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이방익 연구 닻올려… 사료 고증 힘모아야"

"제주 이방익 연구 닻올려… 사료 고증 힘모아야"
'이방익 표해록과 한중 문화교류연구' 한·중 국제학술대회
  • 입력 : 2019. 10.20(일) 19:00
  • 김지은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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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제주대에서 열린 이방익 표해록 한·중 국제 학술대회 발표자와 토론자, 후원 기관장 등이 개막식 직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주중국학회 제공

선구적 활동 권무일 작가
이방익 유품 발굴 등 주문
中 학자 "청 번성기 목격
최부 표해록과 비교 연구"
정조와 이방익 관계 규명
해류 등 학제간 연구 필요

'북촌 사람' 이방익의 존재를 일깨운 자리였다. '표류학' 연구에 대한 주문에서 제주와 중국 복건성, 절강성이 공동 연구에 힘을 모으자는 이야기까지 8시간 넘게 진지한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지난 19일 제주대 아라컨벤션홀에서 열린 '이방익 표해록과 한·중 문화교류 연구' 한·중 국제 학술대회다.

제주중국학회(회장 심규호)와 이방익연구회(회장 권무일)가 주최하고 제주학연구센터, 주제주중국총영사관, 제주문화포럼, 한라일보가 공동 후원한 이번 학술대회는 1796년 지금의 대만 팽호도에 표착한 뒤 중국을 거쳐 8개월 여만에 귀환한 제주인 이방익을 다룬 첫 학술대회였다. 마침 이날은 이방익을 낯선 땅으로 이끈 표류 기점일(음력 9월 21일)로 추정되는 날이었다.

이방익을 '발굴' 했다는 평가를 받는 권무일 작가를 시작으로 심규호 제주국제대 석좌교수, 이두석(李斗石) 중국 복건사범대학 복청분교 외국어학원 교수, 천용(千勇) 절강대 한국연구소 교수, 김경옥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HK 교수, 진선희 한라일보 기자의 발표가 잇따랐고 박찬식 역사학자, 김중섭 제주대 교수, 임동춘 제주대 교수는 지정 토론자로 초청됐다. 청중 토론, 축사 등을 합쳐 이번 학술대회에서 제기된 의견들을 발언 순서대로 싣는다.

▷펑춘타이(주제주중국총영사)=세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다. 첫째, 최부, 장한철, 이방익 등 제주와 관련된 표해록, 표류기가 많은 제주에서 표류학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둘째, 고서만이 아니라 이방익 발자취를 따라가는 신(新) 중국 기행을 통해 연구하고 교류하는 작업이 이루져야 한다. 셋째, 학문적 연구와 더불어 경제·관광 교류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권무일=그동안 이방익은 제주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현재 전해지는 이방익의 표해록은 기행과정의 세세한 기록과 솔직한 표현을 감안하면 이방익이 쓴 원본을 누군가 필사하고 첨삭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방익이 지나간 노정을 따라 제도·문물·풍속·인정·고적 등의 현장을 답사하며 행적을 확인했다. 이제 작은 불씨를 지핀 만큼 이방익 연구가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르길 기대한다. 내년 동정호·악양루 등 양자강 탐방, 이방익 유품과 신도비 발굴, 한·중 교차 학술 교류, 이방익연구회 공식 발족, 중국 탐방기 발간은 과제로 남겨둔다.

▷심규호=이방익이 귀환한 길과 주자의 구도의 길에 대한 비교 연구를 향후 과제로 삼고자 한다. 이방익이 거쳐간 복건성 건양구는 건본(建本)의 고향으로 이를 통해 한중 문화교류의 일단을 찾아보는 것도 유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조를 중심으로 현존했던 인물이 어떻게 신앙이 되었는지도 살펴보겠다.

▷이두석=이방익은 청나라에서 가장 번성했던 강희, 건륭제 시대를 목격한 첫 번째 조선인이다. 이방익 표해가를 통해 청조의 대외정책이 개방적이고 이웃나라와 외국인에게 우호적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표해가에 나오는 일부 지명, 옛 터는 좀 더 고증해야 한다. 이방익이 지난 복건성내 경로는 전체 노정이 1011㎞이고 육로가 442㎞, 수로가 569㎞이다. 박지원의 '서이방익사'에는 하문에서 복건성까지 1600리라고 했는데 실제 거리는 779리다.

▷박찬식=이방익은 조선 500년을 통틀어 고득종을 제외하고 고위직에 오른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치밀한 인물 연구와 더불어 정조와 이방익의 관계를 규명하는 일이 중요해보인다. 특히 정조 대 김만덕과 이방익 두 인물이 활동했다는 점은 주목된다. 역사학계에서 좀 더 기초적인 연구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김중섭=이방익이 동정호를 직접 찾았는지는 의문이지만 사실 여부를 떠나 문학작품으로 봤을 때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팽호도의 마궁대인은 그 지역의 높은 관리를 일컫는 말인 것 같고, 고려채는 고려와 연관있기 보다는 양배추가 대만에 전해지는 과정에 그 발음이 '고려'와 비슷한 데서 유래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천용=중한 해상교류 연구는 고대 시기에 중국 강남과 한국 사이의 인종융합, 문명발전, 문화교류 등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절강대는 1993년 한국연구소 건립 이래 중한 해상 뗏목 표류탐험 등을 진행해왔고 22권의 학술 저서, 수십 편의 논문을 출간, 발표했다. 최부 표해록 연구를 통해선 중·한 경제무역 발전 구상 등을 제기했다. 제주는 고대 해양교류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 이방익은 최부 표해록과 비교 연구가 필요해보인다.

▷진선희=제주향토문화예술 중·장기계획(2013~2022)에는 제주 표류사 DB를 구축하자는 과제가 있다. 외국인의 제주 표류사, 제주인의 외국 표류사를 담자는 것인데 이행 여부를 점검할 때다. 절강대, 목포대처럼 지역 대학이 제주 해양문화 연구의 중심축이 되길 바란다.

▷김경옥=청나라 건륭제(1736~1795) 시기 표류 사고가 옹정제 때에 비해 3배나 급증한 건 그만큼 중국인들의 해상 활동이 활발했음을 입증해준다. 건륭제는 표류민 구휼에서 조공국이든 비조공국이든 구분 없이 후하게 대접해서 본국으로 송환하도록 규정했다. 조선의 관원과 중국 표류민 간의 대화 내용을 기록한 문건인 '문정별단'을 보면 17세기에는 중국이 해금령을 선언한 이후 상선에 부과한 세금 등 중국 정보를 수집했다. 18세기에는 중국의 농사 작황 등 실생활에 관련된 정보를 수집했다.

▷임동춘=무동력 상태의 어선이 표류하는 과정을 알려면 해류를 들여다봐야 한다. 표류 연구에서 해양 조류 전공자 등 융복합 연구가 절실한 이유다.

▷홍기표=지금까지 발굴된 이방익 사료에 대한 고증 작업이 뒤따라야 그간의 선구자적인 노력들이 빛을 발할 수 있다. 최부 표해록이 중국 3대 기행문으로 알려지기까지 20년 가까운 연구가 바탕이 되었듯 우리 역시 차분하게, 치밀하게 연구를 이어가야 한다. 논저가 쌓이며 학계에 알려지고 대중에 접근할 때 기념비 같은 사업 추진도 자연스레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오늘이 그 첫발을 내딛는 시간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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