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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플러스]원도심 골목
살아온 흔적 고스란히… 제주의 숨겨진 보물 원도심
채해원 기자 seawon@ihalla.com
입력 : 2017. 06.1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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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덕정과 목관아 전경. 사진=한라일보 DB

무근성 곳곳에 근현대사의 흔적
과거 칠성골 제주 문화예술 선도

최근 문화예술 놀이터로 변신중

일도1동부터 이도1동 삼도2동, 용담1동, 건입동까지 5개 행정동에 걸쳐있는 3㎢에 옛 것을 살려 미래를 일군다는 기치 아래 도시재생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원도심. 도시가 생기고 확장됐다 다시 쇠퇴기를 맞는 것은 과거 중심지라 불리웠던 도시들의 생애주기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세계 각국에서는 왜 원도심을 중심으로 한 도시재생을 얘기하는 것일까. 원도심엔 그 지역의 역사와 옛 사람이 살아온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특히 제주옛성이 자리한 제주의 원도심은 탐라국부터 근대현사까지의 역사를 담은 장소가 곳곳에 남아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 무근성이다. 무근성은 탐라시대의 성(묵은 성)이 있었던 마을로, 조선시대 제주성을 넓힐 때 만들어진 동네 성안과 대비해 이처럼 불리웠다. 무근성 내에는 도민들이 기증한 5만여장의 기와로 복원된 제주목 관아와 1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자리를 지켜온 제주북초등학교, 제주도내 최초의 근대식 여관인 탐라여관, 이승만 대통령이 와서 묵었던 동양여관 등이 위치해 있다.

원도심 풍경.

그 중에서도 무근성내 위치한 관덕정은 제주역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소다. 관덕정은 제주목 관아의 부속건물로, 조선 세종때 처음 세워져 재건과 보수를 반복해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양주의 귤밭을 술에 취해 지나가네'라는 두보의 시구를 소재로 제주 특산물인 귤을 표현한 '취과양주귤만헌', 관덕정 내부에는 네 늙은이가 바둑을 두는 상산사호 등 7점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한옥에 이처럼 다양한 벽화가 남아있는 예는 드물다.

관덕정 앞 광장은 제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자 투쟁의 장소로 역할했다. 천주교도들의 무리한 행패를 견디다 못한 군중이 들고 일어선 이재수의 난 때 다수의 천주교도들이 죽음을 맞이한 곳도 바로 이곳이었으며, 1947년 4·3사건의 시발점이 된 삼일절 행사가 열렸던 곳도, 4·3사건 때 정권의 폭력적인 억압에 맞서 싸운 이덕구가 처형된 곳도 여기다. 지난 1998년 이곳에서 1914년부터 단절됐던 입춘굿놀이가 재연됐고, 지난해엔 제주지역 104개 단체로 구성된 '박근혜 정권 퇴진 제주행동'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즉각적인 퇴진을 요구했다.

이처럼 역사의 순간순간을 지켜온 원도심은 제주의 문화예술을 키워낸 장소이기도 하다. 특히 중앙성당부터 관덕정, 칠성로로 이어진 다방길은 문화예술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다방은 도내 문화예술인들이 생각을 나누는 장소이기도 했지만 작품을 전시하는 전시장이기도 했다. 최초의 다방 전시는 1954년 오아시스다방에서 열린 제주출신 서양화가 조영호의 개인전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후 도내 예술인들의 개인전이 60년대 원다방과 요안다방, 남궁다방에서, 70년대엔 소라다방과 정다방, 산호다방 등에서 촘촘히 이어졌다. 빵집도 전시장으로 활용됐는데 가장 많이 활용됐던 곳은 뉴욕다과점이다. 1961년 김원민 작가가 이곳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했고, 이어 이듬해인 1962년 임직순 조선대학교 교수가 서양화전을 열었다.

1980년대 관덕정 풍경. 이때까지 관덕정 광장에는 재일동포들이 고향발전을 기원해 기증한 분수대가 설치돼 초·중·고학생들의 졸업사진배경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처럼 다양한 이야기가 담긴 원도심은 최근 독특한 공간들이 들어찬 문화예술놀이터로 변신하고 있다. 문화예술인들은 서울의 북촌이나 서촌, 인사동과 같은 매력을 원도심에서 느끼고 있는 것. 지난해 탑동과 칠성통 인근에서 거리예술을 선보인 '아트세닉'과 연극과 예술활동 공간을 제공하고 청소년을 위한 연극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오이',독립출판물을 볼 수 있는 독립서점 '라이킷',문화강좌와 출판기념식 등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고 있는 '도서출판 각'도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원도심 골목에 담긴 이야기]

'한짓골' 중심으로 갈래갈래 골목길
원도심 요충지로 2000년대 초까지 번성


옛 풍취를 그대로 담고 있는 원도심 골목은 오랜 세월을 견뎌내며 나름의 이야기를 담았다. 특히 골목 명칭엔 지역의 역사와 문화 등이 담겨있다. '질(길을 의미하는 제주어)'과 '골(길을 끼고 있는 동네)'로 나타나는 제주의 옛길을 현재 관덕로8길로 남문로터리에서 제주중앙성당, 칠성로 입구까지 이어진 길 주변을 이르는 '한짓골'을 중심으로 간단히 소개한다.

옛 제주성 남문부터 칠성골 입구까지 약 450m 가량 초가 사이로 길게 이어져 있던 길을 '남문한질'이라 불렀다. 지금은 길이 넓지 않아 일방통행로이지만 옛 조선시대 땐 성안에서 가장 폭이 넓은 큰 길이었기에 이같은 명칭이 붙었다.

여기서 '한짓골'이란 단어가 파생됐다. '한짓골'은 제주중앙성당을 기준으로 '웃한짓골'과 '알한짓골'로 나뉘는데 옛 중심도로인 만큼 이앗골, 동불막골, 몰항골, 남문샛길 등 여러 갈래의 골목길이 연결돼 있다.

제주중앙성당에서 인천문화당으로 이어지는 '이앗골'은 제주판관 집무실인 이아 관청으로 통하는 길을 중심으로 한 마을로, 원도심의 중심지로 2000년대 초까지 번성했던 곳이다. 이아는 수령의 지방행정을 보좌하는 일종의 지방자치단체 기관으로 판관의 집무공간인 찰미헌과 그 부속 건물군을 이른다.

연결된 골목중엔 사람이 오가는 목적이 아닌 민간에서 발생한 불길이 관아로 번지는 것을 막는 목적의 길도 있다. 바로 동불막골과 서불막골이다. 동불막골은 동쪽의 불길을 막는 길로 한짓골과 문화예술의 거리를 잇는 구간이다. 동불막골 서쪽엔 서불막골도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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