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으로 읽는 제주예술사] (15)제주바다가 보이는 야외공연장

[공간으로 읽는 제주예술사] (15)제주바다가 보이는 야외공연장
자연 속 무대서 제주 공연축제 대표브랜드 탄생
  • 입력 : 2017. 11.13(월) 2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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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표 여름 음악축제인 제주국제관악제는 관악의 대중성을 살릴 수 있는 해변공연장을 주무대로 치러져 왔다. 사진=한라일보 DB

1995년 3월 탑동 제2공원에 방사탑 형상 해변공연장 개관
같은 시기 한여름밤 해변축제·제주국제관악제 잇단 태동

서귀포에도 천지연폭포 야외공연장과 칠십리공연장 조성

제주시립교향악단(지금의 제주도립제주교향악단)은 '물 위의 음악'과 '바다의 협주곡'으로 팡파르를 울렸다. 갯내음이 밀려드는 공연장의 특이성을 반영한 선택이었다.

1995년 3월 28일, 저 멀리 고기잡이 불빛이 반짝이는 바다를 배경으로 제주시향과 합창단이 첫 무대를 채웠다. 제주해변공연장 개관 기념 음악회였다. 이날 축하음악회를 시작으로 열린 음악회, 제주도립민속예술단(제주도립무용단) 민속무용제, 제주한라윈드앙상블 공연이 이어졌다. 그 해 30회 가까운 공연이 해변공연장으로 밀려들었다 빠져나갔다.

제주시 탑동 해변공연장의 대표 프로그램인 한여름밤의 예술축제.

▶여름철 '문화 피서'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야외공연장은 주변 풍경이 빚어내는 경관에 따라 빛깔이 바뀐다. 탁 트인 열린 공간으로 꾸며진 무대와 객석이 자연의 일부인 듯 연주자와 청중들의 교감 폭이 넓어진다.

탑동 제2공원에 조성된 해변공연장은 바다를 끼고 살아온 제주섬 사람들의 삶을 떠올릴 수 있는 공간으로 지어졌다. 제주에서 액을 막아주고 평화를 가져다준다며 쌓아올렸던 방사탑 모형으로 탑동 바다와 지척인 곳에 섰다. 4080㎡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 건물로 2400석의 노천 관람석을 갖췄다.

'쪽빛 제주바다의 아름다운 풍광과 어우러져 예술적 가치가 높은 제주 특유의 문화예술공간'을 내세운 해변공연장은 여름철 '문화 피서'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커왔다. 해변공연장을 중심으로 공연 브랜드도 만들어졌다. 제주국제관악제와 한여름밤의 해변축제가 대표적이다.

제주 토박이 관악인들이 탄생시킨 제주국제관악제는 해변공연장이 문을 열던 해에 시작됐다. 1995년 8월 16일부터 19일까지 나흘간 관악제를 펼치는 동안 관악의 대중성을 살리기에 좋은 해변공연장이 주요 무대가 되었다. 제주국제관악제의 대표 프로그램인 8·15경축음악회는 시가퍼레이드팀이 당도하는 해변공연장에서 절정을 이룬다. 몇 해전까지 관악제의 개막식 장소로 쓰인 곳도 해변공연장이다.

관악제 기간 뿡빵뿡빵 시원한 나팔 소리는 더위를 피해 바닷바람 부는 탑동으로 나온 제주도민과 관광객을 자연스레 끌어모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해변공연장은 청중들이 몰려드는 관악제의 효자 같은 공간으로 통한다.

최근 해변공연장에서 열린 제주독서문화대전 초청 강연. 사진=한라일보 DB

▶야외시설 가동률 한계 보완할 대책 필요=해변공연장을 운영하는 제주시는 해변공연장에 맞춤한 축제를 기획했다. 1995년 7월 12일 첫 걸음을 뗀 한여름밤의 해변축제다. 첫 해 한달 넘게 이어진 해변축제에는 음악, 무용, 연극 등 30여개 단체가 참여했고 회당 평균 2000명에 달하는 관람객이 해변공연장을 찾았다.

해변축제는 공연장에 대한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했다. 전문 예술단체부터 동호인까지 문호를 넓혀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줬다.

해변공연장의 성공은 서귀포에 영향을 미쳤다. 서귀포시는 1996년 10월 천지연폭포 가는 길에 천지연 야외공연장을 짓는다. 초가 형태로 만들어졌다가 1998년 전복 모형으로 바뀐 이곳은 460명을 수용할 수 있다. 2002년 6월에는 월드컵 특수에 맞춰 서귀포항과 이웃한 천지연폭포 주차장 부근에 450석의 노천 관람석을 둔 칠십리 야외공연장을 세운다. 제주국제관악제, 서귀포 천지연음악축제장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야외공연장이 지속가능하려면 실내공연장처럼 전문인력과 기획 프로그램이 동반돼야 한다. 여름철을 중심으로 사용 가능한 계절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막대한 예산만 들이고 놀리는 공간이 되기 쉽다. 소음 민원 대처도 과제다. 주변에 건물이 하나둘 늘어난 해변공연장의 경우 공연이 집중되는 시기엔 항의가 잇따른다.

천지연폭포 주차장 주변에 들어선 칠십리 야외공연장. 진선희기자

지난해 해변공연장에서 진행된 공연 일수는 60일이고 칠십리 야외공연장 41일, 천지연 야외공연장 84일이다. 1년 중 절반에 한참 못미친다. 해변공연장은 전시실까지 꾸며졌고 시설을 보강해왔지만 이용자는 갈수록 줄고 있다. 2015년 한해 33일이던 전시실 이용 기간은 지난해 19일로 줄었다.

"사철 해변공연장 이용에 한계"
새 야외공연장 짓겠다는 제주시


지난 여름 탑동에 울려퍼지던 제주국제관악제의 금빛 나팔소리가 잦아든 지금, 해변공연장은 공사중이다. 제주시가 문화플랫폼 조성 사업으로 전시실을 새로 만들고 80석 규모의 소극장을 짓고 있다. 내년에는 국비를 들여 객석 비가림시설 등 기능보강 공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올해 개관 22년째를 맞은 해변공연장은 그동안 꾸준히 보수 공사를 벌여왔다. 2007년 전시실 이용을 늘리겠다며 리모델링에 나섰고 2013년엔 해변공연장 무대바닥 등을 교체했다. 잦은 누수로 인한 방수 공사도 몇 차례 이루어졌다.

이런 가운데 제주시는 새로운 야외공연장 건립을 구상하고 있다. 기존 해변공연장의 문제점을 진단·보완해 제주시민들에게 쾌적한 문화공간을 제공하기 위한 거라고 했다. 제주시는 연말까지 자문위원회를 가동해 후보지 선정, 건립 기본계획 등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4월 제주시의 '야외공연장 조성 타당성 조사와 기본설계 착수보고서'에 따르면 해변공연장은 시설 노후, 항공기 소음, 입지여건 등 세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비가 오면 객석 이용이 불가능하고 제주공항 항로와 근접거리에 있어 항공기 소음이 발생한다. 태풍 등으로 인한 시설 노후도 심각하다.

제주시는 이같은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주·야간 상설공연이 가능한 전천후 복합야외공연장 건립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부정적 시각도 있다. 공연장 등 제주지역 문화인프라가 넘치는 현실에서 대규모 예산 투입과 운영비가 예상되는 야외공연장을 꼭 지어야 하느냐는 반문이 나온다. 근래엔 딱딱한 문화공간이 아니더라도 거리공연이 느는 등 그 내용과 형식이 자유로워지고 있다는 점에서 야외공연장 건립이 얼마나 설득력을 얻을지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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