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연식이 꽤 된 오래된 구옥이다. 나이 든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 언젠가부터 집의 늙고 낡음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긴 장마 이후 천장에는 물기가 스민 자국이 남았고 벽지는 맥없이 벌어져 시멘트의 빛깔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그게 보기 싫어 좋아하는 그림 엽서로 덮어 두었는데 다음해 장마가 오니 그 엽서마저 생겨난 틈을 이겨내지 못한 채 낙엽처럼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그 이후 덮으려는 시도를 그만두고 가능하면 그 틈을 보려고 하지 않고 살고 있다. 그러다 우연히 그 균열과 마주치면 이상하게 마음이 좀 저릿하다. 왜 벌어졌을까, 언제부터 벌어졌고 나는 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살고 있는 걸까. 방법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낡아 헤진 벽지를 뜯어내고 도배를 하거나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틈을 봤던 마음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보고 만 것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누수의 흔적처럼 마음 한 구석을 변색 시킨 채로.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영화 '센티멘탈 밸류'는 벌어져 버린 가족 사이의 틈을, 헐거운 이음새로도 이상한 탄성을 유지하고 있는 관계의 모양을 찬찬히 살피는 영화다. 영화감독이었던 아버지 구스타브는 오래 전 집을 떠난 사람이다. 그가 다시 자매 곁으로 돌아온다. 썩 반길만한 재회는 아닐 것이다. 긴 시간이 흘렀고 큰 딸 노라는 배우가 되어 있다. 구스타브는 노라에게 '너를 위해 쓴 이야기'라며 신작의 시나리오를 건넨다. 두 사람의 직업적 상관관계를 생각하면 비즈니스적으로는 흥미롭게 느껴지지만 부녀 사이 화해의 도구로서는 무성의해 보인다. 노라가 구스타브의 이 뜬금없는 제안을 수락할 리가 없다. 구스타브는 유년의 노라에게 상처를 남긴 이고 아버지의 존재와 부재로 생긴 틈이 노라의 마음 안에 깊은 계곡을 만들어 냈음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깊고 어두운 노라의 계곡 옆에 긴 시간 함께 머무르는 이는 동생 아그네스다. 자매는 가족의 시간들을 함께 겪으면 성장했고 이제는 닮고 다른 서로를 누구보다 자주 매만지는 사이다. 노라와는 다르게 아그네스는 새로운 가족이 생겼고 아그네스는 두번째 가족 사이에 언니 노라가 들고 날 틈을 넉넉히 마련해 둔 미더운 동생이기도 하다. 돌아온 구스타브와 그의 귀환으로 인생의 실금들이 굵게 변하기 시작한 노라와 아그네스, 세 사람이 공유한 집이라는 공간이 <센티멘탈 밸류>안에서 꿈틀댄다. 출렁이고 진동한다. 영화는 사소한 감정들의 움직임까지도 집이라는 평범한 공간 안에 섬세한 문양으로 새겨 넣으며 관객들을 이 긴밀하고 복잡한 가족이라는 우주 안에 함께 머무르게 한다.
어느 집에나 옷장 안에는 차마 꺼내서 털어내지 못할 해묵은 감정의 먼지더미가 있다고 한다. 시간이 흐른다고 물처럼 흘러가지 않는, 적재된 채 방치된 것들 말이다. 예술가라는 직업을 가진 구스타브와 노라는 어쩌면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이가 될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무대 위에 오르는 노라의 극심한 불안을 다독일 구스타브의 모습도, 창작이라는 계단 오르기를 내내 감내하는 구스타브를 안쓰럽게 살필 노라의 눈길도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은 벌어진 틈이 만든 비극이다. 화해의 도구로 부적절하게만 보이던 구스타브의 시나리오 안에 비밀의 열쇠가 있음을 알게 되는 이는 아그네스다. 그저 창작의 일환으로만 보였던, 예술가의 욕망으로만 느껴지던 그 이야기 안에 구스타브가 가족 안에서 그러모았던 감정들이 켜켜이 쌓여 있음을 아그네스는 발견한다. 또 한 번 노라와 구스타브 사이의 틈을 더 벌어지게 만들 뻔 했던 그 종이뭉치가 두 사람의 긴 공백을 두 사람만이 이을 수 있는 방식으로 좁히게 한다. 여전히 그곳에 있던 집이, 너무나도 익숙하고 그래서 더없이 불편했던 삶의 공간이 구스타브와 노라의 새로운 무대가 된다.
상처를 주고 받는 일이 가족 안에서 빈번하게 이루어짐은 가족이 쉽게 끝을 말할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을 고통스러울 정도의 대립으로 가득했더라도 우리라는 한때의 감각은 다시 다음 스테이지를 함께하게 만든다. 틈이 생기기 전 우리는 서로라는 이름의 집이었고 당신이 나의 든든하지만 차가운 벽이었음은 그 벽이 무너진다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센티멘탈 밸류>의 엔딩은 너무 다르고 그만큼 닮은 노라와 구스타브가 함께할 수 있는 최선의 거리를 유지하며 끝을 맺는다. 신기하게도 꽤 먼 거리 사이에서 주고 받는 두 사람의 눈빛 앞에 견고했던 벽들이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한 번의 악수도 포옹도 없었던 부녀 사이에 놓인 오래된 다리가 두 사람을 만나게 해줄 것 같은 착시가 들었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기사제보▷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