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113)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113)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리
청보리 넘실거리는 섬속의 섬… 봄이 기다려지네
  • 입력 : 2016. 12.06(화) 00:00
  • 편집부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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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마라도에서 산방산까지 바라본 파노라마 풍경(위)과 상동에서 하동으로 가는 농로에서 만나는 섬의 정취(아래).

청보리로 인지도 높여… 축제기간 4만여명 방문
탄소제로섬·색깔있는 디자인섬 등 수식어도 다양
"가장 매력적인 유인도 되기 위해 마을주민 노력"



배를 타고 들어가는 아름다운 마을. 모슬포항에서 5.5㎞ 거리에 독특한 풍광을 자랑하는 가파도. 첫 인상은 평평하다. 집담과 밭담이 현무암 석질이 아니라 조면암계역이라 풍광 자체가 이색적이다. 섬 제주의 서남쪽 면을 병풍그림처럼 길게 펼쳐서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선착장에 내리면 방문객들이 끊임없이 드나드는 유명한 섬이 돼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섬 주변이 황금어장을 끼고 있어 최고의 낚시터로 각광 받는 곳이라 사시사철 낚시꾼들이 찾아든다. 가파도를 가장 분명하게 표현한 것은 가파초등학교 교가에서 발견한다. 일부를 퍼오면 '아침이면 붉은 해가 바다에서 뜨고 / 저녁에는 붉은 해가 바다에 지는 가파도는 남쪽 바다 외딴 섬이나 / 보이는 건 넓고 넓은 하늘과 바다 / 일 년 내내 바닷바람 세차게 불어 / 나무들도 크지 못하는 작은 섬이나' 이 노래가 섬 가득 울려 퍼지던 1980년대까지만 해도 800명이 넘는 주민들이 생업에 종사하던 섬마을이었다. 지금은 170명 안팎이다. 지금 현재 어업과 농업 종사 비율은 8:2 정도라고 한다.

송악산과 산방산이 보이는 가파도 선착장의 풍경.

앞에 붙은 수식어가 많은 섬이기도 하다. '가장 먼저 봄소식을 전해주는 청보리 섬.' 무엇보다도 청보리축제가 전국적 인지도를 높이고 올레꾼들과 관광객을 불러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 기간 동안에 4만명 이상이 가파리를 찾는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키 작은 섬.' 섬이라고 하면 우뚝 솟아 있는 무엇이 있을 것 같지만 특이하게도 가장 높은 곳이 해발 20.5m 정도라고 한다. 유인도 중에서 가장 낮고 평평한 섬이다. '탄소Zero섬(Caborn Free Island).' 전선지중화로 전봇대를 발견 할 수 없어서 자연그대로의 풍광을 즐길 수 있으며, 전기를 얻기 위해서 풍력발전과 태양광발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색깔 있는 디자인 섬.' 바다색과 청보리색, 붉은 송이 색의 조화, 가장 환상적인 모습은 슬레트지붕을 주황색계열로 통일성 있게 칠해서 바다색과 보색을 이루는 경관을 만든 것이다. 이렇듯 정책적으로 가파리를 더 큰 부가가치 보물섬이 되게 하기 위한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삶의 정서가 풍겨나는 소담하고 정겨운 취락구조 속 올레.

1986년 제주대학교 박물관팀에서 선돌, 조개무덤 등 선사유적을 발견했고 다음해에 밭갈이 작업 중에 2000년 전 돌도끼가 발견됐다. 이 섬에 사람이 살았었다는 증거다. 거석문화의 한 자락이 엄존했다는 사실. 선사시대에 섬 한바퀴를 도는데 길어야 2시간 밖에 되지 않는 곳에 모여 살았다는 것은 의문점 그대로 불가사의다. 박영복(82) 전노인회장에게서 가파리의 설촌 역사를 들을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 이 곳 가파도는 관가에서 진상용으로 마소를 키우던 방목장이었습니다. 문헌에 의하면 영조 26년(1750년) 목사 정언유가 진상을 위하여 가파도에 흑우장을 설치하고 흑우 50두를 방목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뒤로 마소를 키우는 섬으로 활용되다가 1840년에 영국 선박이 들어와 우마를 총으로 쏴서 잡아가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 사건 이후 폐장되었다가 같은 해 헌종8년(1842년)에 주민들의 입도를 허가하여 상모리에서 고부이씨, 하모리에서 경주김씨, 김해김씨, 진주강씨, 나주라씨 등 40여 가구가 이주해 오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습니다. 저의 할아버지 세대가 개척하기 시작한 농경지에서 불굴의 의지로 독특한 생활문화를 형성하며 살아온 것입니다. 조선 말엽 국운이 쇠약하니 일본인들이 잠수기선을 가지고 무작정 가파도에 들어와 수산물을 채취하고 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상륙하여 천막을 치고 일정기간 조업을 하다 가곤 했는데 '요무라시'라는 자가 농작물 소출이 열악해 삶이 곤궁한 것을 보고 일본으로 돌아가 다음 해에 고구마 종자를 가지고 와서 재배법을 전수해 주니 제주에서 가장 먼저 고구마 농사를 하게 된 역사가 있습니다." 유채농사와 개구리참외도 제주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곳이라고 했다. 그만큼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사람들의 섬.

진명환 이장

진명환(56) 이장이 설명하는 숙원사업과 당면과제는 이렇다. "2012년부터 제주특별자치도 차원에서 '아름다운 섬 만들기'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일본 아오시마섬을 모델로 다양한 구상을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제주의 5개 유인도 중 가장 매력적인 섬으로 만들기 위한 주민들의 의지가 있었기에 그 동안 수많은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생활불편과 같은 참기 힘든 일이 있었지만 묵묵하게 합심해 이룩한 성과들이 지금 보여지는 모습입니다. 그동안 인프라 확충에 집중하면서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해결과제는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방향으로 사업의 결실이 나야 진정한 의미의 마을사업 성과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풍력발전으로 생산된 전기가 있다면 주민들의 전기세 부담을 대폭으로 덜 수 있는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6차산업 마인드로 도정공장을 만들어서 가파도 청보리를 상품화 했습니다. 방문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중이고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가파도를 관광자원화 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사업들이 많습니다. 궁극적으로는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협동조합 형태의 마을기업으로 발전시켜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외부에 나가 있는 지역주민들이 돌아와 함께 일하며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갈 것입니다." 훼손시키지 않고 자연자원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노력으로 귀결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대단하다.

해녀들이 불을 쬐거나 탈의 공간으로 사용하던 불턱.

마을 주민들에게 100억이 있으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숙원사업을 물었다. 조동철(74) 마을회 총무님의 꿈이 가파도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었다. "큰 선박을 사서 마을회에서 운영하고 싶습니다. 농기계가 고장나서 대정읍에 고치러 가면 20만원 들어가는데 선박운임이 왕복 120만원 나오니 어떻게 합니까?" 이 주장에 이구동성으로 다리를 놔버리자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케이블카를 송악산에서 연결하자는 주장까지 30년뒤 가파도의 상상력은 선조들의 개척정신을 계승하고도 남으니, 섬의 높이는 낮으나 위상은 산방산보다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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