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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세상]표류인 이방익은 왜 정조를 놀라게 했나
제주 권무일 작가의 '평설 이방익 표류기'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17. 09.0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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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출신으로 18세기 중국 표류
양자강 이남 처음 목격한 조선인
국한문 혼용 표해가에 체험 생생

1796년(정조 20) 9월, 임금을 호위하던 충장위장 이방익(1757~1801)은 고향 제주로 향한다. 우도에 있는 어머니 묘를 북촌 선산으로 이장하기 위해서였다. 일행 7명과 우도로 건너가 이장 절차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뱃놀이를 즐기게 된다. 기우는 해가 바다에 비쳐드는 풍광에 빠져들며 흥에 겨워 놀고 있을 무렵, 느닷없이 바람이 몰아친다. 풍랑이 거칠어지자 순식간에 배가 요동을 쳤다. 돛대와 삿대마저 부러진 배는 기약없이 떠내려간다.

이방익 일행은 표류 16일만에 대만해협에 있는 팽호도에 닿는다. 고요해진 바다가 그들을 또다른 세상으로 데려다놓았다. 이방익 일행은 대만, 중국을 경유해 조선으로 돌아온다.

그동안 장편 역사소설 '의녀 김만덕', '말, 헌마공신 김만일과 말 이야기' 등 제주에서 살다간 인물에 주목하는 글을 써온 권무일 작가가 이번엔 이방익을 불러냈다. 제주학연구센터 제주학총서로 펴낸 '평설 이방익 표류기'다.

권 작가가 이방익을 붙들게 된 건 김석익의 '탐라기년'에 등장하는 단 네 줄의 문장 때문이다. 제주사람 이방익이 표류해 고국으로 돌아왔고 연암 박지원이 정조의 명에 의해 이를 기록해 두었다는 내용이었다. 작가는 그 길로 이방익의 행적을 좇기 시작했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 일기', '일성록' 등에 담긴 관련 기록을 읽고 1914년 최남선이 발간한 잡지 '청춘' 창간호에 게재된 이방익의 기행가사 '표해가'를 확인하는 등 차근차근 자료를 모았다.

이방익의 고향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도 찾았다. 그 과정에서 4~5년 전까지 이방익의 신도비가 남아있다가 땅에 묻혀버렸고 자손 중에서 유품을 보관하고 있을 거라는 증언을 확보했다.

왜 이방익인가. 권 작가는 이방익이 뜻밖의 표류를 통해 조선시대를 통틀어 양자강 이남의 중국을 처음 목격한 인물이라고 했다. 당시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중국 강남을 이상향으로 삼아 시와 그림을 남겼지만 실제 눈으로 본 게 아니었다. 권 작가는 "이방익의 표류담은 정조의 주도 하에 선진개혁을 시도하던 상황에 조선의 현실을 반성적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고 조선의 지성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칠 만한 사건"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작가는 이 책에서 국한문 혼용 가사 '표해가'를 토대로 이방익의 도정을 따라가며 시대적 배경을 풀어쓰고 역사적 상상력을 더한 평설을 넣었다. 이방익이 쓴 원본을 필사하고 첨삭했을 가능성이 있는 순한글 서사문 '표해록'의 원문과 주해를 부록으로 실었고 박지원이 쓴 '서이방익사'의 원문과 역주 등도 수록했다. 평민사.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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