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바다와 문학] (41) 강중훈 시 ‘오조리의 노래’

[제주바다와 문학] (41) 강중훈 시 ‘오조리의 노래’
“소라껍질처럼 빈 가슴으로 오는 봄”
  • 입력 : 2020. 02.14(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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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촬영된 오조리 포구. 시인 강중훈은 첫 시집에서 오조리 바당과 4·3에 얽힌 서사를 풀어냈다.

오조리 바당 배경 4·3 서사
살기 위해 '잊고 말거다'는
파도소리에 밀려온 무자년

다시 펴든 그의 시집엔 온통 짠내음이 밀려들었다. 바당(바다)에서 시작해 바당으로 끝이 난다. 그 바당엔 제주4·3이 있었다. 책장을 열며 '4·3으로 희생된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더불어 함께 가신 모든 분들의 영전에 삼가' 시집을 바친다고 했던 시인이다.

'내 고향 오조리 봄은/ 바당애기 혼자/ 집을 지킨다// 얼마나 외로우면/ 소라껍질에 뿔이 돋는가/ 그 뿔에/ 송송/ 젖불은 어미의 숨비질이 뜨는가// 왜 바당애기는/ 아버지란 소리 한번 못 해봤는지// 말하지 마라/ 말하지 마라/ 반평생/ 호-이 호-이/ 숨비질 소리만 질긴 뜻을/ 말하지 마라'('오조리의 노래' 중에서)

제주 강중훈 시인의 첫 시집 '오조리, 오조리, 땀꽃마을 오조리야'(1996)는 서귀포시 성산읍 오조리 바다를 배경으로 4·3에 얽힌 시편이 한 편의 서사처럼 펼쳐진다. 비극적인 가족사가 드리운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은 듯 시인의 마음은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 마냥 요동친다.

안개 자욱한 날 안전 항해를 돕기 위해 울리는 무적(霧笛)처럼, 그 때 육친들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피할 방도는 없었을까. 대신 그날 '밤에 울면 숭시(흉사)난다'는 옆집의 소만 느릿느릿 울었다. 동네 사람들은 앞바당 모래밭에 멈추지 않고 쏘아대던 총성을 들었다. 뭇 생명들이 스러졌고 '난리 피해/ 너분여 바당 못 넘고/ 들것에 거죽 씌워져 돌아오셨던/ 우리 아방'('무적')도 있었다.

1948년 무자년을 파도소리로 불러낸 시인은 오조리 구석구석을 훑으며 가신 이들의 혼을 달랜다. 오조리 잠녀들이 물질하던 바다밭인 너분여와 당머리, 구불구불 이어진 마을 골목 진수막과 생이짓목, 식산봉의 별칭인 바오름, 오조리 바닷가 언덕인 쌍월, 4·3 학살터였던 수마포는 오래전 숱한 이들의 희생을 지켜봤을 테니 말이다. 기나긴 억압의 시간은 그들에게 '말하지 마라' 했지만 남은 이들은 오히려 살기위해 발버둥치며 '잊고 말거다' 했다. 눈앞에서 겪은 참상을 떠올려야 하는 일은 그들에게 또 다른 고통이었는지 모른다.

'오조리의 노래' 남은 대목을 마저 옮겨본다. '제주도의 사월 바람은/ 거슬러 날라오는 소리개의/ 발톱// 돌담 너머/ 수평선 푯대 끝/ 그 이름은 아직도 숨을 죽인다// 내 고향 오조리는/ 소라껍질 같은/ 가슴이 빈 사람들만/ 답답한 봄을 맞는다.' 이제 곧 72주년이 되는 4월은 숨죽이던 금기의 시대를 지났다. 세월이라는 너울을 타고 넘는 동안 작은 어촌 마을의 혼백들도 고이 잠들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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