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바다와 문학] (43) 윤봉택 시 '제주 바람'

[제주바다와 문학] (43) 윤봉택 시 '제주 바람'
"숨비질 비명 너머 마음 닻 내릴 포구"
  • 입력 : 2020. 03.06(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강정 해군기지 개발 직전의 강정바다와 강정 마을. 윤봉택 시인은 '마음 닻 내리는 강정 포구' 등 제주 바람 이는 바다를 노래했다.

바다와 교유하는 제주 바람
제주 땅 설운 사람들에게로
숨통 터주던 강정 포구 추억


그는 제주를 제주라고 말하지 않는다. 바람이라고 부른다. 1991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인 '제주 바람'을 맨 앞에 세우고 첫 시집 '농부에게도 그리움이 있다'(1996)를 묶어냈던 제주 윤봉택 시인이다.

'메마른 이랑마다 기다림의 씨앗을 뿌리는 농부님'들에게 바친다는 그의 시들은 제주 바람을 타고 이 섬에서 이름없이 살아온 '설운' 이들에게 향하고 있다. 가깝게는 땅을 일구는 사내들, 자맥질을 하는 여인들이 있고 저 멀리는 90명이 넘는 강정마을 제주4·3희생자들이 있다. '제주 바람'은 바다와 교유하며 그 오래된 사연을 전한다.

제주 바람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뭍과 바다를 오가며 얼룩진 농부의 옷깃을 매만져주고 꽃과 나무의 씨앗을 땅 위에 뿌린다. 바닷길에 나설 채비를 하는 포구에도 바람이 머물다 간다.

바람은 바다로 뛰어드는 아내에게 먼저 닿는다. '눈 내리는 날에도/ 아내는/ 빗나간 손금 하나에 기대어/ 자맥질한다'('제주 바람')는 구절에 뒤이어 '그 숨비질의 비명'이 따른다. 물 밖으로 얼굴을 내민 여인들의 호이호이 숨비소리는 고된 물질의 신호음이다. 바람은 자연산 톳을 뭍으로 끌어올린 아내의 노동을 위무하듯 젖은 고무옷을 말려준다.

그 바람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 폭풍이 된다. 평온하고 고요한 나날에 풍파를 일으킨다. 그래서 그는 "바람부는 날에는 온섬이 운다"(한라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고 했는지 모른다.

어촌마을 성천포에 일었던 개발 '바람'이 그랬다. 중문관광단지를 소재로 읊은 '바람·11' 연작은 바람이 낳은 상실에 대한 보고서다. 시인은 성천포 '바당'에 빠진 건 좀녀만이 아니라며 그것들을 제주방언 명칭으로 일일이 불러낸다. 보들래기, 고망우럭, 어랭이, 물꾸럭, 군벗, 오분재기, 구쟁기, 양애, 재피, 돌방애, 돗도고리…. 이 모두가 바다 생물과 생활 유산이 파도에 휩쓸리고 굴삭기에 눌렸다고 탄식한다.

시인은 '강정 포구'에서 숨통을 튼다. '강정 포구에 와서/ 보아라/ 그 어느 섬에서도/ 나타나지 않은 마음 닻 내리는/ 포구가 있나니'라며 '고개 들어 마라도를 보면/ 이어도 건너는 길목이 보이고/ 물결 이는 이랑마다 노 저으며/ 허리 펴는 보재기들'이 있다고 노래했다. '마파람에 옷 벗는 해안선/ 태왁 띄운 섬마다/ 이 마을 올래가 다시 열리고'라는 대목에 이르면 한번 본 사람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섬의 풍경이 그려진다. 이 시가 쓰여진 건 30년 전의 일이다. 그곳에 거센 바람이 불었고 포구는 시인이 노래했던 그날 같지 않다. 진선희기자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8247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