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출근길에 차창 밖을 스쳐 지나가는 가로수가 갈색 물감에 물들어 간다. 가로수에 달린 이파리들은 한 해를 지나는 동안 연둣빛 물감 위에 초록빛 물감을 덧바르며 선명함을 과시했다. 2025년 한 달 반의 마지막 여유를 두고 옷깃이 여며지는 아침, 쌀쌀한 바람과 함께 이제야 가을이 지나가고 있음을 체감한다. 종착을 달려가는 달력을 보며 아쉬움과 기대가 겹친다.
가을에 대한 이런 느낌은 나 혼자만 품어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연말이 다음 해를 위한 정리와 시작의 출발점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상심의 시간으로 고통을 감내하는 터널이 되기도 한다. 저마다 처한 자리에서 생활과 신념에 대한 반성과 기대, 두려움과 확신들이 섞인 미묘한 감정으로 다음 해를 맞이한다.
이런 인간의 보편적 감정은 수 세기를 걸쳐 흘러온 지금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문화로 누적되고, 발전의 동인이 되고, 역사가 됐다. 어떻게 다음을 준비했느냐에 따라 역사의 평가가 달라지듯 방향타는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에 더 신중하게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323년 전, 1702년 3월에 이형상 목사는 제주에 도임했다. 그는 중앙의 통제가 제대로 미치지 못했던 제주에서 통치 방향을 잡고자 제주 전역을 순시한다. 일정은 10월 29일부터 11월 19일까지로 이맘때이다. 쌀쌀해진 체감온도를 느끼며 제주 곳곳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었을 것이다.
그가 직접 확인해 살펴본 것은 고을의 방어 실태와 병역의 현황, 백성의 삶과 제주만의 특이한 풍속, 그리고 명승들이다. 그 내용을 그림과 글로 남겨 첩(帖)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국가유산 보물 '탐라순력도'이다.
순력은 15개월 간의 재임 기간 내내 유교적 지방 통치 체제를 이행하는데 바탕이 됐다. 그는 삼읍(三邑)의 성묘(聖廟)를 수리하고, 명성 있는 선비들로 해금 백성들에게 글을 가르치게 했다. 고양부 삼성의 사당을 세우고, 동성혼인 풍속도 금지했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당오백 절오백 철폐를 통해 유교를 권장했고, 나체로 잠수하는 해녀들에게 해녀복을 제작해 착용시켰다.
결국 목민관으로서 직접 확인하면서 펼친 치적은 당시 백성들에게 많은 교화가 됐고, 이 밖에도 '탐라장계초', '남환박물' 외에 관련 자료에서 제주의 형상을 기록으로 남겨 지금까지 제주 역사의 중심에 있다.
요즘 언론보도를 보면 내년 지방선거가 있음을 실감한다. 공약 이행 여부라든가, 지원 사항, 지역구 분구에 대한 기대와 정치인들의 행보 등이 하루도 빠짐없이 나온다. 지역에서도 내년에는 경제가 풀려 일자리로 파급되기를 기대한다. 각 분야에서 다양한 요구도 많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나름의 희망일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 정치인은 각각의 요구에 대한 밑그림을 준비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희망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이형상 목사의 준비된 밑그림처럼 요구해 보는 것은 어떨까. <오수정 제주여성가족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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