤다. 어떤 장소에 사느냐에 따라 인성(人性)이 다르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사마천(司馬遷), 유안(劉安),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이븐 할둔(Ibn Khaldun), 몽테스키외(Montesquieu) 등이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장소 심리라고나 할까, 돌이 많은 지역에서 사람들은 당연히 등에 지는 문화를 선호하게 되었고, 돌을 이용한 문화가 발달했으며, 그곳에 사는 조랑말마저 다리를 높이 들고 걷기도 한다. 바람이 많은 곳에 살다 보니 사람들의 목소리는 커지고 일상의 대화는 짧으면서 성격이 급해진다. 결국 장소는 곧 그곳의 환경이 되고 그 환경은 개인들의 삶과 내면에 깊게 각인된다.

마을에서 앞바다로 가는 바당 올레.

#올레의 모양, 크기, 구조

올레의 형태는 올레가 시작되는 어귀에서 마당 진입까지의 모양을 말한다. 그 형태를 보면, 직선형, C자형으로 구부러진 형과 그 반대 형, ㄱ형, S자형 등이 있으며, 올레 없이 마을 길에서 바로 집안으로 경우도 있다. 올레 어귀에는 원래 정주석이 놓여 있었고, 올래 어귀 양편에 잘 다듬어진 돌을 쌓아 입구를 단정하게 표시했다. 시대가 변하면서 그 어귀를 보호하기 위해 어귀담을 놓아두었고, 그 전에는 정주석을 양옆으로 세워 정낭을 걸치기도 했다. 그 전에는 정주목이라고 하여 굴묵기 나무와 같은 단단한 나무로 만들어 세웠다.

돌담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새마을 운동부터인데 이때부터 돌담을 없애고 돌과 시멘트를 혼합한 돌담을 쌓다가 시멘트 블럭 공장이 생기면서 시멘트 블록담으로 교체되다가 최근에는 이미테이션(모조) 돌담이 등장했다. 그러나 시멘트+돌, 시멘트는 일제강점기에 항만, 도로, 관사, 병사(兵舍), 포대기지, 벙커, 도대불, 인공동굴 등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올레의 형태 기원 원장(圓場)과 사장(蛇場). 탐라순력도.

올레의 돌담 높이는 지역간 차이는 있지만 대개 약 100~150cm 사이를 오간다. 어른 가슴 높이가 돼야 집안에서 바라봐서 누가 집안으로 오는지 쉽게 알 수 있는 높이다. 또한 올렛담을 높게 쌓지 않는 것은 남향의 돌담은 햇볕이 잘 들게 하기 위한 배려이다. 그러나 해안가 마을의 올렛담이나 집담은 북풍, 북서풍, 해풍(해풍)에 따라 1m 80㎝~2m 40㎝ 이상 되는 경우가 있으며, 해안의 집담은 대체로 처마를 가려 집안으로 소금끼가 오는 것을 방지했다. 해안의 돌담은 태풍 시 해안 파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돌담구멍을 막거나 집 안쪽으로 돌담 하단에서부터 위로 올수록 다겹의 담을 쌓아 혹시나 모를 파도의 압력에 대비한다.

올레의 너비는 약 2m 정도로 우마차가 짐을 싣고 오갈 수 있는 넓이다. 올레가 이웃집보다 지형이 낮게 되면 비가 올 때마다 올레에 물이 고이게 되면 팡돌을 나란히 놓아 그것을 밟고 지나간다. 올레의 돌담 형태는 세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잡담쌓기'라고 하여 불규칙한 돌을 맞춰 쌓는 방식이 있고, '큰굽담'이라고 하여 기초를 튼실하게 하고자 큰 돌로 하단부를 쌓는 방식(큰돌처리 방식), '잣굽담'이라고 하여 잔돌을 하단부에 촘촘히 쌓아놓고 그 위에 중간돌을 쌓는 방식이 있는데 이웃의 지형보다 경사가 낮아서 급물살이 지게 되면 올레 돌담굽이 파여 돌담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여 물흐름을 조절하는 것이다.

김병화 작 '올레길', 유채 12호, 1993년.

#올레의 형태에 대하여

정주석은 마소를 키우는 집의 살채기와 같은 것으로, 바람 많은 풍토 때문에 정낭이라고 하는 긴 통나무를 1개에서 5개까지 걸었다. 그러나 정낭의 3개론은 민간에 떠도는 변형된 말들을 커뮤니케이션 논리에 맞춘 통신이론의 수학적 왜곡이었던 것이다.

