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이상봉 제주도의회 의장이 제주도정과 일부 의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주시 행정구역을 동·서로 나누는 행정체제개편안의 찬반을 묻는 여론조사를 강행하기로 했다. 이번 여론조사는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든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의회 주도로 진행한 새로운 여론조사에 대해 정부, 국회, 제주도가 수용할 지 알 수 없을 뿐더러, 1년 이상 공론화를 거쳐 마련한 행정체제개편안을 의회가 뒤집다는 비판도 나온다.
▶여론조사 20일 강행=이 의장은 11일 의장실에서 제주도의회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 원대대표가 소속한 운영위원회 의원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갖고 여론조사 실시 방침을 재확인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이미 숙의형 토론과 여론조사를 거친 제주형 행정체제개편안이 정부에 제출돼 있기 때문에 지금 새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지적과 함께, 도민 갈등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 행정체제개편의 운명을 가늠할 국정기획과제가 13일 발표되는 상황에서 이후 진행한 여론조사가 상황을 반전할 대안이 될 수 있느냐 등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의장은 이런 지적과 우려에도 여론조사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한 의원은 "의장의 뜻이 워낙 완강했다"며 "현재로선 여론조사 방침을 되돌릴 순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이 의장은 지난 5일 개회사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제한된 시간을 감안한다면 지금은 도민 여론조사를 포함해 긴급히 도민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야 할 때"라며 "제주도 행정체제개편위원회가 권고한 3개 행정구역과 김한규 의원이 제시한 2개 행정구역에 대해 도민 뜻과 그 타당성을 직접 묻는 절차를 의회가 주체가 돼 이행하겠다"고 말했다.
새 여론조사는 20일로 예정됐다. 또 여론조사 이틀 전인 18일에는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토론회를 연다.
▶몇 명을 대상으로 무엇을 어떻게 묻나=의회 사무처는 이 의장 지시에 따라 여론조사를 실시하기 위한 실무 작업에 착수한 상태다. 구체적인 여론조사 문항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이 의장이 개회사에서 밝힌 것처럼 동제주시와 서제주시, 서귀포시 등 3개 기초자치단체를 설치하는 제주도 개편안에 대한 찬반과 함께 별도로 제주시를 동·서로 분리하는 행정구역 조정에 대해 찬반을 묻는 방안이 유력하다.
표본 수는 도민 1000명 이내로 계획됐다. 또 의회는 여론조사 전문기관에 맡겨 '모바일 웹조사'와 유선 여론조사를 병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모바일 웹조사는 문자메시지 등으로 발송된 온라인 설문지에 응답하는 방식이다. 모바일 웹조사는 응답자가 유선 여론조와 달리 전화 조사원과 직접 대화를 하지 않고, 설문지를 스스로 살펴본 뒤 답할 수 있어 '모름'이나 '무응답'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도의회 관계자는 "모바일 웹조사가 가장 빨리 여론조사를 할 수 있는 방식"라며 "모바일 웹조사 80%, 유선여론조사 20% 비율로 조사에 나서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여론 조사 주관 기관은 '제주도의회'다. 행정체제개편은 내년 지방선거 선거구 획정 문제와 맞물려 있어 의회가 여론조사 주관 기관이 되면 정치적 중립성 문제에 휘말릴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의회는 이런 우려에 따라 입법담당관실에 유권해석을 의뢰한 결과 지방의회는 주요 정책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금지되지 않는 범위에서 민주주의 권한 실현을 위해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건 가능하다는 답변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여론조사 결과는 8월말 공개된다. 통상 여론 조사 결과가 나오기 까지는 10일 정도 소요된다.
그러나 이번 여론조사가 행정체개편을 둘러싼 도민 사회 대혼란을 종식할 대안이 될지는 미지수다. 이미 양기철 제주도 기획조정실장은 지난 6일 의회에 출석해 "행정체제개편위원회를 통해 도민 의견을 하나로 모아 정부에 개편안을 제출한 상황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새로운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것은 부담이 많고 어려움이 있다"며 이번 조사에 대한 수용 거부 입장을 밝혔었다.
한편 제주도가 정부에 제출한 제주형 행정체제 개편안은 광역단체만 있는 현행 체제에서 3개의 기초자치단체(동제주시·서제주시·서귀포시)를 추가 도입하는 것으로 지난해 제주도 행정체제개편위원회(행개위)가 발표한 권고안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행개위는 이같은 안을 도출하기 위해 여론조사와 숙의형 토론을 거쳤다.
제주형 행정체제 개편은 주민투표로 찬반을 물어 그 결과에 따라 결정되는 방식으로 지난해 9월 행개위 권고안에 따라 제주에 3개 기초단체와 기초의회를 두는 법안이 입법 예고됐다.
또 제주도는 내년 6월 전국 동시지방선거 후 그해 7월부터 제주형 행정체제 개편을 도입하려면 물리적으로 이달 내에 행안부 장관이 주민 투표를 요구해야 한다며 '데드라인'을 정해두고 있다.
반면 김한규 의원이 지난해 11월 제주시 행정구역을 동·서로 분리하는 것에 반대하는 이른바 '제주시 쪼개기 방지법'을 발의하고, 윤호중 행안부 장관이 최근 주민투표 요구 전제 조건으로 '행정구역 쟁점 해소'를 내걸면서 제주형 행정체제개편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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