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한라일보신춘문예]당선소감·심사평

[2013 한라일보신춘문예]당선소감·심사평
  • 입력 : 2013. 01.01(화) 00:00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시 당선소감] 조율 "세상의 절반을 가득 울리는 시"

저는 구름을 뜯어먹어 본 적도, 남들 다 가는 그 흔한 시집을 가본 적도 없습니다. 쓰고 또 쓰느라 나를 읽어볼 새 없이 꼬박 서른을 채웠습니다. 이제, 저는 골목을 읽고 당신의 옆모습을 읽고 당신의 잘려나간 바짓단을 읽겠습니다.

2012년 겨울, 저는 꿈속에서 방석과 방석 사이에 '햄버거 패티'처럼 쑤셔진 뱀을 보았습니다.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는 주변의 이야기를 잊어갈 무렵 당선 통보를 받았습니다. 한 남자를 잠시 생각하느라, 혹은 저울질하느라 머리가 아팠습니다. 그럴 땐 달달한 것이 좋아 신기하게도 제주도 감귤 초콜릿을 먹고 싶다고 이야기를 한 다음 날, 당선 소식이 왔습니다.

이제껏 시를 쓰며 시집갈 밑천은 없고 시집만 많은 별 볼 일 없는 여자가 될 뻔한 저에게 이렇게 시집이 많은 이유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그리고 얼마 전 밥은 해먹을 줄 아느냐며 칠 년 만에 꿈속에 나타나 걱정하던 아버지, 그리고 하나뿐인 남동생이 정말 기뻐할 것 같습니다. 학창시절 함께 공부했던 우석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분과동아리 '시륜' 동인들과 교수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지금은 무너진 삼례역의 무지개, 온천은 없는데 온천역만 남은 신길온천역 찢어질 듯 붉은 서쪽 하늘, 안양시 귀인동 922번지 옥상, 역곡역 하늘을 쓰는 이름 모를 나무에게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언제나 세상의 남은 절반이 되어 남은 절반은 가득 울리는 시를 쓰겠습니다.

▷1983년 인천 출생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시 심사평/김규린 시인] 가볍지 않은 삶의 무게 녹아들어

누군가 혼신을 드러낸 작품에 대하여, 타인이 전혀 다른 주관적 잣대로 평가하는 일은 조심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작품을 읽기 전에 작품 속의 사람을 읽어야 하며, 그가 겪은 체험의 변용을 진지하게 탐색해야 한다는 것. 그러므로 이러한 일에는 책임이 따른다. 나는 그 책임을 가능한 한 무겁게 지기 위해, 그리하여 그 결과를 즐겁게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였다.

최종심은 '안정적인 작품을 가려낼 것인가, 불안정한 작품을 한 번 믿어볼 것인가'라는 두 가지 화두의 팽팽한 갈등 속에 이뤄졌다. 예심을 거쳐 최종심에 올라온 작품은 송지은의 '마늘밭 유훈2', 문귀숙의 '어탁', 강동완의 '눈먼 꽃', 조율의 '적도' 등 모두 4편이었다.

'마늘밭 유훈2'와 '어탁'의 장점은 안정감이었다. 주제가 따뜻하고 형식적인 면에서도 꽤 숙련된 솜씨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안정감은 익숙한 리듬과 익숙한 시 전개 방식이라는 측면에서 진부함을 느끼게 하였다. 반면 '눈먼 꽃'은 지나치게 수다스러웠다. 행의 길이도 길어서 산문시의 느낌을 주었는데, 다행히 문장에서만은 성실함이 엿보였다. 그의 성실성을 향해, 수다스러울수록 명료하게 견지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숙고하기를 당부하고 싶다.

고심 끝에 당선작으로 고른 작품은 조율의 '적도'이다. 이 작품은 앞서 언급한 '불안정한 작품'의 경우이다. 그런데도 이 작품을 선택한 것은, 최종심에 오른 작품들 중 가장 불안정하지만 가장 매력적인 가능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무거움과 가벼움의 산뜻한 교차와 조화, 그 속에 투영된 결코 가볍지 않은 삶의 무게가 시의 불안정함을 상쇄해 주었다.

