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54)서귀포시 성산읍 신풍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54)서귀포시 성산읍 신풍리
정감어린 제주 토속지명 가득 들어차 있는 선비마을
  • 입력 : 2015. 08.25(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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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회관 옥상에서 바라본 마을 전경(위)과 바닷가와 잇닿아 독특한 신풍목장(아래).

섬 제주에서 가장 긴 천미천 등 자연자원이 풍부한 곳
'효'를 덕목으로 삼는 마을로 이주민과는 ‘정’ 으로 뭉쳐
2003년 농촌테마마을로 선정… 독특한 체험공간 운영
지역 숙원사업은 ‘도로확장’… 한옥전원마을 조성 꿈꿔



섬 제주에서 가장 긴 하천은 천미천이다. 한라산 동북사면에서 출발하여 마라톤 코스에 육박하는 40.6km를 굽이치며 달려와 성산읍 신풍리와 신천리, 표선읍 하천리 사이에서 바다와 만난다. 옛 이름으로 이 세 마을을 '내끼'라고 불렀다. 내(川)의 끄트머리 또는 주변이라는 뜻. 김상언(77) 노인회장의 설명에 의하면 옛 비석에 천미촌, 천미리라고 표기한 것으로 미루어 마을이 가진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하천이 자리 잡은 것이다. 그러다가 철종(1840년) 때 마을 선비 오진조라는 분이 마을 이름을 신풍리(新豊里)라고 바꿨다고 한다.

수자원은 냇가와 주변에 많은 소와 못들을 보유하게 하였다. 갈뫼못, 우뢰기물, 득대기물, 가매기못, 곱은소, 몽거니물, 제석물, 도리소, 던데못, 정언이물, 왕지못, 큰개우물 등 정감어린 제주어 지명들로 가득하다. 마을 어르신들이 안타까워하는 것은 하천정비사업이라는 것으로, 암반 굴곡이 있어 자연스러운 하천의 모습을 중장비로 모두 파괴시켜 물 흐름 중심으로 변화시켜버렸다는 것이다. 경관 파괴에서 오는 거대한 손실을 후회하고 있는 것. 신풍리 지경의 천미천 계곡에는 예덕나무군락, 해송군락, 머리꽃나무, 백리향 등 다양한 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모두가 한라산에서 발원하여 천미천을 따라 발생시킨 자연자원이다. 신풍리는 지금의 본동이라고 하는 웃내끼 지역과 바닷가와 인접한 큰개동 지역을 포함하여 구성된다. 남산봉에서 시작하여 크고 작은 동산들과 모루들을 형성하며 바닷가까지 이어지는 자연스러움.

성읍, 성산간 중산간도로에서 내려가는 남성봉로의 아름다운 모습.

조선 세종 5년 정의현 읍성이 지금의 성읍리 지역으로 옮겨오면서 자연스럽게 인접한 '내끼' 지역에 촌락이 번성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을 것이다. 신풍리 지역 지명들을 통하여 당시에 어떤 사람들이 살았던 마을이었는지 유추 할수 있다. 선비장골, 짐비장우연, 선이방 터, 성장터, 소장우연, 고시랑 골 등은 대부분 정의현에 아전벼슬을 하던 사람들의 집터였다는 것. 특이한 것은 고시랑골의 시랑(侍郞)은 고려 때 벼슬이다. 新豊이라는 이름을 한고조 유방의 아버지 패공의 고향 풍촌의 고사에서 가져다 쓸 정도로 효도를 강조한 마을. 마을 이름을 바꾸기 위한 논의에서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 출중한 선비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순택 이장

성산읍의 가장 서쪽 마을이라서 읍소재지고성까지 12km지만 표선까지 5km다. 역사적으로도 성읍과 인접하여 성장해왔다. 도로 여건으로 살펴보는 신풍리는 번영로 동쪽 성읍 성산 간 중산간 도로와 일주도로 사이에 본동이 위치하고 일주도로 인근 바닷가 부근에 큰개동이라고 하는 아랫마을이 있다. 지금 한창 하동과 상동을 이어주는 길이 확장공사 중이다. 김순택(55) 이장이 바라는 시급한 마을 발전 과제는 번영로와 빠르게 연결 될 수 있는 4차선 도로를 뚫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마을 주민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 현재까지는 농촌 고유의 경관이나 자연자원을 잘 보존하고 있다. 이러한 강점을 살려서 2003년부터 전국적으로 우수한 농촌테마마을로 선정되어 '어멍아방잔치마을'과 같은 독특한 체험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마을공동체의 힘으로 관광자원화 작업에 성공적으로 안착했지만 한계에 봉착하고 있음을 절감하고 있었다. 도로 여건이 관광객들의 시간을 끌어들이지 못하면 더 이상의 발전은 엄두도 못 내게 되어 있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결코 도시화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고 있는 노력이 결실을 볼 수 있도록 행정 지원이 뒤따르는 것. 최소한의 여건 마련이 도로확장이라고 했다.

폐교를 활용 농촌전통테마마을 사업으로 관광자원화 하고 있는 어멍아방잔치마을.

신풍리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가장 독특한 사례가 있었다. 귀농한 젊은 부부가 청년회나 부녀회에 가입하여 함께 활동하고 있다는 것. 오병철(44) 청년회장은 "청년회원 48명 중에 6명이 귀농청년입니다. 고유 활동인 농로와 마을안길 정비, 방범, 방역활동은 물론 굵직한 마을행사 준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함께 마을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귀농인구 증가가 하나의 대세를 형성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주해 와서 사는 젊은 부부를 진정한 의미의 신풍리 사람으로 녹아들게 하는 것은 마을공동체의 정을 보여줬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행정구역 안에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같은 자연환경을 호흡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을사람들의 정을 호흡하게 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공적 귀농이라는 뜻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한 세대 뒤에 3000명 이상이 사는 마을이 될 것이라는 자신감은 이런 과정에서 얻은 것이리라.

성읍리, 하천리와 경계를 이루며 바다로 향하는 천미천.

독특한 경관이 있다. 바닷가와 바로 인접한 신풍목장이다. 지금은 개인 소유지만 마을공동체가 집념을 가지고 마을기금을 모아 마을 땅으로 만들어서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일주도로와 바다 사이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말들을 바라보는 것은 참으로 이색적인 경험이다. 섬과 말이라고 하는 테마가 그대로 여과 없이 드러나는 감각적인 장소다. 원성희 부녀회 부회장이 78세가 되는 30년 뒤, 신풍리의 모습을 그려달라고 했다. "마을의 모든 가구가 한옥으로 변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옥전원마을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밖은 똑 같지만 안에는 최신 시설로 자동화 된 그런 한옥시대를 살아가겠지요." 결국 전통과 미래를 융합할 방법을 주부 9단의 입장에서 이렇게 꿈꿨을 것이다. 중산간 도로에서 신풍리까지 연결된 남산봉로를 걸었다. 숲터널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름다운 농로가 가장 큰 정주여건이 되는 마을이다. 그 길이 밝은 미래를 향하여 뻗어가고 있다. 낮엔 밭을 갈고 밤에는 글을 읽던 선비마을이 탈바꿈을 준비하고 있다. 환골탈태가 준비된 생명력 넘치는 마을이 신풍리다.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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