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을사년의 가을이 가고 있다. 겨울이 드는 입동이 엊그제 지났다. 올여름은 열대야, 가뭄과 잦은 비로 위세가 대단했다. 그 맹위가 사그라들고, 며칠 선선한 날씨에 가을이 왔다 싶더니 갑자기 추워지고 어느새 12월이 코앞이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잠시 심중 소회를 풀어 본다. 입동은 24절기 중 열아홉 번째다. 절기 스물넷을 하루에 비유해 보면 입동은 오후 일곱 시다. 이 시간은 보통 사람들이 일과를 마무리하고 휴식과 안식을 찾을 때다. 하루를 돌아보며 보람을 누리고 희망을 품어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이 시점에서 올해 겪는 나날을 살펴보니 을사년이 이름값을 하는지 그 기후와 세상사가 만만치 않다.
철은 흠이 없는데 이를 두고 철없다고 트집을 잡는 사람들이 있다. 여름이 미쳤다, 가을이 사라지고 있다, 기상 이변은 우리가 자초하고 있다 등의 얘기를 한다. 그런데 철은 밤과 낮이 오가는 것처럼 엄정하다. 4계절과 24절기는 지구에서 보는 태양의 위치를 기준으로 한다. 계절과 그에 따른 기후가 순서상 서로 뒤바뀌거나 넘나들 수가 없다. 그저 철이 동반하는 날씨가 기간이나 정도 면에서 크고 작은 차이를 보일 뿐이다.
요즘 일부 사회에서 철없는 행태들을 보게 된다. 각종 횡포가 난무하고 세상이 어지럽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홀로 느끼기에 그 다사다난함이 120년 전의 '을씨년'을 방불케 한다. 그때 횡행했을 듯한 황량함이 뇌리에 박힌다. 정의는 고사하고 원리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 불문율이나 관례는 차치하고 성문화된 법조차 무시되고 있다. 이게 끝나거나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그 주역들은 인간사 모두가 천리에 따라야 함을 잘 모르는 듯하다. 민심이 천심이라 했다. 저들은 '국민의 뜻'을 받드노라고 하는데, 필자는 그 국민 안에 드는 경우가 드물어서 아쉽다. 일찍이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 싶은 바가 있어도 제 뜻을 나타내지 못하는 사람이 많음'을 안타까이 여기셨던 성군의 어심을 저들은 조금이라도 헤아리고 있을까.
이제 상식이 통하는 평안한 세상을 보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쉬고 있을 때도, 어딘가에서 막중한 일에 묵묵히 충실하게 임하는 사람들이 더 있다. 진정한 성세는 늘 이런 충직한 시민들이 소리 없이 이루고 지키는 법이다. 한편, 온갖 요설로 혹세무민하는 이기적이고 파렴치한 부류들이 있다. 이들은 국리민복을 떠들지만 실제로는 그 동조자들과 함께 이 시대에 영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착한 시민들에게 상처와 아픔을 준다. 텔레비전에서 뉴스를 보지 않은 지 오래됐다거나, 아침에 신문을 읽으면 온종일 기분을 그르치게 된다는 사람들이 꽤 있다. 첫눈을 본다는 소설이 열흘 앞에 와 있다. 1월부터 12월까지를 하루로 놓고 셈해보니 11월 12일, 오늘은 저녁 9시 48분이다. 보금자리가 제구실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올겨울은 세상이 좀 잠잠하고, 포근하면 좋겠다. <이종실 제주문화원 부원장, 수필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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