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누구의 삶에도 지각은 없다

[영화觀] 누구의 삶에도 지각은 없다
  • 입력 : 2022. 04.15(금) 00:00
  •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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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복지식당'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을 앞두고 전국 곳곳에서 투쟁이 시작되었다. 지난 25일 이들이 서울 마포대교를 막고 느릿느릿 행진을 이어가자, 30분 발목이 묶인 이들이 30년간 갇혀 산 사람들을 향해 끔찍한 살기를 뿜어냈다. 그러나 그들은 십수 년간 장애인들이 시종 저항해온 것이 바로 이 사회의 야만적 질주이며,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려대는 그 순간에도 자신들의 목숨이 이 고라니 같은 존재들에 의해 얼마간 연장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위의 글은 노들장애인야학에서 활동했고 인권의 현장에서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해온 홍은전 작가가 한겨레신문에 연재한 칼럼을 모아 엮은 책 '그냥, 사람' 중의 한 부분이다. 작가가 글을 쓴 것은 2016년 3월이다. 6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의 사정은 어떠한가. 안타깝게도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내가 이 글을 쓰는 오늘은 한 방송을 통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박경석 상임공동대표와 국민의 힘 이준석 대표의 일대일 토론이 진행된 날이었다. 토론의 주제는 전장연이 재개한 지하철 시위를 둘러싼 논쟁과 장애인 권리에 대한 대책이었지만 지켜본 토론은 암담했다. 이동권과 시위는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권임에도 불구하고 전장연의 박경석 대표는 내내 대국민 사과를 요구받았고 누군가의 권리를 침해한 사람처럼 궁지에 몰렸다. 실시간으로 진행된 유튜브의 댓글창은 더욱 심각했다. 지하철 시위로 인해 지각한 사람들, 그에 대한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분노들, 장애인에 대한 조롱과 혐오를 멈추지 않는 문장들이 거대한 해일을 만들어내는 그야말로 목불인견의 현장이었다. 조금이라도 뒤쳐지면 낙오자가 될 것 같은 극도의 불안이 만들어낸 혐오의 시대, 관용이라는 말이 사라지고 극대화된 효율의 고속도로 위에서만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속도의 평화. 우리는 지금 무엇을 향해 누군가를 밀치면서까지 달려가고 있는 걸까.

 4월 14일 개봉한 영화 '복지식당'은 사고로 장애인이 된 한 사람이 겪는 고통과 고난 그리고 장애인 사회 내부의 부조리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장애등급제와 장애인 콜택시, 활동 보조 서비스 등 현재 이 땅의 장애인들이 직면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날카롭게 짚어내고 있는 영화 '복지식당'은 사고를 당해 중증장애인이 된 정재익 감독과 장애인 단체 워크숍을 통해 정재익 감독을 만나게 된 서태수 감독이 공동 연출을 맡은 작품이다. 2019년 단계적으로 폐지된 장애등급제는 장애인의 실제 처지와는 무관하게 의학적 소견만으로 장애 등급을 나누는 제도다. 과거 1급부터 3급까지는 중증 장애인으로 4급부터 6급까지는 경증 장애인으로 분류됐고 경증 장애인들은 장애인 콜택시와 활동 보조 서비스들을 받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영화 속 주인공 재기는 사고로 인해 중증 장애인이 되지만 장애 등급제 판정에서는 5급인 경증 장애인으로 분류된다. 걸음을 뗄 수 있고 조금의 의사표현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살아가기 위해 자신이 중증 장애인임을 입증하기 위한 힘겨운 싸움을 시작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지금 당장 살아가기 위해서다.

 나는 몇 년 전 수개월의 입원 생활 후 걷는 일이 예전 같지 않아 졌다. 빠르게 횡단보도를 건너는 일, 지하철의 인파들과 속도를 맞춰 걷는 일, 가벼운 조깅을 하는 일들은 이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복지식당'의 티저 포스터에는 높은 계단 아래, 휠체어에 앉은 재기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 황망함과 아찔함을 내가 다 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두 다리에 온 힘을 주고 땀을 흘리며 계단을 오르면서 나는 뒤에 있는 사람들이 고통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모두가 스스로에게 일어난 재난을 통해 상대의 마음을 이해할 필요는 없고 그토록 고통스러운 자각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멈추어 선 이들의 고통을 지나치지 않는 마음을 갖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듣고 보고 말하고 걷고 뛰는 아주 평범해 보이는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아픔이자 소원일 수 있다. 우리는 함께 살아간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다. 이것은 당연하지 않은 일이다. 당연하지 않은 일들을 당연하게 만드는 데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영화 한 편을 보는 것만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 장애인들의 목소리와 몸짓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낸 비장애인들의 세상이 조금 지체되는 것만으로 세상은 바뀌기 시작할 수 있다. 누구의 삶에도 지각은 없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에서 우리가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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