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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찬미의 한라칼럼] 때론 순진무구한 용기가 필요하다
강민성 수습 기자 kms6510@ihalla.com
입력 : 2020. 02.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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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성에 젖은 세상을 바꾸기 힘들다고 생각하던 필자는 최근에 인문사회학자들의 연구 자율성 회복 운동에 동참하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연구자들은 오래 전부터 대학의 기업식 경영과 교육부의 획일적 정책 아래 연구를 위한 연구가 아니라 성과주의식 논문 쓰기를 강요받아 왔었다. 연구의 주체에게서 연구할 자유를 뺏는 이 심각한 사안에 적극 나섰어야 할 연구자들은 정작 취업난 속에서 각자도생하느라 그리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수수방관 태도로 문제를 더 키워 버렸다. 이제는 구세주라도 등장하지 않는 한 해결하기 힘든 거대한 문제로만 여겨져, 절체절명 위기인데도 어느 누구도 섣불리 나서지를 못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문제의식을 가진 연구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변화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근래 알게 되었다. 사회적 기여를 할 수 있는 지식인 문화를 스스로 만들자는 이 연대의 진심 어린 취지에 이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과외의 일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연구자 주도의 학술 생태계를 조성해야 할 책무는 연구자 자신에게 있다는 생각으로 모인 사람들이라 너나 할 것 없이 헌신적이고 열정적이었다.

그렇다고 항상 신바람이 분 것만은 아니었다. 여러 일 중 연구 지원이나 평가 관련 기관들의 개선을 요구하는 것도 있었는데, 건의하기 전부터 과연 이게 될까라는 의구심으로 위축된 적이 꽤 많았다. 아직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데다 규모도 작은 연대가 연구자를 대표하며 나서는 게 무모해 보이고 도리어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라는 의심과 염려가 우리를 때론 주춤거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고백한대로, 소위 저항의 목소리를 억누르는 것은 정작 막강한 권력을 쥔 상대가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 기어 나오는 패배의식이 먼저인가보다.

하지만 나이와 경험이 제법 쌓인 우리는 이 비굴함을 그 자체로 인정하기 어려워한다. 쉽게 변하지 않는 세상의 관성을 삶의 이치인 양 받아들이며 그런 본인은 식견이 넓고 노련하되, 변화를 외치는 이들의 열망과 노력을 사회초년생이나 할 법한 실수로 치부해버린다. 이길 수 없어 보이는 싸움은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게 낫다며 자신의 비겁함을 유려하게 정당화해 버리기도 한다.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것을 능사라 여기고 "가장 완벽한 계획은 무계획"이라고 되뇌면서 스스로를 무력한 존재로 만드는 것 같다.

강한 소신과 사명감으로 뭉친 연구자 연대도 그 무엇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먼저 극복해야만 했다. 쉽지는 않았지만 우직하게 그 과정을 겪다 보니 이제는 기관들이 조금씩 우리 목소리를 신경 쓰기 시작했고 냉소를 보내거나 무관심했던 다른 연구자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현재 진행형인 이 운동의 결과는 아직 알 수 없고 어떤 미래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포기하지 않는 용기와 패기만큼은 다음 세대들에게 당당한 모습으로 넘겨줄 수 있지 않을까. 성공가능성 여부를 떠나 서슴지 않고 필요한 때 용기를 내는 이들이 늘어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이 사회가 모두를 쉽게 길들일 엄두만큼은 내지 못할 것이다. <고찬미 한국학중앙연구원 전문위원·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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