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중문과 관련한 내용이 거의 없었고 사람 이름도 틀렸더라. 한쪽 벽에 희생자들을 적은 뒤 그 한편에 촛불이 놓여 있는 지하 추모 공간은 더 심했다. 최소한의 성의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렇게 만들어서 제주4·3을 내건 기념관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싶었다."
얼마 전 서귀포시 중문동에 있는 중문4·3기념관을 찾았던 한 4·3연구자의 말이다. 그는 "왜 기념관이 이곳에 있어야 하는지를 고민한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도내 4·3유적지에 자리 잡은 4·3기념관들, 이대로 괜찮은 걸까.
▷개관 1년여 만에 5000만원 들여 보강 예정=제주도의 '4·3유적지 종합 관리 계획' 등에 의해 조성된 4·3기념관은 4개소다. 너븐숭이 4·3기념관(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2009년 3월 개관), 주정공장수용소 4·3역사관(제주시 건입동, 2023년 3월), 중문4·3기념관(중문동, 2024년 3월), 제주예비검속 백조일손역사관(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2024년 8월)이 차례로 문을 열었다. 공사비는 너븐숭이기념관 16억4000만원, 주정공장수용소역사관 49억8000만원, 중문기념관 10억2000만원, 백조일손역사관 12억4000만원 등 모두 합쳐 약 90억원에 달한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에 위탁 운영 중인 이들 기념관은 역사 현장을 미래 세대에 전승하려는 취지로 4·3유적지에 들어섰다. 4·3을 다룬 장편 '작별하지 않는다'를 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해외에서도 4·3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최근엔 4·3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로 4·3의 세계화에 탄력이 붙으면서 유적지 기념관들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하지만 중문기념관에서 보듯 건물만 번듯하고 콘텐츠는 부실한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유적지의 사연이 다른 만큼 기념관마다 그 내용을 반영해 전시물을 구성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평면적인 패널들을 나열하는 방식으론 방문객들의 눈높이를 맞출 수도 없고, 감동을 전할 수도 없는데도 지난 1년여 동안 그 상태로 운영됐다. 결국 제주도는 4·3 단체 등의 의견 수렴 결과에 따라 5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올해 안에 중문기념관 전시물을 보강하기로 했다.

제주예비검속 백조일손역사관. 부서진 백조일손지지 비석 등이 전시되어 있다. 진선희기자
▷정기적 전시 자료 업데이트 등 운영 내실화해야=백조일손역사관은 1960년대 파괴된 '백조일손지지' 비석 등 전시물이 입체적인 편이지만 다른 기념관들에 비해 접근성이 낮다. 대중교통편이 없는 데다 도로 입구에서 역사관으로 가려면 1km 정도를 이동해야 한다. 그럼에도 그 흔한 이정표 하나 없다. 과거에 세운 백조일손 묘역 안내판만 눈에 띈다.
거기다 전시 자료에 대한 이해를 도울 해설사가 배치되지 않는 날도 있다. 해설사 근무일이 자율적으로 정해지면서다. 백조일손역사관 측은 이에 대해 "사전에 예약을 하면 해설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전시장을 돌아보다 궁금증이 생기는 관람객들은 불편할 수 있다.
올해 제주도가 이들 4개 기념관에 배정한 운영비는 총 3억8000만원에 이른다. 올 하반기에는 너븐숭이기념관 전시물 교체를 추진하는 등 4·3공간에 해마다 투입하는 예산이 적지 않다.
6·3 조기 대선을 앞두고 제주도가 각 정당에 건의한 현안 과제(지역 공약)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제주4·3아카이브 기록관 건립'이 들어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경선 과정에서 제시한 제주 공약에도 '4·3 아카이브 기록관 건립'이 포함됐다. 4·3을 대표하는 시설인 제주4·3평화공원 4·3평화기념관 외에 4·3공간들이 늘고 있는데 활성화 방안은 제자리걸음이다. 이제는 정기적인 전시 자료 업데이트 등 체계적 운영으로 공간의 내실을 기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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