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시조·소설 당선소감

[2018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시조·소설 당선소감
  • 입력 : 2018. 01.01(월) 18: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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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당선소감] 조직형 "마음 한편 따뜻이 지피는 시를"

말을 하고 싶었다. 꾹꾹 눌러 억제하고 있었던 내 안의 말과 내게 던지는 말들을 모아 이야기하고 싶었다.

새로이 보이는 아름다운 세계가 내 안에서 일어났다. 그 새로운 세계에서 아름다운 사람을 만났고, 말들이 뿌리를 내리면서 친숙했던 것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오래전에 시가 무서워 경계하며 도망을 쳤던 적이 있었다. 시인들은 선택받은 사람만이 올라갈 수 있는 높은 곳에 있었다.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살며 세상과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었다. 감히 어울릴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그러다 아주 늦게 내 말이 하고 싶어졌을 때 그 옛날로 돌아가 다시 한 번 뛰어들어보자고 용감하게 문을 두드렸다. 낯선 세계는 내가 부딪히지 않으면 안되었으므로 활력이 생겼다.

제주문화원에서 같이 공부하며 힘이 됐던 문우들, 무엇보다 칭찬으로 고래를 춤추게 했던 선생님이 계셨기에 이렇게 올라설 수 없는 자리를 차지한 것 같다.

뱃머리를 빳빳이 쳐들고 앞으로만 나아가는 배는 뒤돌아보지 않으며, 보이지 않는 것들이 사랑으로 밀어주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시를 읽는 사람들의 마음 한편을 따뜻하게 지피는 시를 쓰고 싶다.

연습경기는 끝났다. 연습으로 돌릴 수 없는 본 경기에 임해야 한다는 무거운 마음을 숨길 수 없다. 이제부터 새로운 시작이니 청춘이다. 징징거리지 않고 내 말을 들어 줄 사람들에게 겸손한 마음으로 다가가고, 아름다운 세계를 열어가고자 한다. 제 작품들을 놓고 끝까지 고민했을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한라일보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약력 ▷1953년 대구 출생 ▷영남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제주문화원 문예창작교실 수료 ▷3년째 제주 거주

[시조 당선소감] 박미소 "즐거움보다는 더 큰 두려움이"

그동안 시를 쓰기 위해 삶을 절제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애달도록 시간을 쪼개고 태도와 습관을 바꾸는 일은 저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하지만 부박한 일상생활을 추슬러가며 시에 집중할 수 있었던 기억은 제 생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몸짓으로 오롯이 남아 있습니다. 어려움도 많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시를 습작하는 그 시간과 고통은 식어버린 열정을 되살리는 일이었으므로, 저는 지금 그 누구보다도 아주 행복한 사람이라고 자위하고 싶습니다.

당선 소식을 최광모 회원의 '중앙신인문학상' 시상식장에서 들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 강력한 자기력에 한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즐거움보다는 너무 큰 두려움이 부메랑처럼 날아와 오랫동안 가슴을 따끔거리게 했습니다. 막연했던 것이 현실로 다가왔으므로 혼자 감당키 힘든 현기증이 제 몸을 비틀거리게 했습니다.

당선의 기회를 주신 한라일보 관계자 분들과 큰 힘을 얻게 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이 지면을 통해 그동안 함께 시심을 주고받으며 공부한 '교상학당' 시조아카데미 회원들께 미안함과 더불어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리고 "열정은 누구나 가질 수 있으나, 그렇다고 또 아무나 쉽게 가질 수 없는 재능"이라고 늘 강조하신 이교상 선생님의 애정에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시면서도, 그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여 앞으로 더욱 겸손하게 좋은 작품으로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라는 선생님의 따끔한 충고 오늘 온몸에 깊이 새겨 그 염려가 기쁨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나 곁에서 지켜봐주며 응원해준 가족과 세월을 홀로 삼키시며 언제나 격려를 아끼지 않은 어머니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 아름다운 시인으로 살기 위해서 더욱 노력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약력 ▷본명 박경희 ▷1966년 경북 상주 출생 ▷'창작21작가회' 회원 ▷'교상학당' 시조 아카데미 회원

[소설 당선소감] 이정연 "쓰는 일만이 존재를 증명한다"

에밀리 디킨슨의 삶을 다룬 영화 '조용한 열정'을 보고 난 뒤였습니다. 살아있을 때, 일곱 편의 시만을 발표한 디킨슨은 사후에 2000여 편의 시를 남겼습니다. 내게 물었습니다. 세상이 응답하지 않아도 계속 밀고 나갈 힘이 있는가 하고. 대답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난 쓸 거야, 희미한 대답이 들렸습니다. 희미한 대답에 힘이 빠져갈 때, 당선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이토록 유쾌한 전율이라니요. 이토록 완벽한 기쁨이라니요.

쓰는 일만이 존재를 증명한다는 각오로 쓰겠습니다. 고통스런 삷 속에서도 글쓰기를 밀고 나갔던 플래너리 오코너, 로베르토 볼로냐의 열정을 기억합니다. 어쩔 수 없이 비껴서야 했던 사람들, 원하지 않았지만 나락으로 굴러 떨어져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겠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가로지르는 예민한 징후에도 더듬이를 들이 밀겠습니다.

처음 소설의 길을 열어 주신 송기원 선생님, 감사합니다. 냉철한 소설적 이론과 분석으로 소설쓰기의 모두를 알려주신 위대한 스승, 조동선 선생님, 그 치열한 정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기꺼이 최초 독자가 되어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나의 남편 정양언. 당신의 빛나는 헌신에 사랑의 키스를 보냅니다. 매혹적 영감과 따끔한 비평, 격려로 나를 붙들어 준 두 딸, 연빈, 하빈에게는 소설로 답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소설가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제 작품을 뽑아주신 소설가 고시홍 선생님, 소설가 이경자 선생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약력 ▷1958년 강원도 양구 출생 ▷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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