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92) 제주시 한림읍 귀덕리

[양기훈의 제주마을 탐방](92) 제주시 한림읍 귀덕리
생명력 넘치는 '바람의 신' 영등할망 귀덕 바다로 오시네
  • 입력 : 2016. 07.05(화) 0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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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회관 옥상에서 바라본 귀덕초등학교와 바다 풍경(위). 포구 등대에서 안쪽으로 바라보면 평온한 느낌을 준다(아래).

대대로 반농반어 생활 풍부한 해산물·밭작물 생산
영등할망 신화공원 조성… 관광자원화 뒷받침 과제
궤물동산 북쪽 해안도로에 주말장터 개설 등 구상



거북등대가 있는 석천도가 자연방파제 역할을 해줬기에 배를 통한 육지와의 교류가 용이했던 마을. 그래서 영등할망이 들어오는 바닷가를 보유했다. 구비전승으로 이어지는 무속 신화의 속성으로 볼 때, 바다를 생존의 수단으로 삼는 어느 바닷가 마을인들 영등할망과 연관이 없을까만 석천촌으로 불리던 시기부터 막강한 영향력을 지녔기에 신화의 중심에 설 수 있었으리라. 매년 음력 2월 초하루는 하늘의 북녘 끝 영등나라에서 제주의 1만8000 빛깔의 바람을 움직이는 바람의 신, 천하의 생명을 바람으로 불어넣는 영등할망이 오시는 날이다. 영등할망은 마지막 꽃샘추위와 더불어 봄 꽃씨와 해산물의 씨를 가지고 섬 제주를 찾아오는데, 그 들어오는 길목은 귀덕리 바닷가 포구 '복덕개'를 통해서다. 영등올레라는 표현은 너무 정겹다. 신비로운 포구 귀덕 복덕개에서 예로부터 영등할망 맞이 당굿이 성대하게 치러져왔다. 새 봄의 시작을 알리는 생명력 넘치는 마을의 진가를 그냥 옛 무속문화 정도로 바라보기에는 안타까움이 크다. 관광 스토리텔링 자원으로 판단하면 제주의 보배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영등할망 신화공원 중심에 있는 영등하르방, 영등할망, 영등대황 석상(왼쪽부터).

제주섬을 대표하여 영등신을 맞이하던 역사적 영향력을 살필 수 있는 기록들이 많다. 1212년 제주에 현을 설치하면서 석경현(石鏡縣)이라 불렀다. 당시에는 니커리(四肢洞)와 중동(都舍洞) 지역에 규모 큰 집성촌이 형성되어 있었다고 전해온다. 고려시대 탐라의 번창지역이었기에 근래에도 마을 일대에서 옛 기와가 출토되고 있다. 원의 통치시기에 총관부가 있었던 지역이라는 설에서부터 1300년 고려 충렬왕 때 제주에 14현을 설치하면서 중국 중경지방의 지명을 따서 귀덕현(歸德縣)이라 이름지어 부른 것이 마을 명칭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한림읍의 가장 동쪽 마을. 금성천을 경계로 애월읍과 마주하고 있다. 오름이 없는 마을이다. 대신 완만하게 바다로 기울어진 평지가 모두 밭이다. 풍부한 농산물 수확지역이었기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대촌락을 이룰 수 있었으며 조상 대대로 출중한 인물을 배출시키는 자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풍부한 어장을 기반으로 반농반어의 생활을 대대로 이어내려 왔다. 조석현(80) 노인회장은 "세 개의 귀덕리로 나눠지기 전까지 밭이 1000개나 되는 마을"이라고 했다. 귀덕1리만 해도 경지면적이 1324ha에 밭이 383개다.

홍인성 이장

홍인성(73) 이장이 밝히는 귀덕리의 당면과제와 숙원 사업은 이렇다. "영등할망 신화공원을 마을 바닷가와 포구를 따라 석상들을 배치하여 오석에 설명문을 적어 넣었지만 당초 계획 단계에서 목표로 하는 관광자원화에 다가가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관광객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후속조치가 필요합니다. 석상들을 구경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마을 주민들이 해설사로 나서서 설명도 하고, 공연을 통해 영등올레의 진면목을 보여줘야 합니다. 함께 즐기며 이해하고 감동받을 수 있는 시설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입니다. 관광객의 입장과 시각에서 영등할망을 바라봐야 합니다. 풍부한 이야기 자원을 그냥 굿의 영역으로 묶어 둘 수는 없습니다. 귀덕리가 역사와 함께 해온 영등할망에 대한 애정을 관광객과 공유 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합니다. 투자된 예산이 성과를 내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공원 형태만 가지고는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공연장이 있어야 합니다. 공원의 품위를 살리면서 마을 주민들이 농외소득으로 관광산업에 뛰어들 수 있는 활로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불만의 핵심은 주민 참여를 바탕으로 하는 영등할망 스토리텔링 시스템 마련이었다. 영등할망 신화공원은 조각공원의 기능만 가지고 관광객들의 만족도를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주장이었다. 김순민(74) 마을회 감사는 "현실적으로 농민들이 생산하는 밭작물과 풍부한 해산물을 가공 처리하여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만들기 위한 식품가공공장이 있어야 합니다. 젊은이들의 일자리 창출을 기반으로 하지 않고는 귀덕초등학교의 밝은 미래도 보장 받지 못하기 때문이지요"라고 했다. 시장기능에 끌려 다니는 농업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짙게 깔려 있는 주장이었다.

전통포구의 모습이 남아있는 영등올레에서 성게까기 작업을 하고 있는 해녀들.

오기엽(62) 부녀회장은 활기찬 부녀회 활동을 소개하면서 "귀덕초등학교 학생수를 증가 시키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펼쳐야 합니다. 마을회가 보유한 토지에 젊은 부부들이 들어와 살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하여 다년간 노력을 하고 있지만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을공동체 사업을 통하여 기금이 마련된다면 우선은 여기에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이농현상으로 빚어진 공통적인 아픔이 있지만 극복을 위한 의지 또한 아이를 키워낸 엄마로서 교육문제는 귀덕리의 미래와 가장 직결된 사안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독특한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 영등신화공원의 서쪽 궤물동산 북쪽 해안도로 150m 정도를 주말장터로 만들어서 제주의 전통장단이라고 할 수 있는 연물놀이 등을 선보이면서 흥겨운 즐길 공간을 만들어 관광객을 유치하는 계획이었다. 영등신화공원이 가진 전시 기능에 상업적 마인드를 가미하여 보고, 느끼고 공유하는 독특한 마을관광자원을 보유하고자 하는 욕심이었다. 입체적인 접근이 주안점이다.

마을 안길에서 만난 정겨운 눌이 전통적인 밭농사 지역의 역사를 아련하게 말해준다.

귀덕1리가 가진 잠재력은 역사성에 있다. 경관 또한 인간과 자연이 문화를 매개로 하여 연결된 신화적 가치에 충실하다. 문제는 역동성이다. 영등신화는 굿이라는 연희 형태에 의해 소통구조를 성공시켰다. 1단계 공원 사업이 완성되었을 뿐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단계별 실천 전략을 행정이 나서서 주민들과 함께 짜고 지속적인 전문성 수혈이 이뤄진다면 스토리텔링 자원으로 전국적인 명성과 관광수익을 올리는 특색있는 마을이 될 것이 분명하다. 관광 일자리를 찾아 귀향하게 될 귀덕1리 출신 젊은이들을 기대하며. <공공미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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