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56] 3부 오름-(115) 돌오름과 한대오름, 위가 평평한 오름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56] 3부 오름-(115) 돌오름과 한대오름, 위가 평평한 오름
돌, 도래, 다래… 표기하기 어려울 정도의 미묘한 차이
  • 입력 : 2025. 12.23(화) 03:00  수정 : 2025. 12. 23(화) 06:19
  •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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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 많아 돌오름?
다래가 많아 다래오름?


[한라일보] 돌오름은 서귀포시 안덕면 상천리 산1번지, 표고 865.8m, 자체높이 71m다. 표고 866.5m라는 자료도 있다. 분화구는 넓고 얕아 거의 평평하게 보일 정도다. 지명은 돌봉(乭峰), 석산(石山), 석악(石岳), 돌오름 등이 나타난다. 네이버지도와 카카오맵에는 돌오름으로 표기했다. 돌봉(乭峰)의 '돌'(乭)은 음가자 즉, '돌'이 무슨 뜻인지는 관계없이 그냥 '돌'이라는 발음을 쓴 것이다. '석산'(石山)의 '석'(石)은 훈가자 즉, '돌 석'을 씀으로써 '돌'이라는 음을 나타내려고 했다.

정면에 보이는 오름이 돌오름, 왼쪽에 능선처럼 완만하게 보이는 부분이 한대오름. 사진 김찬수

이 오름의 지명에 대해서는 저자들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예를 들면 어떤 이는 "돌이 많아 '돌오름'이라 했다고도 하고, 산등성이가 빙 둘러 있다는 데서 '돌오름'(回岳)이라고도 하였다고 한다. 옛 지도나 비문 등에 石(석)과 乭(돌)의 표기가 나타나므로 일단 전자의 뜻으로 파악해 둔다. 그러나 후자의 뜻일 수도 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종잡기 어렵다.

돌오름의 '돌'은 원래 '달'로서 발음이나 표기에 따라 '돌'로도 '달'로도 될 수 있다. '달'이란 본 기획에서 다루었던 신산오름의 '신'과 어원이 같다. 신산오름의 '신산'이란 '달마르'에서 기원했으며, '달'이란 평평한 지형을 말한다. 몽골문어에서 '달리' 혹은 '달', 칼카어에서 '달', 칼미크어에서 '달러'다. 신효동에 월라산이 있다. 월라산이란 '닥라미'를 한자로 적는 과정에서 훈가자와 음가자 차자 방식으로 쓴 형태다. 위가 평평한 오름이란 뜻이다. 강정동의 월산봉, 감산리의 다래오름도 위가 평평한 오름이라는 뜻이다. '달'은 개음절화 하면 '닥래'가 된다. 본 기획에서 이 부분을 설명하면서 물과 관련된 지명으로 설명한 바 있으나 이는 잘못이기에 바로 잡는다. 제주 지명에서 평평한 지형, 그것이 오름이든 평야든 '달'이 들어간 지명은 많다.



한대오름은 '큰 돌오름'


이 돌오름에서 북쪽으로 2㎞ 이웃한 지점에 한대오름이 있다. 표고는 921.4m이나 자체높이는 36m에 불과하고, 정상은 평평하다. 이 오름의 지명은 한대봉(閑大峯), 한대악(漢大岳), 한대악(漢岱岳)처럼 문헌에 따라 다르게 표기됐다.

정면 중앙에 보이는 오름이 도래오름. 사진 김찬수

이런 사실만으로도 이 지명들은 뜻보다 음을 나타내려고 표기한 것임을 짐작하기에 넉넉하다. '한'은 '하다'의 '하'에 관형격 어미 'ㄴ'이 붙은 형태다. '큰'이라는 뜻이다. '대'란 '달'에서 'ㄹ'이 탈락한 형태다. 즉, 인접한 돌오름보다 '큰 돌오름'이라는 뜻이다. '한달오름→한닥오름→한되오름'이라 하던 것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한대오름'으로 변한 지명으로 해석된다. 돌오름의 대비지명이다.

돌오름에서 동쪽으로 3㎞ 떨어진 곳에 다레오름이 있다. 제주도가 발행한 제주의 오름에는 다래오름(닥래오름), 네이버지도와 카카오맵에는 도레오름으로 표기했다. 표고 983.8m, 자체높이 64m다. 제주의 오름이라는 책에는 '다래나무가 많았다고 해 닥래오름'이라고 설명했지만, 마찬가지로 위가 평평한 오름이라는 뜻이다.

돌오름에서 북서쪽 3.2㎞, 카카오맵을 보면 한대오름에서는 아주 가까운 곳에 다래오름북동쪽이라는 곳이 있다. 한대오름과 같은 애월읍 봉성리 산1번지다. 이 지명은 네이버지도에는 나오지 않고 대신 검은들먹오름이 표기돼 있다. 검은들먹오름이 다래오름북동쪽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리적으로 볼 때 도래오름의 북동쪽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다래오름북동쪽은 도래오름북동쪽일 것이다. 검은들먹오름이란 봉우리가 여럿이며 위가 평평한 마르 오름이란 뜻이다. 검은오름 편을 참조할 수 있다.



돌 혹은 달, ‘평평하거나 넓게 벌어진’


검은들먹오름에서 남서쪽, 돌오름에서는 북서쪽으로 4㎞ 떨어진 곳에 도래오름(닥래오름)이 있다. 표고 696.5m, 자체높이 87m다. 제주도가 발행한 제주의 오름이라는 책에는 다래오름(닥래오름), 네이버지도와 카카오맵에는 도래오름으로 표기했다.

돌오름을 중심으로 인근 4㎞ 이내에 지명이 비슷한 오름 5개가 밀집해 있다. 카카오맵

이 오름은 북쪽으로 넓게 벌어진 말굽형의 분화구가 뚜렷하다. 문헌에 따라 월라봉(月羅峯), 월내악(月乃岳), 다율악(多栗岳), 다래오름, 다율악(多栗岳) 등으로 표기했다. 월라봉(月羅峯)의 '월라(月羅)'는 '달라'를 나타내려고 한 훈가자와 음가자의 결합표기다. 다율악(多栗岳)의 '다'(多)는 '닥' 혹은 '다'의 음가자, '율'(栗)은 말음 'ㄹ'을 반영하기 위한 차자이다. 그러므로 '다율'이란 '달' 혹은 '달'의 음을 나타낸다. 이 오름의 지명은 '닥래' 혹은 '다래'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지명 역시 위의 돌오름과 한대오름처럼 위가 평평한 오름을 지시하는 것인가? 제주도가 발행한 제주의 오름이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이 나온다. "제주 지명에 나타나는 '달'·'달'·'달이'·'달이'·'닥래'·'다래' 등은 모두 '높다' 또는 '산(山)'의 뜻을 지닌 고구려 또는 고조선 시대의 말이라는 견해가 있다." 이처럼 '달·달·달이·달이·닥래·다래' 등이 고구려어 기원이란 말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언어란 문자로 표기하기 어려울 정도의 미묘한 차이로 뜻이 달라지기도 하고, 심지어 똑같은 음인데도 뜻이 여러 가지 뜻으로 쓰는 경우도 허다하다. 고구려 시대 '달'이라고 쓴 말이 다 높다거나 산을 지시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 경우 '넓게 벌어진'의 의미를 갖는 지명이다. 이런 예가 많으므로 다음 기회에 좀 더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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