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시대 최고 등급의 말인 '갑마'를 키웠던 흔적을 볼 수 있는 서귀포 표선면 가시리 '갑마장길'. 한라일보 DB
‘말의 고장’ 제주 섬 곳곳에생동하는 말 이야기 오롯이과거와 현재의 역사와 조우
[한라일보] '붉은 말'의 해답게 2026년이 힘찬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올해 역시 그 출발선에선 저마다 바람을 날려본다. 거칠 것 없는 말의 질주처럼, 그 어느 때보다 역동적이되 무사무탈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말의 고장' 제주에게도 새해의 의미는 남다르다. 예부터 우수한 말이 나고 자랐던 이 섬에는 그 흔적이 거뭇하게 남아 있다. 제주 곳곳이 내려다보이는 오름에서부터 중산간의 너른 초원까지, 새해의 소망을 품고 그 길을 따라 걷는다.
|임금이 타는 말이 태어난 '어승생'
어승생악은 제주시에서 한라산을 바라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오름이다. 제주에 있는 360여 개의 오름 중에 서귀포 군산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제주시 해안동 해발 1169m에 자리하며 높이는 350m에 달한다.

눈 쌓인 어승생악 정상. 연합뉴스
'어승생'이라는 이름은 임금이 타는 말인 '어승마'(御乘馬)에서 유래됐다고 전해진다. 2015년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한라산연구원이 펴낸 '한라산 주요 오름의 인문자원'(고윤정 외)을 보면 어승생 일대는 예부터 명마의 산지였다. '어승생악'이라는 이름도 임금이 타는 어승마가 이 오름 밑에서 났다고 해 지어졌다. '1792년(정조 16) 이곳에서 용마(龍馬)가 태어났는데 조명검 목사는 용마를 왕에게 바쳤고, 왕은 그에게 노정(蘆政)이라는 벼슬을 하사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승생은 그 자태도 기운차다. 한라산 서북쪽을 의지한 채 뻗어가는 산세는 제주의 명혈지 중 한 곳으로 평가된다. 한라산이 눈 덮인 요즘 같은 설경에선 신비로운 기운이 더한다.
어승생악은 장거리 등산이 어려운 이들에게도 문턱이 낮다. 한라산국립공원 탐방로 7곳 중에 가장 짧은 1.3㎞(편도 기준) 코스다. 어리목 탐방안내소에서 어승생악 정상까진 30분이면 오를 수 있다.
날이 좋을 때 정상에 오르면 제주 동서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멀리 비양도부터 성산일출봉까지 한눈에 다가온다. 마치 초원을 내달리는 말처럼 섬 안에서 꿈틀거리는 자연의 생동감을 전한다.
|목축 문화로 만나는 이야기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 있는 '갑마장길'도 말의 기운을 느끼며 걸을 수 있는 곳이다. '갑마(甲馬)'라는 이름부터가 조선 시대 당시 최고 등급의 말을 부르는 말이다. 현재 갑마장길이 조성돼 있는 곳은 당시 갑마 사육장의 터로, 주변 목장에서 선발된 1등마를 길렀다고 전해진다. 디지털서귀포문화대전을 보면 1895년(고종 32) 공마 제도가 폐지된 뒤부터 차츰 쇠퇴하긴 했지만, 여전히 이곳에는 갑마장이 설치됐던 흔적인 잣성이 남아 있다.

헌마공신 김만일기념관 내부. 기념관 홈페이지
갑마장길은 가시리 마을과 주변 오름, 목장길 등 넓은 초원을 연결한다. 총 길이는 약 20㎞로, 제주의 옛 목축지와 그 흔적을 따라 걷는 길이다. 갑마장길을 축약해 놓은 듯한 '쫄븐갑마장길'(10.3㎞)은 따라비오름과 큰사슴이오름 등을 이으며 제주의 사계절을 내어 보인다.
제주에는 말과 떼놓을 수 없는 인물도 있다. 헌마공신 김만일이다. 김만일은 조선 시대 임진왜란 등 전쟁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수천 필의 전마를 바쳤고, 그 공으로 1628년 종1품 숭정대부로 제수됐다고 전해진다. 준마를 길러내는 일은 그의 후손까지 이어졌다. 대대손손 나라에 올려 보낸 말이 2만여 필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가 살았던 남원읍 의귀리에는 헌마공신의 이야기가 흐른다. 김만일 생가터를 비롯해 제주도 기념물 제65호인 김만일 묘역도 남아 있다. 제주자치도가 짓고 의귀리마을회가 맡아 운영하고 있는 헌마공신 김만일기념관에선 김만일의 업적을 비롯해 제주마의 역사, 목축문화 등을 두루 살필 수 있다.

헌마공신 김만일기념관 스크린 승마 체험장. 기념관 홈페이지
박물관에선 아이들과 함께하기 좋은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낙인 찍기 도구를 사용해 체험지를 완성하는 미션을 수행하면 나만의 말 모양 방문 걸이를 만드는 키트를 받을 수 있다. 실내에서 승마를 경험할 수 있는 스크린 승마 체험도 가능하다. 기념관은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설·추석 당일을 제외하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연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입장 마감 시간은 오후 5시 40분이다.
김지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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