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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하게 삽시다]재일교포 2세 뮤지션 양방언
내 아픔을 토닥여준 것은 바로 음악이었다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입력 : 2012. 03.2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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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 중엔 일본내 차별로 도망치기도 해
내가 그렇지 않았던 건 음악이 있었기 때문이다"


양방언(52·사진)은 스스로 자신을 '경계인'이라고 했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가로놓인 그의 삶은 때론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일까? 오랜만에 제주를 찾은 그는 "제약 없이 음악을 하고 싶다"고 했다. 동서양을 오가며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그의 음악 세계는, 어쩌면 그 경계를 뛰어넘기 위한 시도가 아닌가 생각했다.

그의 고향은 일본 도쿄에 위치한 아라카와구. 이곳은 인구 19만 명 중 700명이 재일동포들인데, 그 중 제주출신이 95%이다. 제주에서 건너온 아버지와 신의주 출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이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일본에서 조선적(籍)으로 사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의사인 아버지 덕에 경제적 어려움은 덜했지만, 재일교포에 꽂히는 시선은 냉담했다. "한 학급 친구가 '왜 조선인과 함께 공부를 해야 하는가'라는 내용의 글을 학급신문에 실은 적이 있습니다. 놀랍고 충격적이었죠."

당시의 경험은 마음을 헤집어 놓았지만 피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가까이 한 그는 피아노를 치며 안정을 찾았고, 팝이나 록을 이야깃거리 삼아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그는 "재일교포 중에선 일본 내 차별로 인해 도망치는 사람도 있다"며 "내가 그렇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음악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의사가 되기를 바랐지만 음악을 놓을 수는 없었다. 국경, 인종 등 모든 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음악의 매력에 푹 빠진 그였다.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1년간 의사로서의 삶을 살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음악을 하기 위해 가출까지 했습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저를 용서하지 않았죠.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그는 소위 잘나가는 뮤지션이다. 아시아를 넘어 영국, 독일 등 유럽에서 작곡가, 연주가, 편곡가, 프로듀서로 활동 중이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공식음악 '프런티어(Frontier)'를 작곡했으며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 KBS 다큐멘터리 '차마고도'의 음악을 맡았다. 음악이 존재하는 모든 분야로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음악은 저에게 기쁨과 힘을 주었습니다. 제가 만든 음악도 다른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게 제가 음악을 하는 이유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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