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없어서도, 보여서도 안되는…] (7)그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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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노동력"… 잦은 이탈 원인 살펴야
  • 입력 : 2022. 08.17(수) 00:00
  • 강다혜 기자 dhka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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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제주시 구좌읍 대천동의 한 농경지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이 찜통더위를 이겨내며 무씨앗 파종 작업을 하고 있다. 강희만기자

외국인 근로자 없이는 농·어촌 사업장 존립 불가
미등록 외국인들 "높은 수수료·처우 열악" 호소
비합법 사례도… "스스로 경쟁력 착취하는 것"

[한라일보] 앞서 5차례에 걸쳐 도내 농·어촌의 실태와 함께 외국인 근로자가 제주 1차산업 노동에서 차지하는 객관적인 의미를 살펴봤다. 그 점검의 결론은 외국인 근로자들은 고용주들의 필요에 의해 고용되고 있으며, 이들의 유입 없이는 농·어촌 사업장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고용주들은 외국인과 상생하며 지역산업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제주의 노동력'인 이들의 처우는 여전히 열악했고, 이들은 '이탈'을 택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노동 조건이 열악한 사업장들은 노동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 대신 노동 피라미드의 최하층에 있는 이들을 갈아 넣는 방식으로 버티고 있었다. 잦은 인력 이탈의 근본적인 원인을 돌아보지 않고 사후약방문 식 해결법으로 때우며 스스로 경쟁력을 착취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없어서도 보여서도 안되는 사람"

"이런 것까지 대답해야 돼?" 지난 6월 서귀포시 대정읍 인간에서 만난 미등록 외국인 근로자 A(40)씨의 목소리에 경계심과 짜증이 묻어났다.

A씨는 지난 2013년 고용허가제(E-9)를 통해 입국했다. 그는 관리자가 운전하는 10인승 승합차에 올라타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그는 "처음 입국했을 때는 한 밭에서 종일 일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엔 장비가 좋아져서 많을 땐 하루 3~4곳의 밭을 돌아다닌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귀포시 남원읍 한 농장에서 수 년 간 일하다 임금을 높게 부른 타 업장으로 몇 년 전 이탈했다. 그는 "농업(비자)을 선택해서 입국했지만 원래 공장에서 일하고 싶었다"며 "(인력)소개소에서 농축산업이나 어업을 지원하면 남들보다 빨리 입국할 수 있다고 조언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불법체류자가 될 것이란 걸 알았지만 돈을 많이 벌고 싶어 첫 농장을 나왔다"며 "처음엔 돈을 꽤 벌었는데, 수확철이 끝나면 해고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이도저도 못했던 시기도 자주 있었다"고 말했다.

B씨(여·40대)는 여성 미등록 외국인 근로자다. B씨는 간단한 자기소개를 묻는 질문에 "노동력에 피라미드가 있다면 가장 아래 계층(최하층)에 있는 사람"이라며 "인터넷에서는 내가 없으면 안 된다더라. 그런데 우리는 보여서도 안되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정확한 입국 시기는 밝히지 않았지만 무사증 제도로 입국한 뒤 도내에 체류한 지 6~7년이 흘렀다고 그는 설명했다. B씨는 "한국에 있는 외국인 브로커 소개로 입국했다"며 "브로커가 놀러온 부유한 관광객처럼 꾸미고 공항에 가라고 하더라. 이런 입국 교육을 전화나 인터넷으로 몇 차례 받았다"고 입국 과정을 떠올렸다.

B씨는 "취업 알선 수수료는 100만원 정도 냈다"며 "우리 임금이 올랐다고 하는데, 브로커가 많이 빼가서 들어오는 건 많지 않다"며 "불법체류자들은 비자와 여권이 없기 때문에 관리가 적다(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전했다.

|야반도주 막으려고?… 여권 임의 보관 "불법"

외국인 인력 이탈 사례가 잦아지자 비합법·비인권적인 방식을 선택하는 일부 고용주들도 있다.

대표적인 방식이 외국인들의 여권과 신분증 등을 보관하는 방식이다. 출입국관리법과 선원법에 따라 여권과 외국인등록증은 외국인 스스로가 소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선원 이탈 우려가 앞선 나머지 이들의 여권과 외국인등록증 등을 보관하고 있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었다.

도내 이주민단체와 인권네트워크,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제주에서도 이같은 사례가 발생했다.

이 일은 지난해 코로나19 백신 접종 과정에서 불거졌다. 당시 방역당국의 방침에 따라 외국인 등록 여부와 관계 없이 보건소에서 임시 관리번호를 부여 받으면 백신 접종이 가능하도록 했는데,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증명서를 모두 소지하지 못한 사례가 나타난 것이다.

이 일은 이주민·인권단체 등에 의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이 제기됐다. 이후 인권위와 인권네트워크 등이 실태 조사와 대면 면담을 벌인 결과, 도내 특정 지역 소재 모 업체에서 외국인 선원들의 여권과 외국인등록증 등을 다수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 확인됐다.

인권위 관계자는 "지난해 9월 온라인 조사를 해봤을 때 제주지역에서 많은 선원들이 여권을 갖지 못하고 있었고, 백신 접종 과정에서 여권을 가져가지 못했다는 사례들이 확인됐다"며 "이후 올해 2월 여권들을 다시 돌려받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인권위 차원에서 결론이 내려지거나 특정 조치가 이뤄진 사항은 아니고 조사 과정에서 해결이 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관행적으로 외국인 선원 이탈과 관련해 강압적인 조치가 이뤄지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번을 계기로 바로잡는 차원이었다"고 덧붙였다.

어선원 관리업체와 선주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어선원 관리업체 관계자와 선주는 "우선 우리가 외국인들에게 승선 전에 여권 등을 보관해 줄지 의사를 물어보고 동의 하에 보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타 사업장으로 이탈할 때 우리가 강제로 신분증을 가져갔다는 이유를 든다"며 "조업 시기가 되면 한 번 배를 타고 나갈 경우 한 달 이상 바다에서 일하는데, 고용보험·연금·의료보험 뿐 아니라 비자 기간 연장 시기까지 놓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인권단체 등은 외국인들 이야기만 듣고 우리 탓만 하니 미칠 노릇"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도내 이주민센터 관계자는 "선원 이탈률이 높고 일손 하나가 급하다는 것은 알겠지만, 왜 방법을 그런 곳에서 찾느냐는 것"이라며 "최근에는 선주들 사이에서도 인식 개선이 이뤄져서 여권 보관 사례는 많이 줄어든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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