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아이는 언제 어른이 될까? 만18세, 주민등록증이 발급 되기도 한참 전에 이미 ‘어른스럽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아이들의 얼굴을 기억한다. 영화 속에서, 소설 속에서 많이 보아왔고 종종 현실에서도 그 얼굴들과 마주하며 당혹스러운 아름다움과 약간의 공포를 느꼈었다. 세상의 비밀을 타인의 가르침 없이도 터득한 표정이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러운 동시에 신비할 정도로 요동이 없었기에 그 앞에서 그저 정지한 채로 머무를 수 밖에 없었다.
태어난 순간을 목격했던 첫 조카는 어느새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다. 안고 업고 천천히 같이 걸어왔던 그 아이가 어느새 성큼 앞서 달려 나가는 걸 보게 되었고 존대말로 자신의 할 말을 찬찬히 고르는 그의 순간을 기다리면서는 문득 그의 미래 어디쯤을 가늠해 보곤 한다. 내가 알던 그 아이는 이제 닿을 수 없을 만큼 멀리 가는 것만 같다.. 그것은 우리가 나눈 유년의 순간과의 이별이기도 하고 어른이라는 세계로 불쑥 들어와 낯선 조우를 하게 될 우리의 관계를 재정의 하는 환대의 준비이기도 하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의 영화 <르누아르>는 11살 후키의 세계를 들여다 보는 영화다. 아픈 아빠와 바쁜 엄마 사이 웃자라는 일이 범상한 소녀는 내가 죽은 뒤 남겨진 사람들의 모습을 작문 숙제로 써낼 정도로 비범하지만 가족의 누구도 그의 남다른 성장의 속도를 바라봐 줄 여유가 없다. 그러다 보니 후키는 매일 혼자 자라난다. 충분한 햇빛과 넉넉한 영양 없이도 더듬이처럼 자신을 자라게 할 것들을 씩씩하게 탐하면서 쑥쑥. 누구의 도움 없이도 자란 아이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안경을 갖기 마련이다. 엄마가 감춘 것들과 아빠가 끌어안은 것들이 후키에 눈에 들어오고 자신의 단발머리와는 다른 친구의 땋은 머리에 깃든 애씀의 흔적들과 그 친구 집 보석함에 숨겨진 비밀들까지 후키는 성큼 발견해 낸다. 그러다 보니 후키는 어느새 어른이라는 상대가 가진 이상한 외로움과 지독한 흔들림까지도 목격하는 이가 되는데 이 대범한 모험가의 탐구생활은 이미 어른이 된 이들의 마음을 준비 없이 찌르곤 한다.
<르누아르>는 사건을 세세하게 설명하는 대신 후키가 머무르는 시간들을 차곡차곡 쌓아 나가는 방식을 선택한 영화다. 왜 아빠는 아프고 엄마는 외로운지, 타인의 시간들은 어찌 그리 무너짐의 방식으로 유지되고 있는지, 낯선 이들과의 소통은 왜 이렇게 쉽고도 불안한지, 죽음은 왜 삶 곁에서 머무르며 이별은 언제까지 이어지는 순간인지 영화는 일일이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후키가 그 시간과 공간들을 성큼 경험하고 종종 멈춰 서고 다시 삶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보여준다. 아이는 언제 어른이 되는가? 라는 물음에 대답할 이는 오직 그 자신 뿐일 것이고 그 대답은 꽤 긴 시간 동안 유예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른이라는 이상한 세계는 터널 끝에 있지 않음을 어른의 터널에 갇힌 이들은 알고 있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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