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성평등 문화가 깃든다] (1)프롤로그 - '강인하고 억척스런 여성의 그 굴레'

[제주에 성평등 문화가 깃든다] (1)프롤로그 - '강인하고 억척스런 여성의 그 굴레'
성평등, 차이·억압 벗어나 '제자리로 돌리는 일'
  • 입력 : 2019. 07.03(수) 00:00
  • 이소진 기자 sj@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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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운동 주역·경제인 등 제주사회 주체적 활동
남성 중심 사회 속 위축… 인식개선·방법 모색


제주도내 성평등 수준은 얼마나 될까. 제주도는 여성·바람·돌이 많은 '삼다도(三多島)'로 불린다. 그만큼 여성은 제주도의 중요한 구성원이었다. 하지만 알려진 것과 달리 사회 속 여성에 대한 인식과 지위는 낮았다. 앞으로 양성평등주간(7월 1~7일)을 계기로 10회의 기획을 통해 제주도내 성평등 문화 수준을 살펴보고 성평등 정책이 가야할 길을 모색해본다.



제주도에는 남성 못지 않게 사회생활을 하거나 시대 변화를 일으켰던 여성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제주해녀항일운동이 있다. 제주해녀들의 항일운동은 1930년대 해녀조합의 수탈에 대한 저항에서 시작된다. 해녀의 권익을 보장해줘야할 해녀조합이 어용화돼 횡포가 극에 달했던 당시 성산포에서 해초 부정사건이 발생했고 해녀들을 구금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이에 분노한 제주해녀들은 1931년부터 1932년 1월까지 연 인원 1만7000여명의 참여와 대소 집회 및 시위 연 230여회에 달하는 대규모 운동을 전개했다.

푸는체 바닥을 짜고 있는 제주여인. 1984년 고광민 작. 출처=제주학아카이브 제주학연구센터

당시 단순 생존권 투쟁이 아닌, 항일운동으로 점차 확대돼, 일제강점기시대에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여성대중의 항일운동으로서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

또 독립운동가이면서 제주 1호 여성 교장, 교육감을 지낸 최정숙 선생은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 학생 79명으로 조직된 소녀결사대를 조직해 활동하다 옥고를 치른 인물이다. 귀향 후에도 1921년 문맹자와 부녀자들을 모아 글자를 가르치는 여수원을 설립하고 1949년 신성여자중학교를 설립하는 등 교육운동을 전개했다.

최정숙 선생과 함께 주목받는 여성독립운동가는 강평국 선생이다. 제주 최초 여성교사인 그는 제주 최초 진보청년단체인 '반역자구락부' 창립에 참여했으며, 최정숙·김시숙·이재량과 더불어 여성의 의식 향상과 권익 보호를 위해 제주여자청년회를 조직, 주도했다. 최초의 해외 여성 대학유학생이기도 한 그는 일본에서도 학업 못지 않게 항일운동에 적극 가담했다.

지게로 짐을 지어 나르고 있는 제주여인. 1992년 고광민 작.

이보다 시대를 더 앞서 간다면 '조선의 여성 사회 활동가' 거상 김만덕도 있다. 조선 정조시대 제주에서 유통업을 전개한 '여성 경제인'으로서 많은 부를 모았으며, 모든 재산을 기근으로 어려움을 겪던 제주인들을 살려냈다. 이같은 선행은 '조선왕조실록'에도 실려있을 정도다.

또 태초 제주섬을 창조했다는 전설 속 주인공은 바로 여성인 '설문대 할망'이다. 그 정도로 '제주여성'은 제주역사 속에 늘 존재해 왔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제주여성은 남성 중심의 역사 밖으로 밀려났다.

실제로 여성들이 독립운동 일선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음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이름을 남지지 못하거나 후손이나 연구가 없고 행정적 무관심 때문에 방치되는 경우가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아기돌보는 여자아이

정여진 제주여성가족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조사한'제주 여성독립운동가 재조명 방안'을 보면 "우리나라 독립유공 서훈자는 약 1만5000여명이며 그중 여성은 357명으로 2.4%에 불과하다"며 "제주 여성독립운동유공자의 훈격을 보면, 전국보다 더 하향돼 독립장, 애국장은 없고 애족장 1명, 건국포장 4명, 대통령 표창 3명"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러한 환경은 여성들의 가치관과 자기 인식, 태도에도 중요한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보인다. 오랜 역사적 경험 속에서 상대적으로 남성의 하위에 위치해 있었으며, 사회 지배체제에서 배제돼 왔다. 스스로 위축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개탁작업중인 한수리 어촌계 해녀들. 2006년 홍경자 작.

제주 속담 중에서도 '아들 가진 사람은 윗길로 가고, 딸 가진 사람은 아랫길로 걷는다'는 말이 있다.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 마치 죄처럼 살았다.

주체적 여성으로서, 경제인으로서 제주사회에서 활발히 활동했음에도 가사노동, 육아 등도 독박해야 했다.

성평등은 '제자리로 돌리는 일'이다. 여성의 삶을 규정하던 차이, 억압, 종속 등의 단어를, 주변인, 타인 등으로 규정되던 인식을 벗어나 남녀 모두가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말 그대로 인권인 셈이다.

앞으로 기획은 ▷제주의 성평등 정책 현주소 ▷성평등과 성불평등 ▷성인권 교육 현장 탐방 및 실태 점검 ▷여성친화우수사례 탐방 등을 통해 효과적인 성평등 문화 확산 방안을 모색할 방침이다. 이소진 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전문가 인터뷰 / 이현숙 제주도성평등정책관
"남녀 차이와 다양성 인정부터"


"성평등은 남성과 여성의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것으로 인한 차별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현숙 성평등정책관.

제주도는 지난해 8월 민선 7기 조직개편을 통해 성평등정책 전담부서를 신설했다. 기존 여성정책에서 성 주류화 정책을 분리해 업무의 전문성과 조직운영의 효과성을 강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개방형 직위 공모를 통해 임명된 지자체 첫, 제주 첫 성평등정책관인 이현숙 정책관을 만났다.

그는 성평등에 대해 "남녀의 지위나 권한, 서로 관계에서의 평등"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학교나 회사에서, 가정과 개인간의 관계 등 모든 부분에 평등을 포함하는 것이기에 일상에서부터 성평등할 수 있도록 모두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주여성에 대한 양면적 이미지에 대해서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높은 반면 가정내 성평등의식은 낮아서 집안일, 육아활동까지 도맡는 것을 '억척스럽고 강인한 제주 여성'으로 굴레를 씌우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며 "여성스스로 나서야 하는게 중요한데, 그 역할을 성평등정책관이 할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 정책관은 "성평등정책관을 중심으로 도정의 모든 정책에 차별금지와 성평등 개념을 녹여 정책을 광범위하게 펼칠 것"이라며 "모든 부서 간에 벽을 뛰어넘고 모든 정책에 성평등, 차별금지, 성폭력 해결 등을 위한 여러 관점을 녹여낼 수 있도록 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소진 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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