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제주, 숲이 미래다 15] 5.가로수 조성·관리 이대로 좋은가 (4)재구조화가 필요하다

[청정제주, 숲이 미래다 15] 5.가로수 조성·관리 이대로 좋은가 (4)재구조화가 필요하다
시대·도심환경·기후변화 반영 새판짜기 전략 필요
  • 입력 : 2021. 12.21(화) 00:00
  • 이윤형 선임기자 yhlee@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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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벚나무 가로수 토종 불명확
제주 자생으로 단계적 교체를
이국적 정취 상징 워싱턴야자
사고 우려 등으로 도심서 퇴출
지역색 반영·기후변화 등 대비
다각도 조성전략 마련해 나가야


제주는 왕벚나무의 원산지로 알려졌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생지가 발견됐다. 1908년 4월 에밀 타케(1873∼1952) 신부가 한라산 해발 600m 지점에서 발견하고, 이후 부종휴 선생이 국내 학자로서는 처음으로 1962년 4월 한라산 수악 남서쪽에서 자생지를 발견했다. 이는 20세기 초부터 일본과 국내 식물학계에 이어져 온 왕벚나무 원산지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제주가 원산지임을 보여주듯 현재 가로수 가운데 가장 많이 심어진 나무가 왕벚나무다. 지난 2018년 12월 기준 제주시의 가로수는 총 29종 약 4만166주가 식재돼 있다. 이 가운데 왕벚나무는 29%를 차지한다.

해마다 봄철이면 왕벚꽃축제가 열리면서 수많은 도내외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제주시 전농로. 이곳 약 1㎞ 구간에는 왕벚나무 160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봄에는 연분홍 꽃망울로,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안겨주면서 도심속 녹색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제주도를 대표하는 명품 숲길로 손꼽히는 곳이다.

이곳 전농로 옛 제주공립농업학교가 있던 자리에는 홍윤애의 무덤터 표지석이 있다. 이 표지석을 중심으로 버티고 선 왕벚나무 10여 그루는 적어도 수령이 80년은 넘는다.

홍윤애는 1777년(정조 1) 9월 역모 사건에 연루돼 제주로 유배된 선비 조정철을 사랑한 죄로, 그의 죄를 말하라는 제주목사의 추궁에도 굴하지 않다 혹독한 고문을 받고 사망한 여인이다. 이후 조정철이 1819년 제주목사로 부임해 홍윤애의 무덤을 단장했다. 이어 1940년 이곳 무덤 터 일대에 제주공립농업학교가 들어서면서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로 이장했다. 이 일대 왕벚나무는 제주공립농업학교 당시부터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곳 왕벚나무는 노쇠화 등으로 생존의 위기를 겪고 있다. 차량이 쉴새없이 오가면서 내뿜는 매연 속에서 힘들게 버티고 있는 모습이다. 이곳 왕벚나무의 상징성을 감안한 다각도의 대책을 수립해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나무 나이를 연장시키면서 동시에 노쇠화에 따른 대안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다.

전농로 일대 왕벚나무는 대부분 1980년대 식재됐다. 문제는 당시 심어진 왕벚나무가 유전적으로 제주산 토종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이 시기를 전후로 도내 왕벚나무 식재가 크게 늘어났는데도 나무에 대한 정확한 이력이 없다. 왕벚나무 자생지임에도 가로수가 토종이 아니라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제주시는 지난해 전농로 일대에 한라생태숲에서 양묘한 제주 자생 왕벚나무 52그루를 식재했다. 이력이 분명한 제주 토종으로 차츰 교체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이를 계기로 전농로 구간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토종 이력이 명확한 왕벚나무 가로수로 점진적인 교체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왕벚나무를 비롯 도내 가로수 대부분이 50년 전후가 되면서 리모델링 혹은 재구조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도시계획에 따라 가로수가 체계적으로 식재되기 시작한 1980, 1990년대는 지금과는 도로나 도심 환경, 사회 분위기가 크게 달랐다. 미세먼지 악화 등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도심에 식재된 가로수 중 일부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대표적인 가로수가 워싱턴야자다.

워싱턴야자는 남국의 이국적인 정취와 낭만을 상징하는 나무로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워싱턴야자가 자라는 도심 거리는 이국적 분위기를 한껏 자아냈다. 관광 이미지를 고려, 도심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식재가 이뤄지면서 감귤 주산지 제주를 상징하는 하귤나무를 비롯한 제주 자생종 보다도 많이 심어진 것이 워싱턴야자다.

2020년 12월 기준 제주도내 가로수는 37종에 7만3115그루에 이른다. 상록수가 21종 4만5282그루, 낙엽수가 16종 2만7833그루가 식재됐다. 수종별로 보면 왕벚나무(1만6178그루), 후박나무(1만1026그루), 먼나무(1만282그루)가 각각 1만 그루 이상이다. 이어 해송(3708그루), 워싱턴야자(3543그루), 배롱나무(3388그루), 담팔수(3347그루), 하귤(3224그루), 느티나무(3118그루), 녹나무(2888그루)가 가장 많이 심어진 상위 10종에 포함된다. 워싱턴야자는 당당 5위에 자리했다.

그렇지만 애써 가꿔온 워싱턴야자는 도심에서 차츰 퇴출되고 있다. 지난 10월부터 11월 사이 제주시 가령로, 승천로, 고마로, 연신로 등에 심어진 157그루가 협재해수욕장으로 대거 이식됐다. 이에 앞서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88그루가 태풍이나 돌풍으로 꺾어지거나 기울어져 제거됐다.

식재된지 30, 40년이 지나면서 높이가 15m 이상 자라 태풍이나 돌풍에 꺾이고, 정전사고 등도 잇따르면서 도심 워싱턴야자는 위기를 맞고 있다. 이식이 불가피하다면 사고 취약지의 워싱턴야자는 도심 외곽의 해안변이나 관광지를 중심으로 이식해서 주요 지점별로 재배치하는 등 해법이 필요하다.

제주도의 초창기 가로수 조성 정책은 지역 실정이나 생활여건·도심환경의 변화 등 미래의 흐름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기후변화에 대비한 수종 선택과 식재 등도 최근 몇 년 새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보니 지역 특색의 상실은 물론 해안가나 중산간 지대, 도심지 등 지역환경을 도외시한 식재로 인한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도내 가로수도 장기적인 새판짜기 전략을 고민해 나가야 하는 시점이다. 수종과 실태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이를 토대로 한 조성 전략을 다각도로 가다듬어야 한다. 이윤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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