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의 제주문화사전] (19)탐라의 일노래 (상)

[김유정의 제주문화사전] (19)탐라의 일노래 (상)
탐라민요 복원운동의 흥, 우리 노래에 날개가 있다
  • 입력 : 2020. 07.20(월)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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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제주시 산지천 고씨주택 마당에서 열린 제주 일노래 상설공연에서 제주특별자치도무형문화재 제16호 제주농요보존회 보유자 김향옥과 전수자들이 일노래를 부르고 있다.

중국 최초의 일노래인 '격앙가'
민간의 삶의 문화 새롭게 조명
탐라 노래 백미 일노래에 있어

#일 노래의 시작

첸무(錢穆, 1895~1990)는 '중국문학사'에서 '사(史)란 물이 흐르는 것처럼 흘러가고 변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모든 물에는 흐르는 근원이 있기 마련이고, 흘러 이르는 곳이 있으니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결과가 바로 '사(史)'로 정리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 인간의 삶의 흔적을 기록하는 것을 역사(歷史)라고 하는 것이고, 우리의 삶도 물과 같이 시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 우리의 노래도 분명 그 기원이 있을 것이고, 그것의 형태는 나라, 지역, 시대를 막론하고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탐라라고 할 때 오늘 우리가 부르는 노래 속에는 그 기원으로 전해오는 것이 있다. 진화론적으로 부모 없는 자식이 없지만 말이다. 앞으로 AI가 주도하는 시대는 다르겠지만 적어도 현재의 역사 이전에는 씨와 열매의 관계로 말할 수가 있다.

"시(詩)는 뜻을 말하는 것이고, 노래(歌)는 말을 길게 읊조리는 것이고, 성(聲)은 길게 읊조리는 데 의지하고, 율(律)은 소리를 조화롭게 한 것이다."라고 했는데 이 말에 이미 시와 노래에 대한 정의가 들어있다. 시 속에 노래가 있고, 소리를 내어 말을 하다 보면 리듬이 있게 돼, 노래란 '뜻이 있게 되고 음성으로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이라고나 할까.

굿노래인 서우젯소리에 맞춰 북을 치는 이중춘 큰 심방의 생전 모습. 2004년 4월 26일 촬영한 사진이다.

미술사 전통이론에 '화중유시(畵中有詩) 시중유화(詩中有畵), 그림 속에 시가 있고, 시 속에 그림이 있다'라는 것도 말과 노래의 관계를 빗댄 것과 다름없다.

여기서 시를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시가 뜻을 말하고 형식이 가미되면 그것을 문학으로, 미술로, 음악으로든 예술에 이르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 소리라고 하는 청각의 예술은 눈과 뜻으로만 인식하는 것과는 다르게 된다. 인간은 소리에 대개 민감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곳에서 오로지 의지할 것은 들려오는 소리이고, 그 소리의 다양한 경험만이 그 소리가 무슨 소리이고, 어떤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가장 먼저 열리고, 가장 늦게 닫히는 것이 귀인데 눈을 뜨기 전과 눈을 감은 후에도 귀의 작용, 즉 청각이 우리의 존재를 가장 잘 감지하는 감각임에 틀림없다.

문자 기록이란 위대한 것이다. 하지만 기록하지 못하는 사회도 말로 전승한다. 문자 없는 사회도 말로 그것을 남기며 세대 간 전승이 이뤄지는 훌륭한 수단으로 노래가 있는 것이다. 중국문학사의 처음은 바로 노래다. 산문보다는 운문이 먼저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문서 기록의 한계가 말해주듯이 운문의 기록은 삼황시대(三皇時代) 이전에는 전하지 않는다. 중국 최초의 노래는 민간의 삶의 문화가 새롭게 조명된 '격앙가(激昻歌)'가 있으며, 이 노래는 '제왕세기(帝王世紀)'에 실려있다. 또 순임금 때 지어졌다는 '경운가(卿雲歌)'가 있는데 '상서(尙書)·대전(大傳)'에 실린 노래이다.

밭에서 마늘을 뽑는 사람들.



'격앙가(激昻歌)'

해 뜨면 일하고 해지면 쉰다(日出而作 日入而息),

우물 파서 마시고 밭 갈아서 먹으니(鑿井而飮 耕田而食),

임금의 힘이 나에게 무슨 소용있는가?(帝力於我何有哉).



'경운가(卿雲歌)'

상서로운 구름 찬란하게 굽이굽이 퍼져 맴돈다(卿雲爛兮 규만만兮),

햇님과 달님의 광채는 매일 아침 영원하여라(日月光華 旦復旦兮).



해 뜨면 일해서 먹고 해지면 자고, 해와 달의 밝음을 고마워하니 임금의 역할이 무색하기만 하다. 이 노래에서 말하는 것은 일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일이야말로 문명을 만든 힘이었다. 모든 인류의 출발이 생존을 위해 일해왔고, 후에 그것이 역사의 동력이 된 것이다.