정주석(정낭)은 옛날 마소를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게 한 장치였기 때문에 기르는 말의 크기에 따라 정주석의 높이가 결정되고, 목축시대가 지나서 사람이 있을 때는 정낭 모두를 내리지만 사람이 없을 때는 정낭 모두를 걸어둔다. 집 가까이 나갈 때는 편의상 한 둘을 걸어두고 출타시에는 있는 정낭 모두를 걸어둔다. 이 정낭 형태는 목축을 주로 하는 티벳에 이런 유사한 장치가 있다.

올레의 모양에 대해 그 기능을 덧붙이면, 마소를 키우던 집의 기능성을 염두에 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말을 관리하게 만든 것이 살채기를 이용한 원장(圓牆)과 사장(蛇牆)이라는 장치다. 원장은 둥그런 광장과 같아서 목장의 말들을 모아두는 마당에 해당하고, 사장(蛇牆)은 긴 올레와 같은 기능을 하는데 마당에 몰아넣었던 말을 다시 선별하거나 이동할 때 통로로 사용한다. 또 과거에는 올레 앞에 나무를 심었었다. 여름철이나 농사철이 되면 그 나무에 마소를 자주 매어 두었는데 이것도 목축사회의 습속이다.

옛날 올레가 대개 직선이 없고 둥그름한 곡선의 형태에다 폭이 좁은 이유는 마소를 집안에서 키우다 번쉐를 할 때 거리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직선은 마소가 급히 나감으로써 다른 올레에서 나오는 마소들이 있어 거리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을 막고자 하는 장치인 것이다. 번쉐란 말과 소가 있는 집에서 한 사람씩 순번을 정해 마을 공동목장에 가 하루 동안 마소를 돌보는 것을 말한다. 대개 마을의 소는 20마리 이상이 되며, 해당 당번은 탈없이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마소를 잘 먹이고 마을로 오는데 마소들이 스스로 자기의 올레를 알아서 집안으로 들어간다. 말 목장의 효용성은 풀어둔 말들을 어떻게 통제하고 이동하게 하며, 들고 나는 것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관리하는가에 달렸다.

집과 올레의 형태가 목장 중심으로 살았던 목축인들의 습속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고, 유교가 전파되면서 문벌, 양반·사대부, 양민, 천민이라는 신분 귀천이 생겨나 이문간(대문)·지애집(기와집)과 같은 정주형(定住型) 권위가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올레는 통로이며 바람의 길

올레는 특정한 장소로 이동하는 통로이며 길을 말하기도 한다. 잠녀들이 많은 동복, 김녕마을이나 바람이 센 신촌마을에서는 일하러 바다로 나가는 올레를 볼 수 있다. 해안 마을에 사는 잠녀들이 바다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바다의 생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샛길의 역할도 한다. 마을 앞바다를 '앞바르'라고 부르는 것도 바다에 자주 가야하기 때문에 붙여진 말이고, 바로 마을에서 바다로 갈 수 있게 만든 바당 올레가 있다. 그러니까 올레는 때에 따라서 골목이 긴 형태를 부르는 말이기도 하며, 당올레가 본향당에 가는 긴 올레를 말하는 것과 같다.

또한 올레는 태풍이 오면 바람을 분산시켜 완화시키는 역할도 한다. 바다로부터 직접 불어오는 강풍을 해안으로 열린 올레들을 통해 마을 밖 한라산 방향으로 빠져나가도록 하여 강풍으로부터 마을의 집들을 보호한다.

결론적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올레가 주는 의미는 대단히 중요하다. 의미라면 한 사회 공동체에서 평등 사회를 지향하면서도 개인과 공동체, 개인과 개인의 수평적 관계, 그리고 소유를 분명히 하기 위하여, 공적 영역 내에서의 사적 영역의 독자성을 돋보이게 해준다. 또한 올레는 과거 생산력을 높이기 위한 기능성과 더불어 이웃 간의 선린적(善隣的)인 협력의 정신을 담고 있어서 오늘날 사적 이익으로 해체되는 차가운 현대의 인간성을 돌아보게 하는 상징적 건축구조 개념이기도 하다. 또한 올레는 산 자들의 집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망자의 집, 영혼이 다니는 올레도 있다. <김유정 미술평론가(전문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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