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선의 하루를 시작하며] 기다림은 사랑이고 지지는 용기다

[오지선의 하루를 시작하며] 기다림은 사랑이고 지지는 용기다
  • 입력 : 2025. 08.06(수) 01:30
  •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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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엄마, 나 이게 맞을까? 다른 걸 준비했어야 했던 건 아닐까?"

고3 1학기 기말고사를 앞둔 어느 날, 가슴이 답답하다고 울며 아이가 조심스럽게 꺼낸 말이었다. 오랫동안 스스로 준비한 진로에 의문이 생기고,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했다. 대학 입시는 바로 눈앞이고, 새롭게 가고 싶은 길에 대한 준비는 턱없이 부족했다. 불안했지만 나는 그 순간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말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흔들리는 아이의 마음을 우선 그대로 받아주는 일이었다.

사실 마음 한켠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 아이가 무엇을 할 때 눈빛이 가장 반짝이는지, 어떤 순간에 가장 생기가 도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혹시 내가 품고 있는 바람이 아이에게 부담이 되거나 내 기대를 무심코 덧씌우게 될 것 같아서 스스로 말해주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기다림은 말처럼 쉽지 않다. 자꾸 개입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가 무책임한 건 아닐까하는 고민이 들곤 했다. '이게 지지일까, 아니면 방임일까?', '혹시 내가 아이 눈치를 보는 건 아닐까?' 수없이 되물었다. 생각해보면 지켜본다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내 불안과 조급함을 매 순간 조절하는 시간이었다.

자녀가 결국 마음을 꺼냈고, 자신의 생각을 또박또박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안심이 됐다. 이 아이는 준비가 돼 있었구나. 그리고 오래 전부터 믿어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오랫동안 품고 있던 마음을 꺼내는 데는 얼마나 많은 망설임과 용기가 필요했을까. 그 용기를 낸 순간 나는 오히려 배우는 입장이 됐다. 그리고 내 기다림은 비로소 '지지'가 됐다. 그 전까지는 불안 속의 '무언의 동행'에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물론 모든 상황에서 기다림이 정답일 수는 없다. 아이마다 다르고, 시기마다 다르다. 때로는 분명한 조언과 개입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 그래서 학교 선생님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새삼 느끼게 됐다. 아이가 크게 흔들린 순간 담담하게 곁을 지켜준 담임교사의 한마디에 마음을 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이는 조언보다, 흔들리며 곁에 있어 주는 '한 사람'을 필요로 한다. 그 한 사람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말없이 옆에 있어 주는 어른이면 충분하다.

나는 지금도 정답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확신하는 건 하나다. 기다림은 사랑이고, 지지는 용기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계속 배우고 있는 부모의 숙제다.

부모도 교사도 늘 정답을 찾으려 애쓰지만, 결국 우리는 모두 아이와 함께 흔들리는 사람들이다. 고3 자녀를 둔 모든 부모와 아이 곁을 지켜주는 선생님들이 지금 품고 있는 그 조심스러운 마음, 그 자체가 아이에게 가장 큰 힘이 되고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 <오지선 서귀포시교육지원청 교육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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