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정묵의 하루를 시작하며] 날마다 새로워진다는 것

[좌정묵의 하루를 시작하며] 날마다 새로워진다는 것
  • 입력 : 2025. 07.16(수) 01:00
  • 김미림 기자 kimmirim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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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제주의 6월은 몹시 눅눅하다. 이런 계절에 이사를 계획하고 있다면 무지하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어쩔 수 없이 이사를 결정했다면 참 따분한 일이다. 제주도에서는 이사나 집수리 등 집안 손질은 언제나 '신구간'에 한다. '신구간'이란 대한(大寒) 후 5일에서 입춘(立春) 전 3일 사이다. 제주 사회에서 오랜 풍습과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는 이사 문화의 배경에는 사람들의 일상에 관여하는 신들이 모두 옥황상제에게 가 있는 날이라 무엇을 해도 탈이 없다는 재미난 속설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요즘 제주의 서쪽 지역에서 농사를 짓는 이들에게는 옥수수, 단호박 수확으로 바쁜 시기다. 그토록 다습한 제주의 장마는 지난해와 달리 비가 거의 없이 지나고 말았다. 그리고 곧 월동채소 농사를 위해 모종을 준비해야 하는데 여름이 몹시 바쁜 시기가 된다. 여름에 땀을 흘리며 노력한 대가로 가을의 결실을 구하던 농사는 옛말이 되고 말았다. 가을걷이 농사는 겨우 노지 감귤을 짓는 이들에게나 해당하는 말이다. 계절에 따른 이런 변화들은 십 년, 삼십 년을 두고 제주인들의 삶의 양식까지도 다양하게 분화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제주인들이 금기로 여기는 유월 말에 삶의 터전을 옮기는 이사를 했다. 여러 가지 우려스러운 일들이 있었으나 다행스럽게 이사 전후 덥기는 했지만, 장마가 지나갈 시기였음에도 비도 내리지 않았고 눅눅함도 예년(例年)과 달리 덜했다. 오래 비워둔 집이라서 집 안팎을 수리하거나 정리를 해야 했다. 내부 수리는 전문가에게 맡기면 되는 일이지만 집 주위를 정리하는 일은 이사를 하고 보름이나 지나고 있는데도 부족한 부분들을 찾아가며 손을 대고 있다. 새벽에 일어나 마치 거대한 공사를 하는 것처럼 땀으로 범벅이면서도 활력을 얻게 된다.

고려 중기 이규보가 행랑채를 고치며 가졌던 체험과 깨달음을 남긴 '이옥설(理屋說)'은 오늘날 칼럼의 성격과 비슷하다. 이사 후에 오래 비워둔 집을 고치고 어지럽던 주위를 정리하며 이규보의 깨달음처럼 새로운 정부 출범과 함께 우리 정치 상황들이 겹쳤지만 시기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문제 극복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우리 정치의 고급스러움 같은 것을 그려보곤 했다. 그러면서도 다 그럴만하다고 여기며 수많은 갈래로 뻗어나가던 생각들을 거둬들였다.

이른 아침에는 이름도 알 수 없는 새들이 마당 정원에서 서로 짝을 부르며 노래하고 늦은 밤에는 길고양이들이 서로 영역을 다투는지 외마디처럼 울음이 울려 퍼지기도 한다. 자연으로 가까이 다가서면서 삶을 깨닫게 된다고 하는데 이런 느낌일까. 이사 후 이제 보름 정도가 지나고 있는데 아침이면 살피고 치우고 정리하는 일로 한낮의 땡볕을 잊고 지낸다. 누가 이런 나를 보면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착각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나는 금기를 깨어버렸다는 생각으로 우쭐거리기도 하면서 날마다 새로워진다는 느낌으로, 마음이 고요하면서도 융융하다. <좌정묵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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