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94) 제주시 애월읍 어음2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94) 제주시 애월읍 어음2리
제주4·3의 수난 견딘 천연기념물 빌레못동굴 활용되길
  • 입력 : 2016. 07.26(화) 0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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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메오름과 멀리 한라산이 보이는 중산간 지역 풍경(위). 마을회관 옥상에서 동쪽으로 바라본 모습(아래).

황무지 개척한 정자촌 마을 기원… 옛이름 어름비
빌레못동굴 유명세 있지만 마을 발전과 연계 안돼
향장마을 허브 계약재배 유야무야 주민들 실망 커



먼저 빌레못동굴이 떠오르는 마을이다. 동굴 주위에 두 개의 연못이 있어서 평평한 암반 지대를 뜻하는 빌레와 연못이 합쳐진 이름이다. 동굴의 나이는 7만년에서 8만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화산섬 제주를 굴의 형태로 보여주는 소중한 자원. 천연기념물 342호다. 단일용암동굴로는 세계 제일이라고 한다. 총 길이가 1만1749m라고 하니 그 속이 얼마나 미로처럼 복잡하게 돼 있을까 궁금하지만 철문으로 막아놓고 있다. 고고학적으로 가치가 너무 커서 보존 연구를 위해 영구보존 동굴로 지정되어있기 때문. 구조나 형태를 가지고 지질학적 연구 대상이기도 하지만 선사시대 동굴주거 유적으로 석기, 목탄류, 순록, 황곰 등의 동물화석이 발견돼 한반도와 연결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 제4빙기(4만~3만5000년 전)가 한국에도 거쳐 갔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동굴이다. 주민들이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런 천연기념물을 가지고 어떤 활용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천연기념물 제342호 빌레못동굴은 그 명성과 달리 조그만 철문으로 막아놓고 있다.

또한 4·3유적지라는 것을 알리는 돌에 새긴 글자를 읽으며 중산간 마을의 수난을 느끼는 정도다. 중요성에 비해 너무 초라한 대접을 받고 있는 빌레못동굴 입구와 부근 환경을 바라보면서 비교 대상을 찾고 싶었다. 비공개 영구보전이라면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다양한 영상물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지고 싶기도 하고. 조그만 철문으로 구멍을 막은 모습은 '최소한의 행정'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최대한의 행정은 빌레못 동굴 속에 함께 있다는 생각과 함께. 어음리는 원래 '어름비' 또는 '어옴비'라고 불려온 마을이다. 강관선(72) 노인회장이 설명하는 설촌의 역사는 이렇다.

향장마을로 지정된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마을 안에 화장품 회사가 들어와 있다.

"마을 주거지역에서 서남방으로 1㎞ 지점에 하천 동쪽으로 황무지를 개척해 정자촌이라고 하는 마을을 이루고 살기 시작한 것이 마을의 기원이라고 합니다." 자료에 의하면 그 정자촌의 주인공은 조선 연산군(1504) 갑자사화 당시에 은산부원군 후예인 홍문관 교리였던 정자 박후신(正子 朴厚信)으로 노복 30여 명을 거느리고 제주에 유배됐다. 이곳에서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자신의 호를 따서 정자촌(正子村)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어음2리 옆 하천은 금성리까지 따라가면서 정자내라고 부르다가 지금은 정지천이라고 부르고 있다. 아름다운 중산간 마을. 농로를 따라 걸어가면서 느끼는 제주의 자연과 삶의 터전이 짜임새를 발견한다. 오묘하게 이어지는 작은 농로를 걸어가며 멀리 오름들이 하늘과 잇닿은 멜로디를 감상하는 것은 시각 만족 그 자체다. 아직도 파괴되지 않은 제주를 발견한 기분도 들고.

부기배 이장

부기배(61) 이장은 "분교를 임대해서 리모델링을 하면 외부에서 오는 손님들을 맞이하는 장소로 활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빌레못동굴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오히려 마을 개발에 걸림돌이 되는 현실입니다. 어떻게 저 귀중한 자원이 그냥 방치에 가깝게 놓일 수 있습니까? 주변을 제대로 정비해 동굴의 가치를 알리는 건물이라도 있어야 어음2리를 찾는 분들에게 설명이라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세계적인 동굴이 있다는 것이 마을 발전에 도움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 걸림돌이 된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마을 외곽지에 전원형 주택들이 많이 지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젊은 부부들이 아이들을 직접 봉성초등학교에 통학시키는 불편이 있기 때문에 스쿨버스라도 있어야 하겠습니다" 라며 어음2리의 당면과제를 밝혔다. 발전의지가 가득한 주장이다. 리 단위에서 현실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작은 일을 눈여겨 바라보는 이장의 표정에서 강력한 해결의지를 느꼈다. 양경흠(54) 개발위원장은 향장마을로 지정된 사연과 함께 안타까움을 피력했다. "제주특별자치도에서 향장마을로 지정하면서 시범사업으로 펼친 허브계약재배가 뒷심을 발휘하지 못하고 유야무야된 상황입니다. 시범기간 3년을 위해서 이런 지정을 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가 묻게 됩니다. 지정을 했으면 책임성을 가지고 성공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하고 지도감독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어음2리가 가지고 있는 친환경적인 요인들을 가지고 향장산업과 연계를 시도했다면 정확한 수요와 공급을 예측하고 지정에 들어갔을 것인데 농가의 입장에서 소득창출이 될 수 있도록 분발해야 할 일입니다." 차분하게 이 문제와 관련하여 설명을 하자 옆에 있던 지역원로들과 주민들의 거친 주장이 터져 나왔다. 요약하면 이렇다. '얼마나 기대를 가지고 향장마을 지정을 반겼는지 모른다.

멀리 오름들의 파노라마와 곡선을 그리며 걸어가는 길은 한 폭의 그림 같다.

행정기관과 연구기관의 위상을 믿고 지역 농민들은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지금의 현실은 컸던 기대만큼 실망도 크다'는 것. 시범사업을 위해서 행정력이 동원되는 것은 온당하다. 하지만 시범사업까지가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예산 낭비이며, 혈세를 제대로 쓰지 않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향장 관련 업체도 들어와 있고 하니 지역주민들이 실질적인 소득과 연계할 수 있는 향장마을 발전전략이 장기적인 계획에 입각해 추진되어야 한다. 희망을 줬으면 실망시키지 말아야 하니까. 주민의 70% 이상이 70대가 넘었다고 한다. 그동안 마을 발전을 위해 젊은 날을 바친 분들이었다. 작은 주민 수에 비해 마을은 다양한 시설을 보유하고 있었다. 마을공동체 의식이 견고하기 때문에 이룰 수 있었던 업적들이라고 한다. 하지만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었다. 한 세대 뒤에 도시로 나가 사는 후손들이라도 들어와서 살지 않는다면 마을 구성원들은 외부에서 들어와 사는 사람들이 대다수를 이룰 것이라는 것. 작은 꿈들을 하나하나 현실로 이루는 과정에서 어음2리는 새롭게 이주해오는 주민들과 손잡고 새로운 희망을 설계하게 되리라. 미래는 어떤 형태도 마련되어 있지 않으니까.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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