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바다와 문학] (42)문무병의 '바다를 사랑하는 제주 아이들에게'

[제주바다와 문학] (42)문무병의 '바다를 사랑하는 제주 아이들에게'
“바다의 껍질을 버리고 심연을 보아라”
  • 입력 : 2020. 02.21(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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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로 수학여행 온 아이들이 제주바다에서 추억을 쌓고 있다. 문무병 시인은 아이들에게 '바다의 껍질을 버리고 제주바다의 심연을 들여다 보아라'로 노래했다. /사진=한라일보DB

심방이 되고 싶다는 노래
관광지 원색 감탄사 말고
낭만의 함성 밑을 살피길

그는 심방(무당)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의 굿판에 불러낼 이들은 무명씨로 살다간 서러운 혼백, 산 속에서 길을 잃고 바다에서 좌초한 힘없는 우리 형제들이다. 그는 심방이 되어 온갖 속임수, 비리와 부정, 그 절망의 늪을 밀어내려 한다. 왜 심방이 되려는가를 묻는다면 거기엔 제주4·3이 있다. 아니, 그것만이 아니다. 날개를 꺾어야 하는 아기장수와 민란이 있었다. 그보다 더 거슬러 오르다보면 섬이 품은 슬픔의 역사가 깊고 오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아이들에게 제주바다를 빌려 이 땅이 흘러흘러온 사연을 잊지 말아 달라고 한다. 제주 문무병 시인의 첫 시집 '엉겅퀴꽃'(1999)을 따라 그의 노래를 들어보자.

'육지사람들 관광와서 바다를 향해 터뜨리는 원색의 감탄사를 흉내내는 아이들아, 바다는 우리 어머니의 뼈와 살이 묻혀있는 무덤이란다. 파도에 밀려오는 해초와 같이, 아이들을 굶기지 않으려고 물에 들어 처절하게 날아오르던 숨비소리, 이 모든 것이 아이들아, 아름다운 바다의 심연에 있는 진짜 현실의 바다란다.'('바다를 사랑하는 제주 아이들에게' 중에서)

시인에게 제주바다는 '슬픈 노래'를 띄우는 곳이다. 왜 아니겠는가. 제주 바닷가에는 해마다 물질하다 죽거나 풍랑을 만나 죽은 몇 구의 시체들이 떠오른다. 그때마다 우리 어머니들은 요왕국 사자들이 보낸 시신이라 여겨 몸을 닦아주고 가지런히 묻어 저승 상마을로 보내주는 무혼굿을 치렀다. '바다에서 죽은 이름모를 시신들을 고이 잠재우지 않고서야 어찌 열길 물속을 꽃밭이라 하며 비창 하나로 들어가 해초를 캐며 죽음의 두려움을 다 잊겠느냐.'

요왕국엔 좋은 밥, 좋은 옷만 있지 않다. 산호꽃 피고 이름모를 어별들이 평화롭게 헤엄치는 신비스런 꽃밭도 있지만 돌밭을 일구던 어머니의 손으로 막힌 숨 몰아쉬며 일구어놓은 해전(海田)도 있다. 거기엔 우뭇가사리, 청각, 소라, 미역, 해삼, 전복, 해초가 자란다. 그 바다를 지키기 위해 우리 어머니들은 비창 들고 왜놈들에게 달려들었다.

목숨까지 내놓았던 이 섬은 오늘날 안녕한가. '민중열전' 연작은 그렇지 않다고 읊는다. 세 번째 시편 '중문관광단지에서 바나나를 파는 아주머니'에서 시인은 관광단지 개발로 마을이 없어지고 마을 수호신마저 사라진 풍경을 그려냈다. 자기 땅에서 쫓겨나 좌판을 벌이는 이를 두고 '이 시대를 살고 있는 가장 전형적인 제주여자'라고 했다.

시인은 '바다를 사랑하는 제주 아이들에게' 거듭 당부한다. '바다의 껍질을 버리고 제주바다의 심연을 들여다 보아라.' 바다에서 외치는 그 낭만의 함성 밑에는 아침밥이 저승밥인 줄을 몰라 이승을 떠난 우리 어머니들이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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