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별과 연관시키려 애를 쓰지만
[한라일보] 새별오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에 있다. 표고 519.3m, 자체 높이는 119m 정도다. "저녁 하늘에 샛별과 같이 외롭게 서 있다 해 붙여진 이름이다." 제주도가 발행한 제주의 오름이라는 책에 나오는 설명이다. 외롭게 서 있다니, 거의 붙어 있는 이달오름은 오름이 아닌가? 주변을 둘러보면 동쪽으로부터 시계방향으로 북돌아진오름, 동물오름, 폭낭오름, 왕이메, 괴수치, 돔박이, 당오름, 정물오름, 밝은오름, 누운오름 등 한 바퀴 빙 둘러서 오름들이 있다. 외롭지 않다.

새별오름, 정면 가운데 풀밭으로 이루어진 오름, 오른쪽 아래는 이달오름. 사진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김진 제공
어느 전자사전의 설명이다. "새벽하늘에 샛별과 같이 외롭게 서 있다 해 '새별오름'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확실치 않다. 새별오름은 예로부터 새벨 오름 또는 새빌 오름이라고도 했는데 '새벨' 또는 '새빌'이 '샛별'의 제주어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고심이 깊은 설명이다.
새벽하늘 샛별설은 김종철의 오름 나그네라는 책에서 출발한다. "샛별에 비유된 이 오름의 호칭은 한자로도 효성악(曉星岳), 신성악(晨星岳), 또는 신성악(新星岳) 등으로 표기되고 있고, 조비악(鳥飛岳)이라는 별칭도 있었던 것 같다. 날개 뻗은 등성이 하며, 날씬한 모습이 마치 새가 날고 있는 형체라는 것이다(심재집 탐라지). 그럴듯한 표현이지만 단순한 한자명에 불과한 것인지 이의 근거가 되는 우리말 속칭이 따로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어떻게든 이 책에는 별과 연관시켜 보려는 문장들이 있다. "가닥 사이마다 야트막하게 또는 우묵하게 비탈지어 서사면은 키 모양으로 얕게 넓게 벌어지고 북 사면은 그에 비하면 삼태기랄 만큼 푹 패어 있다. 이 형상을 이웃의 이달오름 위에서 보면 마치 별표처럼 벌어진 모습으로 나타난다." "드넓은 초원에 고운 풀밭으로 덮여 있어 하늘에 반짝이는 금성처럼 유난히 눈에 띄는 오름이다." 과연 이 오름은 별과 관련이 있을까?
베, 비, 베리는 모두 벼랑
고전에는 어떻게 나올까?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효별악(曉別岳)'이라고 표기한 것이 이른 시기의 기록이랄 수 있다. 이후 여러 고전에 '효성악(曉星岳)', '신성악(新星岳)'이라 기재했다. 1965년 제주도라는 책에는 새별오름, 신성악(新星岳)으로 표기했다. 지역에서는 새벨오름, 새빌오름, 신성악(晨星岳), 조비악(鳥飛岳) 등으로도 쓴다. 모두 7개의 지명이 검색된다.

새별오름의 남동쪽 사면은 벼랑처럼 매우 가파르다. 마치 수직으로 세운 스크린 같다. 사진 김찬수
'효별악(曉別岳)'의 '효(曉)' 자는 오늘날의 풀이로는 '새벽 효' 자다. 1465년 원각경언해에 용례가 보인다. 당시 새벽은 '새베' 혹은 '새배'였다. '별(別)'이란 당시 '새벨오름' 혹은 '새베리오름'이라고 불렀음을 짐작하게 하는 표기다. 송악산의 다른 이름 '저별이악(貯別伊岳)'과 '저별악(貯別岳)'에서 이 글자를 볼 수 있었다. 여기서는 '벼랑'을 의미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점에서 '새베리오름'이라고 부르던 것에서 '-리'를 생략한 표기가 '효별악(曉別岳)'이 된다.
'신성악(晨星岳)'의 '신(晨)' 역시 '새벽 신' 자이고, 발음도 '효(曉)'에서 보는 바와 같다. '성(星)' 자는 '벨 성' 자이다. 훈가자 방식으로 쓴 것이다. 그러므로 역시 별(星)과는 상관없다. '신성악(新星岳)'의 '신(新)' 역시 '새 신' 자이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은 의미다. '조비악(鳥飛岳)'이란 '새 조(鳥)' 자에 '비(飛)'를 붙인 것이니 훈가자와 음독자를 혼합한 표기로서 역시 '새비오름'이라고 쓴 것이다. 이렇게 보면 새별오름을 표기한 고전의 기록은 모두 '새+베(비, 베리)+오름'의 구조임을 알게 된다. '저별이악(貯別伊岳)'과 '저별악(貯別岳)'에서처럼 여기서도 '베(비, 베리)'는 벼랑의 뜻임이 선명히 드러난다. 새별오름의 '별'은 외로운 별이 아니라 '벼랑'이다.
새별오름을 샛별오름이라고 굳게 믿는 전문가들
문제는 '새'이다. 새벽의 '새'를 나타내는 '효(曉)'와 '신(晨)', '새 신(新)'에서 나타내는 '새', 이처럼 '효(曉)', '신(晨)', '신(新)'으로 지시하려고 했던 건 바로 '새'다. 이 '새' 뜻을 해명하기 위해 한국 지명어 연구라는 책을 동원해 보자. 몹시 가파르게 기울어진 곳을 비탈이라 한다. 비탈은 어원적으로 볼 때 비스/비사/빗-(橫/斜)에 높은 곳을 뜻하는 '-달'의 복합어다. 이 비스/빗은 바로 곧지 않게, 가로 비스듬히 라는 뜻이다. 여기서 흔히 접두어처럼 쓰이는 '빗'은 고어형이 '비ㅅ'이고, 이 말은 소급형이 '비△'이다. 어원상으로 이 '빗'은 퉁구스어와 공통 기원이다. 새별오름은 이처럼 벼랑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가파르게 기울어진 오름이다. 그러니 한 때 '새벨오름'은 '빗벨오름'이라 했을 것이다.
한편, 1779년 한청문감이란 책에는 '사(斜)'를 '비우다'라 했다. '비우-'란 '비△ㆍ-'다. 이 오름은 가파르게 기울어졌기 때문에 '빗벨오름'으로 분화했고, 이를 한자로 표현하려 이런 점을 고려했을 것이다. '비우-', '비△ㆍ-', '빗기-' 등을 대신할 수 있는 한자란 바로 '사(斜)'이다. '사(斜)'는 '빗길 사'라고 한다. 이런 한자의 음이 제주어에 녹아들면서 '사-'를 거쳐 '새-'로 변했다. 한때 사별악(斜別岳)이라 표기했을 것이다.
어느 오름 지명 연구서에는 대부분 연구자들이 새별오름이라는 지명이 샛별에 비유된 이름이라는 데에 큰 이의를 달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새별오름은 샛별에 비유된 이름이라는 취지다. 모두가 동의한다고 그게 진실이 되는 건 아니다. 학문풍토의 일단을 보는 듯하다. 새별오름이란 '한자+순우리말' 복합어 구조다. 가파르게 기울어진 벼랑 오름이라는 뜻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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