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국가보훈부가 제66주년 4·19혁명을 계기로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4·19혁명유공자를 선정한 가운데 당시 서울대학교 약대 시위를 주도한 제주출신 김한주 제주4·19기념회장(88)이 유공자 선정과 함께 이재명 대통령으로부터 건국포장을 받았다.
이 대통령은 19일 서울 강북구에 위치한 4·19혁명 기념식에서 4·19혁명을 주도하고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70명에게 건국포장을 수여했다. 이번 4·19혁명 유공자 포상은 이재명 정부 첫 포상이다.
4·19 혁명이 일어난 지 66년 만에 건국포장을 수여하며 국가유공자로 선정된 김 회장은 이날 한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함께 어깨를 맞대고 서울대 약대 교문을 나섰던 70여 명의 동기생 중 첫 유공자 선정"이라며 "동기생 모두에게 이 영광을 돌리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4·19 혁명 당시 그는 서울대 약대 졸업을 앞둔 4학년 학생이었다. 지금도 그날의 기억은 사진을 찍어둔 것처럼 생생하게 남아있다.
"당시 시위는 3·15 부정선거로 촉발됐지요. 이걸 바로잡아야 한다며 서울대 연건동 약대 건물에서 실험복인 흰 가운을 입은 채로 70여 명이 거리로 나갔습니다. 흰 가운을 입으면 경찰의 제지도 덜 받을 거라고 생각했고, 위급한 환자가 생기면 처치하는데 나서려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흰 가운을 입은 학생들의 시위 모습은 당시 한 언론사의 카메라에 잡혀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약대생이 아닌 의대생으로 잘못 알려지면서 유공자 선정까지 66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해당 기사를 보도한 언론사가 2017년 김 회장과 인터뷰를 진행했고, 이후 정정보도를 내면서 재검토가 시작됐지만 그래도 10년의 세월이 더 흘렀다.
4·19 당시 그는 학생들이 경무대(당시 대통령 관저)로 진입을 시도할 때 경찰이 발포하자 모두가 놀라 엎드리는 바람에 밑에 깔리면서 부상을 입었다. 그 부상이 복막염으로 진행돼 병원 수술까지 받았다. 당시 중앙대학교를 다니던 제주출신 후배가 그에게 제주도로 내려가 도민들에게 4·19의 참혹한 상황을 알리고 집회를 열자고 제안했지만 함께 하지 못한 것도 그 부상 탓이다. 그 후배가 고 강영석 전 제주4·19기념회장이다.
제주에서는 4·19 혁명 유공자로 김 회장 이전에 강 전 회장과 강경선(당시 서울대 재학), 양영식(당시 고려대 재학·전 통일부 차관)가 유공자로 선정됐다. 김 회장이 네 번째 유공자다. 제주4·19기념회의 노력으로 제주시 연동에 4·19 기념탑이 세워졌다.
김 회장은 "제가 회장직을 이어받고도 서훈을 받지 못한 상태여서 4·19기념회 이름에 '혁명'을 붙이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서훈을 받게 된 만큼 기념회를 4·19혁명기념회로 바꿀 수 있게 됐다"며 웃었다.
우리 헌법은 전문(前文)에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4·19 정신은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을 때마다 나라를 바로 세운 이정표로서 역할을 해왔다.
김 회장은 "헌법에 담긴 4·19혁명의 정신은 자유와 정의, 그리고 책임 있는 시민정신이라고 생각한다"며 "민주주의는 한 번 이뤄졌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지켜나가야 할 가치"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깨어 있는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작은 정의를 실천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법과 원칙을 지켜갈 때 비로소 굳건해질 수 있다"며 "역사 속 희생과 의미를 잊지 않고 이어갈 때, 4·19의 정신은 앞으로도 계속 살아숨쉴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조부로부터 3대째 이어져 온 한약 조제 중심 인수당건재약국을 이어받아 88세인 지금도 제주시 중앙로터리 인근에서 약국을 운영 중이다. 그는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뭉쳤던 동기생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먼저 떠난 동지들에게 영광을 돌리며 앞으로도 그날의 정신을 잊지 않고, 지역사회와 이웃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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