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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觀] 나의 속도 모르고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입력 : 2020. 12.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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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사코'의 한 장면.

세상에서 절대 풀 수 없는 비밀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누구에게도 열어 주지 않는 스스로의 마음 안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은 삶의 여러 대목에서 고개를 무겁게 끄덕이게 만든다. 정말이다. 남의 속도 모르겠고 나의 속도 모르겠다. 도리도리 절레절레. 남의 속은 어렴풋이 짐작이라도 할 수 있는데 노래 가사처럼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분명 내 몸 혹은 마음의 일부일 텐데 이 놈의 속, 가늠하기가 정말 힘들다.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는 말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갸웃갸웃 끄덕끄덕. 사랑에 빠진다는 건 그 절대 풀 수 없는 비밀의 초성을 알려 주는 일이 아닐까. 맞춰봐, 그런데 답은 정해져 있지는 않아. 이게 다 무슨 소리이고 무슨 소용인가. 설명할 수 있고 답이 있고 방향이 있고 적정 속도가 있고 정상성이라는 고속도로 위에 놓여 있다면 우리에게 사랑이 이렇게 어렵고 괴상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 '아사코'에는 관점에 따라 이해가 쉽지 않은 여성 주인공이 등장한다. 첫눈에 반한다는 그 사랑에 풍덩 빠진 아사코다. 그런데 그녀의 속을 짐작하는 일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난해하기까지 하다.

 아사코가 처음 만난 남자 바쿠와 연인 사이가 되었다고 말하자 "분명히 잘생기긴 했지만 언젠가는 너를 울릴 거라고" 아사코의 친구 하루요가 예언하듯 이야기한다. 팡 터진 불꽃놀이처럼 사랑에 빠져버린 아사코는 불안에도 불구하고 바쿠가 좋다. 바쿠는 귀엽고 다정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사라져 버린다. 바쿠는 '원래가 좀 특이하고 그게 언제가 됐건 간에 돌아오긴 한다'고 바쿠의 친구가 말한다. 근데 그게 언젠데?

 시간이 흘러간다. 아사코가 사랑에 빠져 버린 삶의 강물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유유히 흐른다. 가끔은 그 흐름의 속도가 너무 일정해서 멈춰져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러던 어느 날 아사코는 바쿠와 너무 닮은 남자 료헤이를 만난다. 눈에 보이는 겉모습은 그냥 헤어 스타일이 달라진 바쿠다. 그런데 그는 바쿠가 아니다. 아사코는 바쿠가 아닌 료헤이와 사랑에 빠진다. 바쿠와 함께한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이 료헤이와 함께 흐른다. 삶의 강물은 이제 아름답기까지 하다. 반짝이는 윤슬은 부드럽게 무늬를 만들고 물길의 미세한 곡선들은 듣기 좋은 소리를 만든다. 그런데 아사코 앞에 바쿠가 나타난다. 그의 습관대로 돌아온 걸지도 모르겠다. 시간을 거슬러 흘러서 물고기처럼. 이미 료헤이와의 시간이 편안해진 관객에게는 바쿠의 무례한 등장이 아무 의미가 없으면 좋겠지만 아사코의 속을 누가 알까. 과연.

 글로 적어본 스토리는 뜨겁게 요동치지만 '아사코'는 시종일관 차분한 영화다. 차게 식혀진 녹차처럼 단정하지만 또 얼얼하게 차가운 데가 있다.

 아사코에게는 벼락처럼 찾아온 바쿠든 유성처럼 목격한 료헤이든 두 사람의 등장은 예측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니 어떻게 그 마음을 준비할 수 있었을까. 사랑이란 불가해한 감정을 누가 과연 어떻게 잘 선택할 수 있겠는가.

 많은 자기 계발서들은 성공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랑의 성공 역시 그러한가 묻고 싶다. 누군가는 아사코의 선택을 지지하지 않을 수 있다. 관계에서 실패했다고, 사랑을 잃을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제 속도 모르고 그저 애타는 마음으로 도착하거나 출발한 사랑에 당황하고 쉽거나 어렵게 자신의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기뻐하기도 후회하기도 하는 모두의 실패담 그것이야말로 사랑을 통한 개별 성장이 아닐까. 성공 말고 성장. 그러니까 우리는 남의 속 그리고 무엇보다 내 속을 알 때까지 매일 헤매고 헛다리를 짚을 필요가 있다. 죽을 때까지 자라나는 마음, 그 속에 숨겨진 사랑이라는 비밀을 풀고 싶다면 말이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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