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급종합병원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제주대학교병원(왼쪽)과 제주한라병원.
[한라일보] 중증질환을 전문 치료하는 상급종합병원(이하 상종병원) 설립은 제주 의료계의 오랜 숙원이다. 그동안 제주는 서울 진료권역에 묶여 있어 도내 의료기관이 상종병원이 되려면 같은 권역에 있는 서울대학교병원 등 국내 대형병원과 경쟁해야 해 지정 가능성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 제주를 독립권역으로 분리해야 한다는 정부 용역 결과가 나오면서 상종병원 설립에 청신호가 켜졌다.
제주에 상종병원이 생기면 제주의 의료 체계는 일대 변화를 맞는다. 상종병원은 암 등 난치성 질환을 전문 치료하는 3차 의료기관을 말한다. 지역의료 전달 체계는 동네의원급인 1차 병원과 일반 종합병원급인 2차 병원, 중증질환자를 전담하는 300병상 이상의 3차 병원 등 각 단계별 의료기관이 제 역할을 할 때 완성된다. 그러나 제주에는 상종병원이 없어 도내 의료 수요를 지역 내에서 모두 해결하지 못한다. 전국 17개 시도 중 상종병원이 없는 곳은 제주를 포함해 3곳에 불과하다.
일각에서는 현재 도내 상종병원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제주대병원과 한라병원 중 한 곳이 앞으로 상종병원으로 승격되면 해당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는 게 더 힘들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환자들이 상종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려면 일반 병의원이 발급한 진료의뢰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진료의뢰서가 없으면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또 진료의뢰서가 있더라도 상종병원에서 외래 진료를 받으면 의료비의 60%를 본인부담금으로 내야 한다.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에 따라 본인부담금 비율은 의원 30%, 병원 40%, 종합병원 50%, 상급종합병원 60%로 정해져 있다.
그러나 의료계는 상종병원이 지역 내에 없으면 중증환자와 경증환자 가릴 것 없이 전부 2차 병원 등에 몰리기 때문에 상태가 위중한 환자들이 제 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등 부작용이 더 크다고 지적한다.
또 막대한 의료비 유출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지난 2022년 서울의 상종병원 등 다른 지역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제주도민은 14만여 명으로, 이들이 지출한 순수 의료비만 2300여 억원에 달했다. 이는 눈에 보이는 통계 수치일 뿐 실제 원정진료에 소요되는 비용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섬 지역 특성상 다른 지역에서 진료받으려면 비행기나 배를 타고 가야 하고, 진료 시간을 맞추려 숙박을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또 의료계는 당장 상종병원이 생긴다고 해서 그동안 도내에서 불가능했던 폐·심장 이식 등 최상위 난이도 시술이 하루아침에 가능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상종병원은 더 높은 의료수가를 인정받기 때문에 이를 토대로 장비 확충과 우수 의료진를 유치할 수 있어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상종병원 지정뿐만 아니라 상종병원을 장기적으로 육성해 도내 모든 의료 수요를 지역 내에서 해결할 수 있게 기반을 다지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우정 제주대학교병원 부원장은 "상종병원 설립은 지역 완결형 의료 전달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최소한의 선결 조건"이라며 "지금도 국내 난치성 질환의 약 10%는 '서울의 빅5 상종병원'에 의존하고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선 각 지역별 상종병원들도 이런 시술이 가능하도록 육성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를 반영하듯 전 정부와 달리 현 정부 공약에는 상종병원 지정뿐만 아니라 '육성'까지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또 상종병원이 새롭게 설립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종합병원들이 상종병원으로 승격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그동안 해당 의료기관이 담당하던 경증환자 등을 제대로 치료하려면 2차 병원들 육성도 함께 뒤따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상민기자
*이 기사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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