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아무리 하늬바람이 부는 날이라 하더라도 이 마을에 들어서면 어딘가 포근한 느낌을 준다. 분지 지역이 아님에도 마을에서 풍기는 따스한 온기가 좋다. 이유가 궁금해 마을 어르신들에게 여쭈어 봐도 빙그레 웃기만 하신다. 나름대로 하시는 말씀을 종합하면 조상들이 집을 짓고 길을 내며 정주 여건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어떤 안온함을 만들어내기 위한 무언의 노력이 모여서 그런 느낌을 얻게 된 것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추측. 물론 사람들의 인정보다 따스한 기운이 어디 있으랴.
대정읍에 속해 있지만 한경면 고산리가 더 가까운 마을이다. 읍사무소와의 거리가 14㎞. 대정읍 중심에서 북서쪽으로 끄트머리에 있다. 전해지는 설촌 연대는 대략 1750년 경이라고 한다. 지금의 신도2리는 1914년부터 1918년 어간에 토지측량 실시 과정에서 발생한 구분방식에 의해 구분 지어진 결과라고 한다. 마을공동체를 이루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있어서 어떤 명칭으로 분류된다는 것은 놀라운 역사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가능하다.

좌경진 신도2리장
마을 곳곳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발견한 놀라운 사실은 총 농경지가 101㏊라고 한다. 가호당 평균 1.2㏊라고 하는 숫자가 나온다. 밭부자들이 사는 마을이다. 1만평 이상 대농으로 분류되는 부농들 또한 수두룩하다. 마늘, 양파, 감자, 양채류를 중심으로 토질 좋은 밭에서 고수익 농업에 여념이 없다. 고수익이라고 하는 것이 밭이 크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부지런함'을 가장 큰 자산으로 가지고 있기에 가능하다는 생각.
해안경관이 아름답고 청정해 해양수산부 의 해양생물보고지구로 지정돼 있다. 이러한 평가를 받게 된 배경에는 참으로 귀감이 되는 마을 주민들의 굳은 의지가 숨어 있었다. 해안도로가 인접한 마을임에도 양어장이 한 곳도 없다는 사실. 불문율에 가까운 묵시적 규약은 바닷가를 있는 그대로 보존한다는 것. 얼마나 많은 제안과 유혹을 뿌리치고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바닷가를 있는 그대로 후손에게 물려주겠다는 의지는 해양수산부보다 돌고래들이 먼저 알아본다. 그런 마음가짐을 어떤 텔레파시를 통해 교감하는 모양인지 돌고래들이 가장 많이 뛰노는 바닷가로 알려지면서 일부러 돌고래를 보러 이 마을 바닷가를 찾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섬 제주의 서쪽 끝 해안도로 바닷가 중에서도 유독 신도2리 해변에 돌고래들이 자주 찾은 이유를 인터뷰하고 싶은 욕심이 생길 정도다. 마을 어르신께 여쭸더니 윗트 넘치는 대답을 하셨다. "쨔이덜토 알암실테주, 가두왕 키우잰 허는 사름덜 살지 아니허는 마을이랭 헌거" 마을의 상징으로 자리 잡아가는 돌고래들을 바라보면서 옳은 실천역량을 바다가 알아서 혜택을 주는 것이라 여기게 된다.
