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건의 문화광장] 제주건축의 '새로운 지역주의'를 향하여…

[양건의 문화광장] 제주건축의 '새로운 지역주의'를 향하여…
  • 입력 : 2018. 11.20(화) 00:00
  • 김경섭 수습기자 kks@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올해 가을 제주는 '건축의 섬'이었다. 특히 지난 10월에는 건축계 최고 권위인 '2018 대한민국 건축문화제'가 '다채도시(多彩島市)'를 주제로 국내외 건축계인사들의 성원 속에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이 행사에 제주건축가회는 6-7세기 범선의 항해시대부터 쿠로시오 해류에 의해 형성되었던 동중국해의 해양 실크로드에 착안하여, 동아시아 해양문화권의 새로운 건축문화교류를 구상하며 '쿠로시오 해류 : 동아시아 해양건축 실크로드'라는 전시를 내놓았다. 제주의 건축가들이 대만의 이란, 일본의 오키나와, 가고시마, 나가사키 등을 직접 답사하고 수집한, 각 지역의 전통건축, 도시경관 그리고 현대건축의 이미지들을 설치미술의 전시관에서 만나 볼 수 있었다. 제주를 비롯한 각 지역의 건축문화를 동시에 비교 체험함으로써 이를 통한 공동의 시대정신과 방향성 모색이 전시의 기획의도라 할 수 있다. 이는 향후 동아시아 해양문화권의 건축문화연대를 구축하고, 그 중심에 제주건축을 포지셔닝하려는 야심찬 계획의 출발인 것이다.

이들 각 지역은 바다에 면한 섬나라이다. 섬에서의 삶에는 독특한 해양환경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교역을 통한 보편의 흡수에 소홀할 수 없는 이율배반적 도서성(島嶼性)이 발견된다. 즉 외부세계로부터의 물질과 문화의 유입이 없으면 엔트로피가 증가되어 결국 생명을 잃게 되고, 역으로 과도한 외부유입 역시 기존의 질서와 생태체계를 무너뜨리기기 때문에, '상반의 공존'이 곧 '도서성'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섬에서의 생존은 외부세계와의 열림과 닫힘에 적정성을 유지하는 것이 절대적이다. 이러한 적정성의 중요한 전제조건은 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자기중심성을 정립하는 것이며, 따라서 정체성을 향한 절대적인 갈망은 섬의 동질적 문화요소이다.

또한 이들 지역마다 정체성을 이루는 근저에는 위상학적 이유로, 근세 이후 펼쳐지는 역사적 유사성이 있다. 서구 열강의 개방 압력 시대를 거쳐 군국주의의 그늘에서 벗어나더니, 태평양 전쟁의 최전선에서, 동서 이데올로기의 대립공간으로 숨 가쁘게 질곡의 역사가 전개된다. 이렇듯 끊임없이 이어져온 지역적 특수성과 보편적 문명의 접촉은 수용, 변이의 과정을 통해 다시 지역의 정체성을 이루고 다음 세대에 작동한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현재까지도 문화 전반에 유효하며 건축도 다름 아니다.

전시에서 보이는 각 지역의 도시건축은 도서성과 역사성에 더불어 보편적 문명으로서 모더니즘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 유입시기와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 할지라도 변증법적 통합으로 발현된 도시건축의 모습에 모더니즘의 숨결이 있다. 이를 '지역적 근대성(Vernacular Modernity)'의 한 유형으로서 '도서성의 근대성(Insular Modernity)'이라 칭하고자 한다. 이는 과거 해양 실크로드의 교역국에서 새로운 동아시아 해양실크로드의 건축문화연대를 위한 공동성이라 할 수 있다.

현대사회는 기술과 매체의 비약적 발전 속에 자본과 신인류, 신문화로 무장한 새로운 보편의 물결이 드세게 몰아닥치고 있다. 섬이라는 고립의 환경 속에 지역적 특수성으로 체화된 '도서성의 모더니즘'은 문화적 다양성과 자본의 욕망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혜안으로 동시대성을 담아낸 '새로운 지역주의'의 시대로 진화될 것이다. 기존의 지역성이 장소와 역사성에 기대었다면, 새로운 지역성은 다중적이고 개방적이며 동시대성에서 시작된다. '2018대한민국 건축문화제'의 주제기획전은 제주건축의 미래를 향하여 '새로운 지역주의'를 선언한다.

<양건 건축학 박사·가우건축대표>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2713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