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알츠하이머병은 더 이상 치매 증상이 나타난 이후에만 진단되는 질환이 아니다. 최근 20여 년간 신경영상 기술과 생물학적 표지자 연구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질병을 인식하는 시점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과거에는 기억력 저하와 일상생활 기능의 손상이 뚜렷이 나타나야 비로소 알츠하이머치매로 진단했지만, 이제는 베타 아밀로이드 침착, 타우 단백질의 인산화, 신경변성 등 생물학적 이상이 확인되는 시점부터 알츠하이머병으로 진단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경도인지장애 개념 역시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원래 경도인지장애는 정상적인 노화 과정과 치매 사이의 중간 단계로 정의되는데, 이는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도 기억력, 언어 능력 등 특정 인지 기능의 저하가 나타나는 상태를 의미한다. 2023년 우리나라 치매역학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경도인지장애 유병률은 28.4%로, 노인 4명 중 1명 이상이 경도인지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최근 생물학적 진단 기준의 도입으로 알츠하이머병 연속선상에서 경도인지장애의 의미가 훨씬 명확해졌다. 생물학적 진단을 적용한 결과, 경도인지장애 환자의 38.1%에서 이미 알츠하이머병의 병리적 변화가 확인됐다. 경도인지장애는 이러한 초기 병리 변화를 임상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중요한 시점이다.
2024년에 발표된 새로운 알츠하이머병 연구 진단 기준에 따르면, 질병의 핵심 병리를 반영하는 표지자로 아밀로이드 베타의 축적 또는 p-tau217을 포함한 혈액 기반 인산화 타우만으로도 생물학적으로 알츠하이머병을 정의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인지기능 저하가 나타난 경도인지장애 시점은 단순한 경계 상태가 아니라, 병리적 변화가 임상 증상으로 가시화되는 전환 구간, 즉 질병의 임상 발현기에 해당한다. 임상적으로도 경도인지장애는 치매로의 진행 위험이 높다. 여러 장기 추적 연구에 따르면 경도인지장애 환자의 약 10~15%가 매년 알츠하이머형 치매로 전환되며, 특히 아밀로이드 양성 경도인지장애의 경우 3년 내 절반 이상이 치매로 발전한다. 따라서 경도인지장애 단계는 조기 진단과 치료개입의 골든타임으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 개발된 항아밀로이드 항체 치료제는 이러한 시기적 인식 변화를 더욱 강화시켰다. 이 약물들은 증상이 심화된 치매 단계보다는 오히려 경도인지장애 또는 초기 알츠하이머병 환자에서 더 큰 치료효과를 보인다.
경도인지장애는 치매의 시작점이 아니라 치매 임상증상의 발현점이다. 생물학적 진단의 관점에서 경도인지장애는 질병의 흐름을 나누는 중간 단계가 아니라, 알츠하이머병이 서서히 진행되는 연속적인 과정 중 하나로 이해된다. 따라서 앞으로의 임상에서는 단순히 인지검사 결과만으로 평가하기보다는, 생물학적 표지자에 근거한 정밀한 분석을 통해 개인의 질병 단계와 위험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박준혁 제주특별자치도 광역치매센터장>
■기사제보▷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