좌경진 이장에게 신도2리가 보유한 가장 큰 자긍심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후손을 먼저 생각하는 자세" 마을공동체가 전통적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는 무언의 규약과도 같다는 설명이다. 어떤 현안이나 난관이 닥쳐서 마을회의를 하면 바탕에 깔려 있는 주민의식은 '미래를 먼저 생각하자'라고 한다. 지속가능에 대한 투철한 추구의지다. 단순한 보존이 아니라 더욱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이 마을이 정신적 정체성 그대로 후손들의 풍요를 담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실천의지인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인해 급격한 사회변화에서 오는 외형적 난관들에 안타까워하는 상황이 있었다. 농어촌 풍경이 주는 안온한 이미지를 파괴하는 건물들이 들어서도 행정에서 하는 일이라 뭐라고 대응할 수도 없는 현실이기에 이장님의 주장에 설득력이 있었다. '일정한 크기 이상의 규모를 가진 신축 건물에 대한 경관심의에 마을 주민도 참여를 시켜 달라'는 것. 텃새로 배타성을 드러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조화로움을 함께 찾아 나서겠다는 의미다. 기계적인 행정 마인드가 아니라 마을 경관에 대한 지속가능성을 사명감으로 보유한 마을이기에 수용해 건강한 선례를 만든다면 신도2리 주민들의 마인드가 세상에 공헌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부농의 창고<수채화 79㎝×35㎝>
오후 5시가 넘어선 마을 안 풍경이다. 규모가 큰 농사를 많이 하는 주민들이 많아서일까 가장 보편적인 삶의 모습을 이 화면에 담았다. 정주공간 안에 있는 밭과 창고, 그리고 주변 정황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수평선 가까이 내려가는 햇살의 각도가 발생시킨 물상들의 색채변화다. 무미건조할 것 같은 평범한 풍광에 놀라운 변화와 회화적 깊이를 증폭시키는 매력적인 상황이 평이한 구도 속에서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오래돼서 탈색된 빨간 지붕과 벽, 철문의 색을 마늘밭이 보색대비를 이루면서 시각적 도드라짐을 발생시킨다. 왼쪽 모퉁이 길가에 서있는 작은 트럭이 누구의 것인 지 짐작이 갈 차광망으로 감싼 농업시설물과 기울어진 각도에서 비치는 노란 성향의 광선을 받은 밭의 색채 변화가 너무나도 정겨워 그리게 된 것이다.
어떤 경이로움에 대한 탐닉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작업은 모두에게 전달되는 시각적 행복인 것이다. 심지어 전봇대들마저도 너무도 자연스럽게 자기 자리를 지키며 조연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무엇이냐고 묻기에 앞서 어디에 자리 잡고 있느냐를 추구하는 풍경이 있다면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는 생각에 도달하게 하는 작업이다.
태양광선의 각도를 따지다 보니 이 마을이 보유한 일몰풍경이 으뜸인 이유가 그 베일을 벗게 된다. 어떤 종류의 빛을 받게 되느냐는 단순한 인상주의 미술사조의 관점이 결코 아니다. 이 마을 바닷가의 윤슬까지 포함된 오묘한 빛의 향연이기에. <시각예술가>
바닷가 도고리<연필소묘 79㎝×35㎝>
도고리는 제주어다. 돗도고리라고 하는 용어를 이해하지 않으면 이 풍경에 숨은 의미를 알지 못하기에 설명하면 이렇다. 제주사람들은 통시라고 하는 것을 만들어서 돼지를 집에서 키웠다. 그 돼지 밥그릇을 나무로 만들면 박살나기 십상이니 돌을 가지고 만들어서 아무리 큰 체급의 돼지라 할지라도 굴리거나 엎지르지 못하게 했다. 국물 있는 것을 주더라도 돌로 만들어진 그릇이라 새어나갈 걱정 또한 없다. 그러한 도고리의 기능과 형상을 닮은 신도2리 해변의 보물을 그렸다. 밀물이 되면 잠겼다가 썰물에는 이 거대한 돌그릇(도고리)에 바닷물이 그대로 남게 된다. 대략 20평 정도 되는 그릇에 담긴 것은 그냥 바닷물이 아니다. 마을공동체의 일체감까지 오롯이 저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지질학적으로 투뮬러스 해변지형을 보유하고 있는 보편적인 섬 제주의 바닷가 마을들이 많으나 이렇게 분명하게 어떤 그릇의 기능을 가지고서 밀물과 썰물을 번갈아 마시는 경우는 필자가 아는 한 이런 규모는 없다. 유일함이 가지는 소중한 가치 못지 않게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주관한 제3회 행복마을 만들기에서 신도2리가 금상을 수상하는 결정적인 공헌을 한 것이 이 도고리를 가지고 마을공동체 정신을 담은 스토리텔링 자원을 개발해 발표했다는 것이다. 거북이가 밀물 때에 도고리에 들어와 놀다가 썰물에 빠져나가지 못한 것을 발견한 순덕이가 살려서 보내줬다는 이야기 구조 속에 녹아 있는 마을사람들의 가치관과 문화가 저 도고리처럼 견고하게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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