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경의 건강&생활] 쓸모없는 인간

[신윤경의 건강&생활] 쓸모없는 인간
  • 입력 : 2025. 05.21(수) 02:00
  •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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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뭐 하나 잘하는 게 없고 쓸모없는 사람 같아요.",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막막해요."

아이에서 어른에 이르기까지 이와 같은 괴로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쓸모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간다. 가정과 학교를 포함한 거의 모든 사회 영역에서 끊임없이 쓸모 있는 인간이기를 요구받기에 성적이 안 좋으면, 특출 난 재능이 없으면, 돈이 없으면, 병들면, 늙으면,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인 것 같아 전전긍긍한다. 우리가 한평생 이토록 갖추려 애쓰는 쓸모란 무엇일까?

제주의 돗통시나 말똥을 퇴비와 땔감으로 사용하던 풍습에서 보듯이 예전엔 무엇 하나 허투루 버리는 게 없었다. 요즘은 어떤가? 물건이 넘쳐난다. 사물은 그저 대체 가능한 도구일 뿐이어서 조금만 부서지거나 변색되면, 유행이 지나면 버려진다. 쓰레기가 넘쳐난다.

사람의 처지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인간은 사물뿐 아니라 스스로를 도구화했다. 자신도, 타인도 쓸모에 따라 등급을 매긴다. 쓸모를 인정받지 못한 이들은 혐오나 배제, 잘해야 동정의 대상이 된다. 대체 가능해진 우리는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관계의 가는 실 끝에서 흔들리거나 흩어져 먼지처럼 부유하고 있다.

쓸모없는 인간이란 어떤 사람인가. 꼴찌, 빈민, 장애인, 병자, 노인은 쓸모없는 사람인가? 쓸모의 기준은 무얼까? 무엇을 위해 우리는 스스로와 타자를 도구화하는가? 일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인간인가? 그렇다면 일이란 무얼까?

사실 일이란 어떤 직업이라기보다는 타자와의 관계와 상황에서 수행하게 되는 '작업'과 '역할'이다. 그러니 살아있는 매 순간과 상황이 일하는 시간이고 장소이며, 일을 잘한다는 것은 그때그때 나와 타자 모두를 위해 할 수 있는 좋은 작업과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심각한 부상을 입으면 누군가 그를 돌보지 않는 이상 죽게 된다. 그러기에 문명의 시작을 "대퇴골이 부러졌다가 치유된 채 발견된 고대인의 유골"이라고 본 문화인류학자의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다. 약자를 돌보고 상호작용하는 일의 쓸모는 계산으로 얻어지지 않으며, 경쟁과 폭력을 아우르는 협력, 공감, 돌봄의 확대가 없었다면 문명은 이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며 문명은 큰 전환점을 목전에 두고 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으며, 어떻게 살 것인가?

이제 우리에겐 기존의 정답을 외우는 능력보다 질문하는 능력이 훨씬 중요하다. 계산보다 사유가, 나를 넘어서는 전체의식과 공존의 감각이, 있음의 이로움과 없음의 쓰임을 포괄하는 지혜가, 죽음과의 연결과 순환 속에 살아가는 겸손이, 빛과 어둠의 조화가 절실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명의 본질은 사랑이다.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는 끝내 인간으로 남는 것인가." 현시대를 치유하며 새 시대를 여는 위대한 성찰이다. <신윤경 봄정신건강의학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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