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묘왜변 제주엔 무슨 일이 있었나

을묘왜변 제주엔 무슨 일이 있었나
조선 건국 이래 최대 규모 왜구 침략, 을미왜변
제주연구원 22일 오후 1시 아스타호텔서 학술대회
  • 입력 : 2022. 09.20(화) 15:05
  • 고대로기자 bigroad@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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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연구원은 이달 22일 오후 1시 제주시 소재 아스타호텔에서 '을묘왜변과 지역사회 대응, 역사문화자원화'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조선 명종 10년 1555년에 일어난 을묘왜변은 영암 및 제주지역에서 발발하였는데, 조선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왜구 침략이었다. 1592년(선조25년)에 일어났던 임진왜란 이전 최대의 왜구 침략이었던 을묘왜변은 조선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음에도 그동안 역사교과서를 비롯하여 학계에서 제대로 조명될 기회를 갖지 못하였으며 도민사회에서도 제대로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명종실록(1555년 7월 7일)에는 '수성파적(守城破賊)'이라 하여 영암의 수성, 제주의 파적이라 기록하고 있는데, 1000여명의 왜구를 제주군민(軍民)들이 일당백 일체심으로 대응하여 적을 물리친 제주대첩은 당대 조선을 비롯하여 동아시아 평화 정착에 기여한 공이 크다.

제주 전투는 제주성을 사이에 두고 대규모 접전이 벌어졌는데, 만일 제주성이 함락되었다면 조선의 지원군이 파견되기 전에 왜구에 의한 제주민의 피해는 엄청났을 뿐만 아니라, 일본과 한반도 및 중국과 연결되는 해상 요충지 제주가 왜구 수중에 들어간다는 것은 당시 동북아시아 정세에 큰 지각 변동을 초래할 사안이었다.

특히 왜구에 대한 정확한 정보 및 중앙지원도 없는 상황에서 제주의 효용군 및 치마돌격대(馳馬突擊隊, 김성조, 김직손, 이희준, 문시봉) 등 제주 군민(軍民)들의 기개와 용기로 이룩한 제주대첩은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다"는 충무공 이순신의 정신처럼, 제주공동체의 기개와 일체심이 폭발하였던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수 있다.

이번 학술대회는 호남지역에서 을묘왜변을 연구하고 있는 연구진과 제주에서 을묘왜변을 연구하고 있는 연구진들이 모여, 을묘왜변 당시 지역사회의 대응과 이를 미래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역사문화자원화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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