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의 제주문화사전] (3)풍토

[김유정의 제주문화사전] (3)풍토
바람과 땅의 합성어… 자기 삶의 환경에서 익숙한 것들
  • 입력 : 2020. 03.23(월) 00:00
  • 편집부 기자 hl@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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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환경·문화적 힘들에 의해 강한 지역 색깔
기후와 환경 인간에게 끼친 영향 풍토학의 시작
김정 ‘제주풍토록’ 제주섬 특징 고스란히 담아내


#풍토의 의미

풍토(風土, climate, natural features)란 바람(風)과 땅(土)의 합성어로, 곧 그 바람과 땅이 우리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말이다. 고대의 지·수·화·풍(地水火風)과 연관이 깊다. 바람은 다른 세계를 이어주기도 하고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도 한다. 땅은 자신의 생존을 위한 의식주가 돼 준다. 바람은 자신의 생기(生氣)가 되기도 하지만 외부로부터 와 나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땅은 흙이자 내가 사는 대지이고 한 행정 지역이다.

제주 땅 속의 스코리아.

흙은 천연자원으로 만물을 기르는 위대한 바탕이다. 그러니까 풍토는 생명체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기후와 자연과 사회를 말하고, 그것이 내가 사는 곳의 환경을 만들면서 자신을 변화케 하거나 토착시키는 것이다. 또한 풍토란 사회나 집단의 생활을 특징짓는 일반적인 분위기를 말하는 사회학적인 의미를 갖기도 한다.

그러니까 문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풍토를 이해해야 한다. 내가 사는 곳만 특별하다고 생각할 수 없다. 모든 땅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풍토색(local color)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땅의 자연적 속성(자원)과 그 에너지(생산력과 문화)는 다른 곳의 속성과 에너지가 다를 뿐이어서 지리적 차이에서 오는 지역적 특성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풍토는 자연기후와 지리적 특성에 의한 해당 지역의 경제·환경·문화적 힘들에 의해 그곳만의 강한 색깔을 띤다. 이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며 내 지역과 다르기 때문에 생소한 것이다.



#풍토성과 예술

장소정체성(identity of place)은 해당 지역을 말하는 심리적 표현이다. 분명 풍토의 여러 요소들이 그 지역의 현상을 드러내는 것이다. '제주답다, 제주와 같다. 제주적이다'라는 말은 제주가 아니면 말할 수도 표현할 수도 없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제주노래, 제주미술, 제주문학, 제주어라는 말이 성립되는 것이다.

제주 풍토를 잘 말해주는 동자석상(조선시대).

이런 장르를 풍토개념으로 풀어보면 제주노래는 제주굿노래나 노동요 등에서 나오는 가락과 음색, 그리고 가사가 주는 삶의 희노애락의 굴절들이 제주에서 나온 것이고, 제주미술은 형상이나 표현된 주제의 색채나 형식이 제주에서 구현되고, 혹은 제주를 염두에 둔 것들이고, 제주문학은 삶의 서사와 역사적 드라마의 표현 양상들이 제주 사회를 모티브로 표현된 것이다. 제주어는 일상에서 소통되는 의미 전달과정의 강한 악센트와 문화 복합적인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제주예술하면 지역적인 것이고 그래서 왜소하다고 여기거나 초라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의 세계화는 바로 로컬리티(locality)라는 문화 판구조(plate structure)로 돼 있고, 그 판이 서로 물리면서 하나의 세계가 된 것으로 생각하면, 문제는 어느 국가나 지역을 막론하고 인간이 살아가는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는가, 자신이 환경에서 얻은 그 진득한 삶의 노래가 국적, 인종, 언어를 불문하고 사람들과 어떻게 교감하느냐에 따르는 것이 된다. 하여 결국 그것의 문제는 어떻게 표현하느냐인데, 우리가 좋아하는 많은 예술가들은 자기 땅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풀어나간 사람들로서 자신의 문화적 원천을 예술적으로 말한 것이다. 그래서 예술은 풍토적이면서 지역적인 것이기 때문에 언제나 세계를 향해 열려있게 된다.

