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신경림 산문집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이 책] 신경림 산문집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그때 비로소 시 쓰는 일이 즐거워졌다”
  • 입력 : 2026. 05.28(목) 21:4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한라일보] "시는, 많은 독자로부터 외면당하고 있으면서도 왜 존재하는가. 대답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요, 그 아름다움은 시만이 가진 색채와 향기에서 비롯된다는 사실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시인은 '시는 왜 존재하는가'(2016)에서 이렇게 썼다. 그에게 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 또는 이 세상을 사는 많은 불행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꿈이 되고 별이 되는 것"이었다.

시인 신경림(1935~2024) 2주기를 맞아 엮은 산문집에는 40여 편의 글이 실렸다. 여기에는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 군사 독재가 이어지는 시대를 온 몸으로 통과한 시인이 목소리가 담겼다.

'우리 시는 우리 현대사를 어떻게 수용했는가'라는 부제가 붙은 네 편의 글은 시인의 시론으로 볼 수 있다. 한국 현대시문학사를 살피며 시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발언했다.

시인은 '광주항쟁에서 6월항쟁까지'(2009)라는 글에서 광주의 학살을 직관과 뛰어난 상상력으로 노래한 김남주의 '학살 1', 화려한 언어와 방법의 구사로 같은 유의 다른 시들과 일정한 획을 긋는 데 성공한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내용의 충격에 더해 절제된 언어 구사와 효과적 강약 전개 등으로 높은 시적 완성도를 성취한 박노해의 노동시 '시다의 꿈' 등을 들었다. 그러나 적지 않은 민중시, 민족 혹은 통일 담론의 시들은 그 덕목만이 지나치게 강조됨으로써 우리 시를 왜곡한 측면도 없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광주항쟁과 6월항쟁 사이에 이성복 기형도 최승자 최승호 같은 시인들이 남긴 아름다운 시들은 우리 시를 빛내는 데 큰 몫을 했다고 짚었다.

'내 시로부터의 도망'(2016)에는 자기 성찰이 있다. 시인은 오랜 세월 시 쓰는 일에 신명을 내지 못했던 일을 꺼내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이 터널을 지나오면서 시란 무엇에 구애받아서는 안 되고, 무엇을 위해서 혹은 누구를 위해서 쓰는 것도 아니라는 뻔한 사실, 이데올로기에 종속하거나 목적을 가질 때 재미없는 시, 쓰는 사람한테도 읽는 사람한테도 가장 신명나지 않는 시가 된다는 다 아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 것은 수확이었다. 비로소 시 쓰는 일이 정말로 즐거워졌기 때문이다."

다시 '시는 왜 존재하는가'를 읽는다. 시인은 "나의 시는 발견이어야 한다"며 "이미 남이 보고 찾아낸 것을 뒤따라다니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고 나만이 보고 찾아내고, 만진 것을 아직 그것을 찾아내고 만지지 못한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만지게 하는 역할이 나의 시가 해야 할 또 하나의 일이다"라고 했다. 도종환 엮음. 창비.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8264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