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타인의 욕망은 종종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누군가가 왜 그토록 그것을 열망할까 하는 의문의 지점들은 언제나 나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이 될 수 없기에 우리는 자주 손쉽게 누군가의 욕망을 재단하고 측량하여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선의 모양으로 만들려고 한다. 이해하려는 노력을 굳이 더하지는 않는다. 눈에 거슬리는 타인의 욕망을 나의 관점에서 불편하거나 불쾌하지 않은 상태로 변형시켜 그대로 둔 채 더는 들여다 보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의 욕망을 대하는 태도는 어떠한가. 완전히 다르다. 부풀릴 수 있는 데까지 팽창시키고 온갖 도색으로 치장한다. 나의 욕망에 관한 일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절대로 단순화 시키지 않는다. 그 소중한 감정의 덩어리를 어떻게든 온전히 유지하려 한다. 그야말로 평가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일례로 리얼리티 연애 예능에 출연한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아주 손쉽게 비판과 비난 혹은 선망과 질투의 대상이 된다. 타인의 욕망은 나에게 안전하게 느껴질 정도로 뭉툭해야 하며 뾰족한 존재감으로 도드라진다면 어쩐지 나를 위협하는 불편함이 되는 기이한 시대. 타인의 욕망을 세세하게 들여다 본 두 편의 독립 영화가 극장가에 도착했다.
성지혜 감독의 영화 <우리 둘 사이에>는 비장애인으로 18년, 장애인으로 17년을 살고 있는 여성 은진(김시은)의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여전히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 휠체어를 탄 여성 장애인의 존재를 우연이라도 맞닥뜨리기 어려운 이유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장애인의 이동권이라는 기본적인 삶의 조건은 여전히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겁할 정도로 지난하다. 비난과 질시의 투덜거림 속에 우리는 함께 사는 이 세상에서 누군가의 자리를 천천히 그리고 확실히 지워가고 있다. 장애인들이 우선 탑승하는 것이 응당 옳은 지하철 역사의 엘리베이터 앞에서 수많은 비장애인들의 문전성시로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지 못한 채 덤덤히 멈춰 있던 은진의 모습과 그 순간을 무겁게 에워싸던 침묵은 많은 것을 대신 설명한다. <우리 둘 사이에>의 주인공 은진과 호산(설정환)부부는 긴 연애 끝에 결혼을 했고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의 삶을 이어가는 중이다. 이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긴다. 장애인 은진과 비장애인 호산 사이에 생긴 이 아이의 존재는 둘의 세상을 다시 한 번 재정의하게 만든다.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들었을 두 사람의 안전한 세상이 흔들린다. 가족이라는 집단과 사회라는 세상 사이에서 부부와 아이는 쉽지 않은 주차들과 맞닥뜨린다. 영화는 34주라는 임신의 기간 동안 이 세 사람이 겪는, 특히 은진이 겪게 되는 수많은 변수들을 고요이 응시한다. 격렬한 신체와 정신의 변화를 겪는 은진의 요동은 배우 김시은의 안정적인 연기로 더욱 생생하게 그려진다. <우리 둘 사이에>는 저출산 시대에 던지는 묵직한 질문을 품은 영화이기도 하다. 우리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 우리라는 말은 얼만큼 넓어질 수 있는가.
허가영 감독의 단편 <첫여름>은 노년 여성의 욕망에 관한 영화다. 영순은 좀 특별한 할머니다. 결혼을 앞둔 손녀에게 화려한 속옷을 선물하고 노환으로 신체가 불편한 남편을 종종 돌보면서도 춤을 추러 가는 자신의 일상을 놓지 않는다. 그런 영순에게는 오랜 춤 파트너인 학수가 있었는데 그와 연락이 끊긴 지가 오래다. 무슨 일일까 걱정과 섭섭함이 교차하던 차, 그의 아들로부터 학수의 부고를 전해 받는다. 손녀의 결혼식 날과 똑같은 날 학수의 사십구재가 열리고 영순은 선택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첫여름>은 영순 역을 맡은 배우 허진의 섬세한 연기와 유려한 대본이 손을 맞잡고 춤 추듯 서사의 박동을 높여 가는 영화다. 노년의 삶을 한정 짓고 규정 짓는 심지어 비하하기 까지 하는 시대의 얇고 불투명한 막을 고유의 개성과 매력으로 돌파하는 캐릭터 영순은 압도적이기까지 하다. 고령화 시대에 도착한 일갈이기도 한 <첫여름>은 순도 높은 감정의 놀라운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멜러 영화인 동시에 생의 어느 순간에도 가능할 빛나는 순간을 채집한 성장 영화로도 탁월한 지점을 보여준다.
<우리 둘 사이에>와 <첫여름> 두 편의 각기 다른 영화가 다루는 소수자의 욕망은 그저 화면 속 욕망의 탐구에서 그치지 않는다. 두 영화는 모두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우리가 체험하고 다시 현실이라는 세상 속에서 만나야 할 타인들을 정성스러운 질문으로 치환해 꺼내 놓는다. 영화는 보고 난 뒤 관객들의 세상 속에서 또 다른 완성본을 갖는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릴 두 편의 작품들이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기사제보▷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