#삶의 노래, 민중의 노래, 시경(詩經)

일에는 민간의 감정이 풍부하게 녹아있고 노래에는 그 정서가 담겨 있다. 인류 문화사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3000년 전 '시경(詩經)'에는 311편의 시가(詩歌)가 들어있다.

'시경'에는 시가 스타일로 육의(六義)라는 것이 있는데 풍(風)·부(賦)·비(比)·흥(興)·아(雅)·송(頌) 등 여섯 가지다. 여기서 풍(風)은 민간에서 부르는 노래로, '시경'에는 모두 십오국풍(十五國風), 즉 열 다섯 나라(지역)의 풍토와 풍속, 그리고 위정자에 대한 노래를 채집한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은 개인의 인성(人性)이 모두 모여있기 때문에 희노애락의 감정은 무궁무진하다. 거기에 사회적인 상황과 시대적 여건이 끼어들면 인간세계는 혼돈에서 조화가 나오는 것이 맞다. 일과 행복, 환난과 격정, 사랑과 이별, 기다림과 슬픔 등 온갖 정서가 노래에 담기게 되는 것이다.

일하면서도 부역 나간 남편 걱정에 마음 졸이는 여인을 노래한 '영이(령耳)'에, '씀바귀 캐고 또 캐도/ 바구니에 차질 않네,/ 아아, 그이 생각 가슴에 배어/바구니를 길가에 놓고 말았네.'라 표현하거나, 실연(失戀)한 여인의 심정을 그린 시 '교동(狡童)'에,'저 교활한 자식 나하고는 말도 안 하네./오직 너 때문에 밥도 제대로 못 먹는단 말이야.//저 교활한 녀석, 나와 밥도 안 먹네./ 오직 너 때문에, 쉬지도 못한단 말이야.' 하고 여인의 원망이 가득하다.

또 사랑받기를 갈구하는 '건상(건裳)'에서, '당신이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치마 걷고 진수(溱水)라도 건너련만/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으시니 어찌 다른 사람인들 없으리까./얄밉고 밉살스런 나의 님이여.'라고 하듯 예나 지금이나 사랑의 양가적 감정인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여전한 것 같다.

학창시절에 5월이면 불렀던 양주동 작사의 '어버이 날 노래'의 모티프가 됐던 노래는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과 '시경' '육아(蓼莪)'이다.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고 싶어도 이제는 안 계셔서 하지 못하는 것을 한탄하는 노래다. '(…) 애처롭고 애처러운 나의 어버이/나를 낳아 갖은 고생 다하셨도다, (…)/ 아버지 안 계시니 누굴 믿으며/어머니 없으시니 뉘께 기대랴./(…)어머니는 고생하며 키워주셨지/쓰다듬어주시고 먹여주시고/키우시고 자라게 하여주셨네/크나큰 그 은덕 갚으려 하면/저 넓은 하늘도 끝이 없구나 (…)'라고 애석해 한다.

다양한 '시경'의 풍속 시가들이 어째 탐라의 우리 노래를 생각나게 할까. 사람의 일상이 노동에 기반하고 있고, 그것에 얽힌 이야기가 시공간이 변해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어기여차 우리 노래 물 넘어가라

민요란 민간에서 만들어지고 민이 부르는 노래다. 민을 괄시했던 우리 역사를 반성해야 한다. 그간 민을 우습게 알던 정치의 시대가 가고 나니 민(民)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심리적 해방감이 시원하게 트이면서 민간의 삶의 문화가 새롭게 조명받을 것이다. 바로 억압기제를 물리치고 자율성에 근거하게 되면 그것으로부터 힘이 나오게 된다. 지금껏 민의 노래는 숨을 제대로 쉬지도 못했고, 관료주의에 의해 관광용으로만 취급됐다. 현장을 잃은 무대는 생기가 쇠퇴한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 지금 깨어 현실은 보니, 안타깝게도 여러 소리꾼들이 이 세상에 없다. 그래도 그 자녀 세대가 다시 그것을 잇겠다고 지금 무대를 꾸미고 있으니 작은 일이 곧 큰일의 시작임을 절감케 한다. 지금 세태의 만상(萬狀)이 자기 땅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고, 그래서 기억나는 추억마저 없으니 상상력을 어찌 기대하랴. 어떤 가락이 우리의 노래인지 알게 하는 탐라민요복원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흥(興)은 에너지에서 나오고 에너지는 사회를 건강케 할 것이다. 탐라 노래의 백미는 일노래지만 그 시작은 바로 굿 노래이다. 굿이 바로 원시 종합예술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김유정 미술평론가(전문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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