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문상금 시집 ‘첫사랑’

[이 책] 문상금 시집 ‘첫사랑’
별빛 쏟아지는 서귀포에 띄운 연서
  • 입력 : 2020. 06.19(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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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의 문상금 시인이 시집 ‘첫사랑’을 통해 별빛 쏟아지는 고향의 삶과 풍경을 노래했다.

고향 향한 눈먼 사랑 노래
있는 그대로 빛나는 풍경

“누군가의 따뜻한 별 되어”




여기, 눈먼 사랑이 있다. 서귀포가 낳은 사랑이다. 아득히 먼 시절부터 한자리를 지켜온 하논은 버티는 힘을 가르쳤고 서귀포에 사는 결 고운 사람들은 감성을 키워줬다. 문상금 시인이 고향에 띄운 연서들로 직접 표지화와 삽화를 그려넣은 시집 '첫사랑'을 묶었다.

시인은 서귀포에서 쏟아져내리는 별을 본다. '가만히/ 바라만 보아도/ 따뜻한 별// 가만히/불러만 보아도/ 따뜻한 별'('나의 별에게')이다. 그곳에선 '초록인 것들은/ 초록색 그대로// 흰 파도는/ 파도꽃 그대로' 빛이 난다. 별은 시집의 처음에 등장한 이래 서귀포를 그린 시편마다 반짝인다.

그가 읊은 '미친 사랑의 노래' 연작은 서귀포의 오래된 길에 머문다. 도심의 명동로다. '잠시 길을 잃었지만/ 아직도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이/ 밤마다 모여들어/ 불야성을 이루는 곳// 때로는 푸르고 시린/ 별을 품은 사람들이/ 모여서 남루한 술 한 잔에/ 목청껏 떠들어대는 곳'이다. 시의 화자 역시 긴 겨울밤 고단했던 하루를 끝낸 뒤 명동로에 가서 몸을 뉜다.

쪽빛 바다 가르는 물살에 무지개가 뜬다는 서귀포엔 예술가들이 산다. 붉고 경사진 알자리 동산의 피난화가 이중섭, 이어도를 건너오는 구부정한 사내를 닮은 화가 변시지, 탈속의 행초서와 파체(破體)를 완성한 서예가 현중화가 그들이다. 바다와 섬을 노래해온 구순의 이생진 시인도 서귀포와 인연이 있다.

시집 말미엔 시작(詩作)을 위한 단상과 산문을 실었다. 매일 일기처럼 시를 쓴다는 시인은 혼신을 다해 시 창작을 이어가겠다며 보목 해안의 손바닥 가시선인장이 있는 풍경으로 이끈다. 울퉁불퉁한 물집에 상처가 난 외형을 지닌 가시선인장에서 외로움을 견디며 악착같이 살아가는 삶을 떠올린 시인은 그만 눈물이 난다. 산다는 건 저마다의 탑을 쌓으며 서두르지 않고 한 발 한 발 걸어가는 것이라는 시인은 하늘을 올려본다. '누군가의 가장 따뜻한 별이 되어/ 오래도록 떠있고 싶다'('어느 날 문득 별이 보일 때')는 바람이 다시 스친다. 한그루. 1만원.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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