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119)얼굴의 물-안태운

[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119)얼굴의 물-안태운
  • 입력 : 2025. 08.26(화) 02:00
  •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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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그는 안에 있고 안이 좋고 그러나 안으로 빛이 들면 안개가 새 나간다는 심상이 생겨나고 그러니 밖으로 나가자 비는 내리고

비는 믿음이 가고 모든 맥락을 끊고 있어서 좋다고 그는 되뇌고 있다 그러면서 걸어가므로

젖은 얼굴이 보이고 젖은 눈이 보이고 비가 오면 사람들은 눈부터 젖어 든다고 그는 말하게 되고 그러자 그건 아무 말도 아닌 것 같아서 계속 드나들게 된다

얼굴의 물 안으로

얼굴의 물 밖으로

비는 계속 내리고 물은 차오르고 얼굴은 씻겨 나가 이제 보이지 않고

삽화=배수연



비가 오면 왜 눈부터 젖어 들고, 비에 얼굴이 젖는 것은 전신이 젖는 것과 왜 그렇게 유사할까. 그리하여 눈에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가는 이 시는, 젖은 눈 속에 엿보인 얼굴과 세계의 모습을 실루엣처럼 잡아둔다. 이러한 선의와 노력은 명료할 수는 없으나 젖은 눈에 타자의 얼굴이 보일 때까지 내 젖은 얼굴이 유의미하며, 이따금 보인다는 혹은 안 보인다는 의식도 없이 빗속을 걸어가게 된다. 이러한 삶의 도정에 어떻게든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죽음 아닌가. '젖은 눈'의 대척점에 '마른 눈'이나 '생기있는 눈'이 아니라 보이지 않게 된 눈이 놓인다는 유추가 가능한 이유이다. 젖은 눈은 눈을 멀게 하거나 죽음과 연관되는 것이어서 결국 얼굴은 씻겨 나가 사라지고 만다. 눈부터 젖는다는 말이 "아무 말도 아닌 것 같아서" 계속 드나들 수 있다면 눈이 젖는다는 말을 그렇게 반복해 쓰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은 반복되고, 물이 차오를 때까지 계속 오는 비를 만난 사람의 이야기도 이어진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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