불필요한 사족, 남발되는 의문사는 물론, 행구분도 그리 전략적이거나 타당성 있어 보이진 않았다. 그러나 눅눅한 근로계약서와 달동네를 읽어내는 그의 '옥탑방 평상의 꿈'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의 시는 가볍다. 그러나 단지 가볍지만은 않다. 차별화된 가벼움을 그의 장점으로 승화시켜 나갈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소설 당선소감] 박명규 "그칠 줄 모르는 어머니의 기도"

치매를 앓기 전에 어머님은 교회에 다니셨습니다. 당시 어머님의 기도 대부분은 자식들 잘되라는 것들뿐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장남인 저에 대한 기도가 주를 이루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작가가 되게 해달라는 거였습니다.

그칠 줄 모르는 어머님의 그 기도는 제가 글쓰기를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문득문득 어머님의 기도를 듣게 될 때면 막연하게나마 언젠가는 꼭 소설을 쓰리라 마음을 다잡곤 했습니다.

전화로 누나에게 당선 소식을 전해주던 날, 어머님은 불자인 누나를 따라 절에 다녀오셨다고 합니다. 거기서도 어머님은 희미하게 꺼져가는 기억력을 부여잡듯이 아들의 작가 꿈을 이루게 해달라고 빌곤하더랍니다. 교회인지 절인지 구분을 잘 못 하시는 어머님의 기도는 하나님과 부처님을 초월한 어떤 본능적인 모성애의 발로가 아니었을까요.

겨우 삼십 분의 기억력으로 지난한 삶을 버텨내시는 어머님은 이제 당신의 바람대로 소설가로 등단한 아들을 오래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금방 다 잊고는 하루에도 수십 번 되물을 겁니다. "우리 큰아들이 뭐가 됐다고 하던데?" 전 그때마다 귀까지 어두워 듣지도 못하시는 어머님의 귀에 대고 큰소리로 외칠 겁니다. "작가요, 어머니!"

당선 소식에 저보다 더 행복해했던 가족들과 아주대 국문과 사람들, 고향 친구들, 젊은 시절 충무로에서 함께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었던 지인들, 그리고 이 소설의 처음과 마지막을 지켜본 영미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끝으로 저의 어머님의 기도를 현실로 만들어주신 한라일보사와 심사위원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더욱 열심히 쓰겠습니다.

▷1966년 경기도 화성 출생 ▷아주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소설 심사평/현기영 소설가] 추리 수법의 치밀한 플롯이 돋보여

어떤 것이 좋은 소설일까? 남다른 소재를 남다른 발성법으로 형상화한 것이 좋은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의 응모작들은 양적으로 풍성했음에도, 그에 상응할 만한 질적 수준의 작품들은 극히 소수였다.

우선 소재 선택에서 실패하고 있다. 소재 선택이 일상이나 평범한 사건의 테두리를 못 벗어난 경우가 너무 많다. 이야기도 평범하고 말솜씨도 평범하다. 평범한 일상의 영역이 아닌 곳에서 소재를 구하려는 탐구의 열정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물론 평범한 일상일지라도 그것에서 새로운 의미, 새로운 해석을 발견해낸다면, 남다른 새로운 소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최종 심사 대상 작품으로 '상엿집이 있던 자리'와 '305호'를 뽑았는데, 둘 다 꽤 높은 질적 수준을 확보하고 있어서 얼핏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다. 두 작품을 다시 정독하면서, 숙고한 끝에 전자를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상엿집이 있던 자리'는 시종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추리 수법의 치밀한 플롯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야성적 성품의 두 사내가 벌이는 치열한 경쟁 모습이 볼 만한데, 특히 석기의 인물 형상화가 인상적이다. 당선을 축하한다.

비록 최종 선택에서 밀리긴 했지만, 현재와 과거의 시점을 능숙하게 처리하면서 애조 띤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305호'에게도 뜨거운 격려의 말을 전한다.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8267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