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만난 사람](45) '6월 다큐' 연출자 오영덕씨

[토요일에 만난 사람](45) '6월 다큐' 연출자 오영덕씨
20년전 6월, 그 못다한 이야기 담아
  • 입력 : 2007. 06.09(토)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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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역 6월 항쟁의 기록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오영덕씨는 6월이 제주에 미친 영향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사진=이승철기자 sclee@hallailbo.co.kr

체험자 인터뷰 등 87년 6월 기록

"공권력에 대한 두려움 떨친 계기"

이달 16일 코리아극장에서 시사회


 강산이 두 번 바뀐다는 시간이다. 쓰린 사랑의 기억도 그만한 세월을 타고 넘으면 담담히 떠올릴 수 있다. 잊고 지내는 것들이 더 많아지는 시간, 20년이다.

 '들꽃농장' 대표로 농사를 지으며 유기농 콩나물을 키우고 있던 오영덕씨(41)도 그랬다. 철 지난 옷을 방 한구석에 걸어놓듯, 그 날의 기억을 한켠에 묻어뒀다. 애써 밖으로 불러낼 이유도, 짬도 없었다. 남들처럼 '먹고 사는 일'이 그를 기다렸다.

 일상에 변화가 찾아든 것은 지난 4월이었다. 제주씨네아일랜드가 제작하는 6월 항쟁 20주년 다큐멘터리 연출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4·3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그였지만 절묘한 시점이었다. 마흔살이 넘으면 창작활동을 하고 싶은 바람을 갖고 있던 터였기 때문이다. 망설임없이 받아들였다.

 "5월 한달동안 60명을 만났다. 나는 거리에서 시위를 했던 기억 정도지만,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만난 여러 사람들은 날짜까지 기억해내더라."

 1987년 6월은 전국이 들끓었다. 제주도 예외가 아니었다. 중앙로, 동문로, 시청 주변으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나왔던 적이 있었을까. 부당한 권력에 짓밟혀도 숨죽여야 했던 시절, 거리로 나선 이들은 승리를 예감하며 '독재타도'를 외쳤다.

 제주대 국문학과 2학년생이던 그도 거리에 있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이들과 어깨를 결고 '제주도의 노래'를 불렀다. 최루탄이 터지는 중에도 시위대를 격려하는 물품이 이어졌다. 셀 수 없는 담배 묶음, 빵과 요구르트, 마스크가 쌓였다. 순식간에 성금이 모아지기도 했다.

 6월을 체험한 이들의 목소리는 1개당 60분짜리인 테이프 10개를 꽉 채웠다. 인터뷰가 거듭될수록 6월이 제주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는 걸 느꼈다.

 "4·3으로 인해 공권력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제주사람들은 6월을 체험하면서 목소리를 냈다. 4·3을 공론화하는 계기를 만들었고, 금악리 골프장 반대처럼 민중생존권 쟁취를 위한 시위가 20여건 이어졌다. 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제주문화운동협의회, 제주여민회, 제주교사협의회같은 시민사회단체도 6월 이후에 생겨났다."

 현재 후반작업이 한창인 다큐멘터리는 과거를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6월이 남긴 의미를 좇으면서 지금, 무엇을 해야할 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6월을 경험한 많은 이들이'나'가 아닌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서 긍정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모습에 큰 힘을 얻었다는 오씨는 그 느낌을 6월의 현장에 함께했던 시민들과 널리 나누고 싶다고 했다.

 이 작품은 제주 사람들이 만든 첫 6월 항쟁 기록물이다. 연출은 말할 것도 없고 프로듀서 오주연, 촬영 이영윤 최정진, 음악 최상돈, 내레이션 김정수, 스틸 최진인 등 모든 스태프가 무상으로 참여했다. 시사회는 이달 16일 오후 5시 코리아극장에서 열린다.

/진선희기자 ji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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