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일 스물다섯 번째 증언본풀이마당에서 현정욱(왼쪽)씨가 증언하고 있다. 양유리기자
[한라일보] “네가 결혼해서 육지 가서 살다가 비행기를 타고 내릴 땐 제주공항에 절을 해라. 공항 활주로 저 아래를 보며. 아버지에게.”
현정욱(78·조천면 신흥리)씨의 어머니는 고향 제주를 떠난 딸에게 제주를 찾을 땐 아버지가 묻힌 공항 땅을 향해 절을 해야 한다고 일러왔다.
4·3으로 소중한 가족으로 잃은 유가족들이 증언을 통해 당시의 참상을 기억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제주4·3연구소는 27일 제주문예회관 소극장에서 ‘4·3과 기억-2003 하귀에서 1948 조천으로’를 주제로 스물다섯 번째 증언본풀이마당을 개최했다.
이날 증언본풀이마당에는 4·3 당시 아버지를 잃은 현씨와 더불어 친형을 잃은 고창선(91·애월면 하귀리)씨가 참여했다.
현씨의 아버지 현보규(당시 37세)씨는 1949년 10월2일, 정뜨르비행장(현 제주국제공항)에서 토벌대에 의해 총살됐다. 그는 제주 조천면 신흥리 출신으로 일본에서 법학을 공부한 뒤 서울에서 변호사 생활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주에서 결혼부터 하라는 어머니의 권유에 사무실 개업을 잠시 미루고 고향 제주로 돌아왔다. 이후 조천중학원 설립에 참여해 원장까지 맡았으나 1949년 2차 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끝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당시 두 살이었던 딸 현씨는 아버지와 관련해서 또렷한 기억 세 가지가 있다. 목놓아 울며 마룻바닥에서 몸부림치던 할머니의 모습, 할머니집이 불타던 장면, 1949년 겨울 조천을 떠나 읍내로 이사 가던 기억이 그것이다.
현씨는 성인이 된 이후로 서울에 터를 잡고 생활하며 4·3에 대해서는 잊고 지냈다. 하지만 2003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처음으로 4·3에 대해 공식 사과하면서 현씨는 “세상이 좀 달라져 가는구나”라고 느꼈다. 이때부터 현씨는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제주국제공항 4·3희생자 유해발굴이 시작되던 2007년 아버지는 희생자로 인정받았다. 2018년 11월엔 현씨의 채혈을 통해 아버지의 신원이 밝혀졌다. 3년 전 직권 재심 신청도 마친 상태다.
아버지의 신원이 확인된 당시를 떠올리며 현씨는 “말로 다 할 수가 없는 기분이었다”라며 “어머니 말대로 제주 갈 때마다 절한 덕분에 소원이 이뤄진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현씨는 “재심 신청을 했는데 연락이 없다. 그 생각만 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며 “얼른 재심을 통해 아버지의 무죄를 입증하고 싶다”고 말했다.

27일 스물다섯 번째 증언본풀이마당에서 고창선(왼쪽)씨가 증언하고 있다. 양유리기자
고창선씨의 친형 고창만(당시 22세)씨는 1948년 겨울 외도지서에 장작 동원을 위해 갔다가 대구형무소로 연행됐고, 현재까지 행방불명자로 남아 있다. 고씨의 증언에 따르면 외도지서 장작사건에 연루된 이들과 그 가족은 모두 총살됐고, 고씨의 아버지도 ‘검속자 명단’에 속했다. 하지만 제주경찰서에 근무하던 친척 덕분에 아버지는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고씨가 살던 마을에 있는 하귀초등학교에서는 1948년 12월, 90여 명이 집단학살되는 사건도 있었다. 고씨는 “하귀에는 청년들이 다 죽어서 더 죽일 청년도 없었다”고 말했다.
4·3으로 큰 피해를 입은 하귀는 마을의 이름을 바꿨다. 주소를 밝히면 취업이 아예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특히 “개수동 사람들은 사람 취급조차 안 했다.” 이에 하귀2리는 ‘귀일’, 하귀1리는 ‘화신’이란 이름을 거쳐 ‘동귀로’ 명칭을 변경했다.
고씨는 4·3을 입에 올릴 수 없던 시절을 지나 1999년 1월쯤 구성된 ‘4·3위령사업 범도민추진위원회’ 활동을 하며 깜짝 놀라는 경험을 했다. “거기서는 4·3에 관한 말을 밥 먹듯, 죽 먹듯 아무 말이나 자유롭게 했다. 하귀리에서도 4·3위령사업을 해야겠다는 꿈을 꾸게 된 시작점이었다”라고 고씨는 회상했다.
이후 고씨는 모금활동을 통해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 ‘영모원’을 조성했다. 영모원은 4·3희생자들을 비롯해 항일운동가, 호국영령들을 기리는 곳으로 국내외 많은 이들이 찾는 추모지로 자리매김했다. 고씨는 “영모원의 ‘영’은 한자 꽃부리 영(英)이다. 4·3 때 희생된 젊은 영혼들을 기리기 위한 의미”라며 “영모원을 매개로 주민들과 고향을 떠난 재일교포들이 화합하고, 4·3이 잊히지 않는 것이 나의 소망”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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