#히포크라테스와 유안, 그리고 김정

기원전 5세기에 태어나 풍토의 중요성을 말한 의사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는 계절의 변화, 이를테면, 강한 열기, 엄혹한 겨울, 많은 비와 가뭄, 그리고 크고 다양한 변화를 일으키는 바람이 외모와 키 등 신체와 기질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기후 변화와 계절의 특성들이 인체의 체액과 성격에도 나타나는데 "거칠음, 사나움, 용맹함은 그런 자연환경에서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유럽에 사는 이들이 아시아에 사는 이들보다 더 용감하며, 항상 같은 기후에서는 게으름이 생겨나고, 변화 많은 기후에서는 몸과 마음이 시련을 견뎌낸다"고 했다. "이로 인해 유럽인들이 아시아인들보다 더 호전적인데 그것은 제도에 있어서 아시아인들은 왕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며 그 지배로 인해 겁이 많고 정신이 노예화되었으므로 타인의 권력을 위해 자발적이고 무모하게 위험을 무릅쓰려 하지 않는다. 반면 스스로 다스리는 사람들은(당시 그리스), 즉 자신을 위해 위험을 떠맡는 사람들은 기꺼이 즐겨 위험에 직면하는데 그들이 승리에 대한 보상을 차지하기 때문이며, 따라서 제도가 용기의 형성에 적지 않게 기여한다는 것이다." 히포크라테스는 거주하는 지역의 풍토적 요인들인 바람, 물, 장소는 사람들의 신체와 정신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원전 2세기경 한나라를 세운 유방의 손자 유안(劉安)은 '회남자(淮南子)'에서, 마치 히포크라테스와 같이 사람의 기질은 자신의 지역 풍토에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산(山) 기운이 센 곳은 남자가 많고 연못의 기운이 강하면 여자가 많다. 답답한 기운이 강하면 벙어리가 많고, 바람의 기운이 많으면 귀머거리가 많다.… 모래땅에는 발 빠른 사람이 많고, 단단한 땅에는 둔한 사람이 많다. 맑은 물가에서 난 사람은 목소리가 작고, 탁한 물가에서 난 사람은 목소리가 크다. 빠른 물가에서 난 사람은 행동이 가볍고, 느린 물가에서 난 사람은 행동이 무겁다. 중앙의 땅에서는 성인이 많이 태어난다. 사람은 모두 자기가 사는 곳의 기운과 비슷하며 그 땅의 종류에 감응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후와 환경이 인간에게 끼친 영향은 후에 풍토학의 시작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옛 육지 사람의 눈에는 제주가 어떻게 보였을까.

조선 중종 때 대사헌을 지낸 유배인 충암(충庵) 김정(金淨, 1486~1521)은 당시 국가의 적폐청산을 도모하다가 기묘사화로 죄인으로 전락해 유배지 제주에서 36세에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했다. 그가 남긴 '제주풍토록(濟州風土錄)'은 16세기 초 제주 문화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사료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제주인의 생활을 일러서는 '사귀(祠鬼)를 몹시 숭배하여 무당이 매우 많고… 짐승을 희생시켜 음사(陰祀:신당)를 위하므로, 음사는 거의 300여소에 이른다.' '뱀을 꺼리지만 이것을 신으로 받들어 보이는 즉시 술로 주문을 외고 쫓아내거나 죽이지 않는다.' '말소리는 가늘고 높아 마치 바늘로 찌르는 것 같아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 많다.' '등에 짐을 지고 머리에 이지 않는다.' 제주의 지형을 보고서는 '구릉(丘陵)이 있되 모두 외따로 떨어져 있으며 머리가 벗겨졌다.' '산봉우리 정상은 오목하여 가마솥 같고 진흙물이 고여 있으며, 봉우리마다 그러하여 머리 없는 산이라고 한다.' 이 풍토록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심방이 많고 본향당이 300개를 넘는다는 것, 뱀은 죽이지 않고 숭배함으로 많아졌다는 것, 사투리는 알아들을 수 없고, 등짐으로 운반한다는 것, 용암이 곳곳에 있으며 오름에는 분화구가 있다는 것을 제주 풍토의 특징으로 말하고 있다.

결국 풍토가 중요해지는 것은 고향을 떠나면 그곳이 그리워지는 것처럼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사랑하게 되는 것, 바로 몸에 밴 내 자신의 삶의 환경에 익숙해진 때문이 아니었을까? <김유정 미술평론가(전문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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