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화열의 목요담론] 육지의 속도와 제주의 온도 사이에서

[최화열의 목요담론] 육지의 속도와 제주의 온도 사이에서
  • 입력 : 2026. 01.29(목) 01:00
  • 김미림 기자 kimmirim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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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육지에서 살다 제주로 갔고, 다시 육지로 돌아왔다. 많은 이들이 묻는다. 어디가 더 좋았느냐고. 그러나 그 질문은 늘 어딘가 어긋나 있다. 육지와 제주는 '좋고 나쁨'으로 비교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서로 다른 속도와 온도를 가진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 차이는 한곳에 오래 머물러서가 아니라, 두 곳을 모두 떠나보고 나서야 비로소 선명해진다.

육지에서의 삶은 빠르다. 일정은 분 단위로 쪼개지고, 결과는 즉시 요구된다. 성실함은 곧 신속함이었고, 기다림은 비효율로 여겨졌다. 나 역시 그런 리듬에 익숙했다. 그 속도에 맞춰 움직이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 같았고, 멈추는 순간 불안해졌다. 속도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처럼 느껴졌다.

제주로 갔을 때 가장 낯설었던 것은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그 시간을 대하는 태도였다. 약속은 조금 느슨했고, 일은 종종 미뤄졌다. 바람이 불면 계획은 수정됐고, 비가 오면 그날의 일정은 자연스럽게 접혔다. 처음에는 답답했다. 육지의 속도로 재단하면 제주에서는 많은 것이 '늦고', '덜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제주에서의 시간은 느린 대신 따뜻했다. 사람들은 결과보다 과정을 묻고, 사정이 생기면 이유를 설명하기보다 이해부터 건넸다. 급히 결론을 내리지 않아도 괜찮았고, 당장 답이 없어도 문제 삼지 않았다. 제주의 삶은 속도를 낮추는 대신, 삶의 온도를 유지하는 방식에 가까웠다. 그 온도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람의 태도와 말투, 기다림 속에 분명히 스며 있었다.

다시 육지로 돌아왔을 때, 나는 익숙한 속도에 곧바로 적응했다. 일정은 촘촘해졌고, 일은 빠르게 처리됐다. 생활 인프라는 안정적이었고, 선택지는 분명했다. 각종 정보는 예측 가능했고, 노력은 비교적 정직하게 결과로 돌아왔다. 육지의 속도는 여전히 효율적이며, 그 효율은 삶의 만족도를 분명히 높여준다. 돌아온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도 그 속도 속에서 종종 숨이 가빠졌다. 제주에서 배운 느슨함과 여백이 육지에서는 사치처럼 느껴졌고, 그 부재가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기다림이 허용되지 않고, 사정은 설명이 필요하며, 멈춤은 곧 지연이 되는 풍경 속에서 삶은 다시 차가운 긴장 위에 놓였다. 그 차이를 실감한 것은 제주에 있을 때가 아니라, 제주를 떠난 뒤였다.

제주는 떠나보내야 비로소 그 온도가 기억되는 곳이고, 육지는 다시 살아봐야 그 속도의 의미를 새삼 자각하게 되는 곳이다. 두 세계를 오간 지금, 나는 어느 한쪽만을 선택하지 않는다. 빠르게 살아야 할 때와 천천히 머물러야 할 때를 구분하는 감각, 그것이 제주가 남긴 가장 큰 변화다. 육지로 돌아온 지금도, 내 삶 어딘가에는 여전히 제주의 온도가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온도 덕분에, 나는 오늘도 육지의 속도를 조금은 덜 조급하게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최화열 평택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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